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그릇이다 - 조대환]

아리스토텔레스는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떨어트리면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진다”고 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무겁든 가볍든 똑같이 떨어진다. 쇠구슬과 깃털을 동시에 떨어트렸을 때 깃털이 느리게 떨어지는 이유는 가벼워서가 아니라 공기저항 때문이라고, 교과서에 써 있던 것이 기억나실지 모르겠다. 속도와 가속도, 혹은 중력가속도와 관성가속도에 대한 깊은 이야기는 주제에서 어긋나니 일단 제쳐 두자.

어쨌든, 꽤 오랫동안 사람들은 무거운 물체가 더 빨리 떨어진다고 믿고 있었다. 이는 갈릴레이에게 의심을 받았고 아이작 뉴턴에 의해 그렇지 않음이 증명되었으며 다른 여러 실험으로도 그렇지 않다고 증명되었다. 심지어 인간은 달에 가서도 망치와 깃털을 동시에 떨어트려 보아서 같이 지면에 도달하는지 실험을 진행했다. 달에는 공기저항이 없으니까. (영상은 여기서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OvwwO-l4ps )

저 영상을 보셨더라도 아직 무거운 물체가 더 빨리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저 영상이 조작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며, “무거운”이란 단어는 이 이야기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때문에 무거운 것이 더 빨리 떨어질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 분들은, 지갑에서 10원짜리 동전과 500원짜리 동전을 동시에 떨어트려 보시라.

인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때때로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었다.

“당연하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지만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을 또 소개해 드리겠다. “사람이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폭력적으로 변한다” 혹은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사람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 는 이야기다. 얼핏 생각하면 아주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은 아무리 폭력적인 게임을 해도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믿기지 않을 것이다. 뉴스에서도 신문에서도 폭력적인 게임 때문에 아이들이 폭력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고 하고, 의학 용어도 나오고 정신과 전문의가 나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기억이 날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보셨던 그 뉴스에선, 내가 태어난 직후 즈음에 “대통령의 귀국을 축복하기 위해 하늘이 햇살을 쨍쨍 비치고 있다”는 어이없는 비과학적 언동을 한 적이 있다. 또한, 과거에 평화의 댐이라는 초유의 대국민 사기극에 가장 앞장선 것은 TV뉴스와 신문들이었으며, 유명 대학 교수들도 여기에 한몫들씩 했다는 점도 기억하면서 아래 내용을 계속 봤으면 한다.

▲ 왼쪽 수치는 폭력 범죄 횟수, 오른쪽 수치는 게임 판매량.(단위: 10억 달러)(이미지 출처 = http://www.gamesbrief.com)

이것은 미국의 게임 판매량과 폭력 범죄 발생 건수를 비교한 그래프다. 보시다시피, 게임이라는 매체는 매우 급격한 속도로 성장해 왔다. 만약 게임의 폭력성이 인간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면, 폭력 범죄도 게임의 판매량에 의해 비례해 엄청나게 증가했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게임 업계의 폭발적 성장과는 다르게 폭력 범죄는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의 게임 판매량의 급격한 성장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이 당시 최고의 인기를 즐기던 게임들은 압도적인 비율로 총으로 상대를 쏴서 죽이는 게임이었다. 그 게임들의 폭력성과 잔인함은 전에 보기 힘든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전기톱을 괴물이나 외계인의 몸 안에 박아 넣으면 상대는 살점을 튀기며 죽어 갔고, 로켓을 발사하면 상대의 몸은 곤죽이 되었다. 미국 사회는 이에 대해 당황과 우려와 반감을 표명하며, “폭력 범죄들의 원인이 이런 게임들이 아니겠느냐”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게임의 폭력성과 사람의 폭력성은 관계가 없다”는 결론만 계속 내놓는다.

작년 9월 발표된 다른 연구 자료를 보자. 아래 그래프는 미국 빌라노바(Villanova) 대학교와 럿거스(Rutgers) 대학교에서 발표한 “폭력비디오 게임과 실생활의 폭력: 수사법 대 자료”라는 논문에서 따온 것이다.

▲ 2007-11 기간 동안 비디오 게임 판매와 폭력 범죄의 월별 변화.


맨 위는 10만명당 게임 판매 매출액이고, 중간의 그래프는 10만명당 폭력 사건의 건수, 맨 아래의 그래프는 10만명당 살인사건의 건수다. 참고로 2007년부터 연말을 장식해 온 저 치솟는 그래프를 장식한 게임은 죄다 총으로 사람 혹은 외계인을 쏴 죽이는 게임이다.

그래프에서는, 폭력적인 게임이 나와 대대적으로 팔릴 때마다, 범죄율이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그것도 매년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게임에 질릴 즈음이 되면 범죄율이 다시 회복하니 게임이 잠재적 범죄자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래프의 처음 부분과 끝 부분을 봐 주시기 바란다. 앞서 보여 드린 그래프에서처럼, 전체적인 범죄율은 계속 감소 중인 것을 확인할 수 있으실 것이다. 현재 미국은 게임 규제 대신 총기 규제 쪽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상황이다.

