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에 비춰 본 이슬람의 장래

(윌리엄 그림 신부)

“우리 종교는 평화의 종교입니다.”

이 말은 자기가 속한 종교의 다른 신자들이 폭력을 저질러 비판을 받을 때 정해 놓고 나오는 대답이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현실이 없어지거나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2000년에 걸쳐 그리스도교가 영향력을 떨쳤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따른다고 주장하는 그 가르침을 실행하는 문화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성인도 있고 현자도 있지만, 정직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역사가 유혈과 불관용, 잔인, 고의적 외면과 억압의 측면이 더 많았음을 고백해야만 할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세기, 즉 20세기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그리스도교” 국가들이 서로 참호전을 벌이며 싸우던 그 비인간의 땅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이 뒤를 이었고, 전투에서는 물론 수용소와 “전략 폭격”이라는 이름의 테러 폭격, 그리고 경제와 사회의 해체 속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아시아에서처럼 그리스도교 영향력이 주변적이었던 곳에서조차 폭력에는 그리스도교 영향력이 가장 오래 유지되었던 곳(서구)에서 발달된 무기들을 썼거나 쓰고 있다.

중국과 캄보디아에서는 그리스도교 서방에서 발전된 이념들(공산주의)로 수많은 이가 죽었다. 이러한 이념들을 만든 개인들 자신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들이 속한 문화는 그리스도교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그 속에서 자란 그들은 비인간성에 면역이 되었던 것이다.

제2차 대전 이후로, 서방은 전례 없던 평화 발전과 사회 정의의 시기를 누리고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번영에 한 몫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공의 대부분은 그리스도교를 버렸거나 적어도 주변화했던 세속주의자들의 노력 탓이다. 오랫동안 정상인 것처럼 보였던 폭력과 불의를 끝장낸 사람들은 바로 이들, 거의 2000년에 걸친 그리스도교 문명의 시대에 넌더리를 낸 사람들이었다.

이제, 이슬람의 차례가 된 것처럼 보인다. 이슬람인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그 어디서든 유혈과 불관용, 잔인, 고의적 외면과 억압을 우리는 본다. 이슬람인들이 저지른 모든 분노 폭발이 있을 때마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다”라는 합창 소리가 울린다. 이슬람이 가르치는 최선의 형태에서, 그리고 이슬람의 성인들과 현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이슬람인의 다수가 사는 방식에서 볼 때, 이슬람은 실로 평화와 정의를 호소한다.

현대 이슬람인이 부딪힌 과제

▲윌리엄 그림 신부
하지만, 어떤 종교란 것이 순전히 그 공식 가르침과 같은 것인가? 아니면 그 신자들이 사는, 특히 아주 광적인 신자들이 저지르는 현실과 같은 것인가? 앞의 얘기만 맞다고 주장라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 가르침을 무시하고 그 신자들 가운데 최악의 분자들이 하는 짓이 바로 그 종교라고 한다면 그것은 인류가 가망성이 없는 종자라고 포기하는 셈이다.

우리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는 실상은 악의 종교로 존재해 왔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이슬람인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종교가 실제로는 악의 종교였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스도교든 이슬람이든, 그간 악의 종교였음에도 그것이 그 종교의 효력을 없애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 악의 존재, 그 깊은 뿌리와 사방에 퍼진 현실이 인식되지 않는 이상 그 악을 근절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이 오늘날 이슬람인들이 마주한 도전이다. 그들의 종교는 자신의 종교를 불관용과 무지의 이념, 심지어 자신의 종교가 뭔지도 모르는 무지의 이념으로 전환시키려는 소수집단이 가로챘다. 이슬람인들은 납치된 자신들의 종교를 되찾아야 한다.

현재, 그런 일이 일어날 전망은 별로 크지 않다. 파리에서 나온 보도들을 보면, 한 여성과 또 한 사람이 자신들의 이웃에 사는 수배 테러범을 알아봤지만, 너무 겁이 나서 경찰에 그들을 봤다는 신고를 하지 못했다. 이들 두 여성뿐 아니라 프랑스보다 덜 안전한 곳에 있는 수많은 이슬람인들(이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떠는 것을) 감안하면, 관용이라고는 없이 폭력적인 소수가 이슬람에 관한 이야기 전체를 오랫동안 통제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이슬람국가”(IS)나 보코하람과 같은 집단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폭력은 다른 이슬람인을 겨냥한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은데, 이슬람 외부를 겨냥한 폭력은 대가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베이루트나 나이지리아에서 있었던 최근의 폭탄 테러들에는 국제사회의 관심이 별로 쏠리지 않았지만, 파리 테러에는 테러리스트 기지에 미사일과 폭격으로 하는 보복이 뒤따랐다.

그리스도인들이 실패한 것을 이슬람인들은 성공할 것인가? 이슬람인들이 자신들 간의 분파 간, 인종 간, 언어 간, 국가 간 갈등을 넘어 단결함으로써 지금 이슬람의 이미지를 통제하고 수많은 이슬람인의 생명과 삶을 파괴하는 그 악을 근절할 수 있을 것인가?

이슬람은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되풀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도교가 자신은 아무 처벌도 받을 걱정 없이 종교재판으로 사람들을 고문하고 학대하였고, 심지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에 기겁한 다수가 그리스도를 위한 종교의 본모습을 되찾을 효과적 수단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종교 전쟁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을 때의 모습 말이다.

만약, 그렇게 보이는데, 역사가 되풀이 된다면, 우리는 주로 이슬람 세계 안에서 이슬람 광신자들이 저지르는 폭력이 늘어나는 한 세기를 마주할 것이다. 이 폭력을 보고 갈수록 더 많은 이슬람인이 이슬람 종교를 포기하고 이슬람을 무력화하려는 세력이 되는 엄청난 반동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일은 전에 일어난 적이 있다. 서구 그리스도교에 대해 일어났었다.

기사 원문: http://www.ucanews.com/news/ours-is-a-religion-of-peace/7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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