[안영배 신부] 11월 29일 (대림 제1주일) 루카 21, 25-28. 34-36

대림시기 시작입니다. 어렸을 적을 생각 해보면 이 시기에 마음이 설렜던 기억을 해 봅니다. 12월이 시작되는 때, 이제 방학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기도 했습니다. 또 성탄이 다가온다는 것, 성당에서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무슨 선물을 받을까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고 설레는 시기,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고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시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사는 모습, 이웃들의 삶을 보면 기쁜 소식은 도통 들리지 않고 암울한 소식만 들려 오고 보입니다. 대다수 서민이 삶의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빈곤에 허덕이는 어르신들이 있고, 뼈 빠지게 일하면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그 일자리마저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합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 등록금 때문에 시름에 잠겨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구제해 준다는 법 뒤에는 오히려 목줄을 더 죄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쌀 시장은 개방되었고 쌀값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올 한 해 가뭄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런데 늦가을에 때 아닌 비는 왜 이리도 내리는지, 추수를 제대로 거두지 못한 농민들의 한숨은 깊어만 갑니다. 재벌의 갑질과 정치인들의 막말은 계속되고, 언론은 종북몰이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지금 이 고통스러운 현실, 그보다 더 암울한 것은 앞을 내다봐도 뭐 특별한 대책,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답답함이 가장 힘든 시련입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고,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고 희망을 품어 보자고 말하는데, 과연 그 봄날은 언제 오려는지, 새벽이 언제 올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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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 초기 그리스도인교 신앙인들이 떠올렸던 세상의 종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 등 천체가 흔들리고, 거센 파도로 공포에 휩싸이며, 사람들은 두려움에 까무러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라고 말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구약 성경의 유대교 묵시 문학을 통해 종말의 현상을 떠올렸습니다. 그런 종말의 모습들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이러한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성경의 저자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세상 종말에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를 알려 주려는 것이 아니라, 종말을 준비하는 우리 신앙인들의 자세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 안에서 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것, 그 준비는 방탕하게 살거나 온갖 근심으로 허비하지 않고 깨어 기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 재물을 쌓기 위해서, 기득권을 누리고 물려 주기 위해서 못하는 일이 없는 세상입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느껴야 할 수치심이 갈수록 사라지는 세상입니다. 사람 목숨 우습게 알고, 양심이나 정의 따위 얼마든지 포기하는 세상입니다. 하느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하늘이 두려운 줄 모르고 달려가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달라야 합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들입니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그 시간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해야 할 우리들이어야 합니다. 부끄러움과 나약함도 있겠지만 그래도 신앙인답게 살고자 애써 왔다고 그분 앞에 서야 되겠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권력과 재물은 모으지 못했지만 이웃과 나누며 살아왔고 힘없고 약한 생명 돌보며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느님 두려운 줄 알고 하느님 뜻을 새기고 실천하다가 때로는 세상의 권력과 맞서고 힘들었던 순간들도 다 씻길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게 신앙인답게 살아가는 것이 준비된 삶입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36) 

안영배 신부 (요한)
안동교구 풍양 농촌선교본당 주임 겸 농민사목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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