게임의 폭력성이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실험을 하기 전에 미리 게임을 공격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거기에 맞추어 결과를 정해 놓은, 거짓말 내지 사기에 가까운 발표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발표는 학계 내에서 이내 반박 당했다.

“게임을 하면 뇌가 짐승처럼 변한다”는 바로 그 연구다. 솔직히 연구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한 이 이야기는, 2002년 일본에서 출판된 “게임 뇌의 공포”란 책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은 “게임을 하면 전두엽이 손상되어 베타파가 현저히 감소한다”며 게임보다 독서나 운동을 권하고 있었다.

이 주장은 여러 차례 학계에서 거짓이라고 반박을 당했다. 가장 최근의 ‘제대로 된 과학적 방법으로 진행된’ 연구 중엔, “게임을 지속적으로 할 경우 전두엽이 손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달한다”는 결과가 있다. (“슈퍼 마리오 게임이 구조적 뇌의 가소성을 유발한다: 뇌의 회백질은 상업적 비디오 게임으로 인한 훈련으로 변한다”: 쿤, 글라이히, 로렌츠, 린덴베르거, 갈리나트, 2014)

이런 연구 결과 외에도, “게임 뇌의 공포”란 책에 대해 일본 내 의학계가 보인 반응들은 참 인상적이다.

“개인의 단순한 망상이며 미신이다.” (가와시마 류타, 도호쿠대학교 교수)

“뇌파를 특정 뇌 영역의 활동과 대응시키긴 힘들다. 실험의 설계방향에 의구심이 든다.” (구보타 기소우, 일본 복지대학교 교수)

“이런 책이 서점에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런 책이 서점에 꽂혀 있으면 신경 과학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킬 수 있다” (쓰모토 다다하루, 일본 신경과학학회 회장)


이렇게 비난을 받았던 일본의 거짓말은, 한국에 오면서 이렇게 변했다: “게임을 하면 현실 판단능력이 흐려지고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폭력적으로 변해 살인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뇌가 짐승처럼 변한다.” 폭력적인 게임만큼이나 자극적이다.

애석하게도 이 미신은 아직 인기리에 사람들 사이에 오가고 있다. 심지어는 게임을 만드는 분들 중에서도 저 이야기가 진짜 신빙성이 있는 연구 결과인 줄 아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게임 업계엔 고학력자가 꽤 많은 편인데, 국내외 유명대 석사 박사 분들이 저런 말씀을 입에 담을 때 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른다.

아이가 자칫 잘못될까 불안해하는 부모님들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는 게임의 폭력성이 자신을 폭력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는데, 미신에 입각해 잘못된 생각을 강요하는 부모를 앞에 두었을 때 아이는 과연 부모를 어떻게 생각할까?

작년, 영화 ‘국제시장’이 개봉했을 때, 심야에 영화를 본 나는 그날 새벽 기차로 부산에 있는 부모님을 찾아 뵈었다. 내 아버지께서도 피난민 출신이셔서 생각이 꽤 났기 때문이다. 간만에 본가를 찾은 김에, 나는 내가 어릴 때, 부모님들께서 왜 그렇게 나의 게임 개발 공부를 막으셨는지 여쭤보았다. 내가 어릴 때엔 TV가 집에서 사라진 때도 있었고, VTR은 당연히 없었으며, 컴퓨터 게임은 몰래 해야 했다. 비디오 게임도 남의 집에 가서 해야 했고, 게임 관련 잡지나 만화책을 빌려왔다 들키면 나의 것이 아님에도 즉시 버려졌다. 세상은 나의 문화와 콘텐츠에 대한 공부를 격렬히 탄압하고 있었다. 이런 억압들은 내가 20대가 되어 독립한 뒤 지금까지, 나로 하여금 항상 새 콘텐츠 흡수와 공부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만들어 주었지만, 동시에 나의 큰 약점이자 개인적 상처, 그리고 지울 수 없는 한으로 남아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부모님의 대답은 참 허탈했다. “우리가 세상을 잘 몰랐다.” 이 한마디셨다.

아이가 과도한 폭력 표현을 보고 정신적으로 쇼크를 받아 무서워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분명 부모의 지도가 필요하다. “네가 이걸 보고 나면 정말 정말 무서울 거야. 괜찮겠니?”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외의 강요는, 특히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강요는 지도가 아닌 구조적 억압이며, 새로운 갈등과 불신을 만들 여지가 있다.

게임의 폭력성은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아직도 의심스러우시다면, 지갑에서 10원짜리 동전과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동시에 떨어트려 보시기 바란다. 어느 쪽이 먼저 떨어지는지.

 
 
조대환(도미니코)
넥슨 GT 수석 게임 디자이너. “제라”,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서든 어택”에서 일하는 행운을 누렸다. 게임이란 매체를 통해 세상의 여러 면을 공론화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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