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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수 있을 때까진 해야죠"날마다 봉사의 삶을 사는 성은이 할머니

1월 13일 일요일 점심때가 조금 지나 민들레국수집을 찾았다. 거기서 봉사하는 성은이 할머니, 최정옥님(73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내가 성은이 할머니를 처음 알게 된 건 2003년 둘째딸 혜민이가 외손녀 유성은과 함께 인천교구 송림동본당에서 첫영성체 가정교리를 하게 된 인연 덕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성은이가 사정상 엄마아빠와 떨어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성은이 할머니가 부모 모임에 나왔다.

그나마 내가 점심때를 피한 건 서울 무료 급식소 가운데 문을 닫는 곳이 많아 서울 손님들이 몰려 국수집이 하루 종일 붐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민들레국수집이 있는 화도고개를 오르는데 주민총회와 재개발조합 결성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여기도 어김없이 재개발 바람이 부는 모양이었다. 국수집에는 생각보다 손님이 적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예배 참석자에게 점심과 약간의 용돈을 주기 때문에 평일보다 손님이 적다고 했다.
 

   
국수집 주인장 서영남 형님의 딸 '공주'와 설거지를 하고 있는 성은이 할머니. 허리가 아파서 비스듬히 서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국수집에는 성은이 할머니 말고도 세 명의 봉사자가 더 있었다. 같은 송림동본당 이명희님, 집배원이라는 40대 남자, 주인장 서영남 형님 딸 ‘공주’. 성은이 할머니와 이명희님은 국수집이 쉬는 목요일과 금요일을 빼고 거의 매일 온다고 했다. 손님이 적었던 때 화요일과 토요일에만 와서 밑반찬을 준비해주었던 것과 견주면 손님이 늘어난 규모를 짐작할만했다. <지금여기> 기사를 위해 인터뷰하러 가겠다고 서영남 형님에게만 살짝 귀띔을 하고 찾아간 것이지만, 성은이 할머니와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하필 mbc “화제집중” 취재 팀이 와서 촬영하고 있어서 나까지 소란을 떨기 싫었다. 나는 두세 시간 동안 할 일없이 잡담이나 주고받으면서 커피 두 잔과 달걀부침 1개만 얻어먹고 일어났다.

다음 날 월요일 아침 송림동성당 후문 근처 성은이 할머니네 집으로 찾아갔다. 오전 10시 반쯤 국수집으로 가신다기에 10시가 좀 못 된 시간에 찾아뵈었다. 2년 전쯤에 이사했다는데, 마루를 사이에 두고 방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는 허름한 한옥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도 있겠지만, 마루에 연탄난로와 숯 화로가 놓였는데도 집안에는 온기가 별로 없었다. 전기패널을 깐 집인데 전기요금 때문에 켤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처음 한 달 잠깐잠깐 켰는데도 20만원이 훨쩍 넘는 요금이 나온 뒤로 아예 선을 뽑아놓았다. 성은이 할아버지 조춘락님(79세)이 이부자리가 빈틈없이 깔린 안방에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손님들에게 돼지고기볶음을 나누어주고 있는 성은이 할머니.
뒤에 보이는 이가 자원봉사자 이명희님.
성은이 할머니가 5대째 천주교 신자로 최양업 신부와 한 집안이라고 한다. 당연히 유아세례를 받았고, 어머니 윤삼녀님은 약현본당(지금의 중림동본당) 신인식 신부를 도와 전교활동을 했다. 시집이 있는 삼하리(양주시 장흥면)의 공소도 양 회장과 어머니 윤삼녀의 전교 활동 덕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동안 신 신부와 수녀 3명, 신학생 2명이 성은이 할머니 집에서 숨어 지낼 정도로 신 신부와 인연은 각별했다. 신 신부가 대방동본당으로 옮기자 함께 가서 사제관 주방 일을 했고, 그 뒤 서울 신학교 식당에서도 4~5년 동안 일했다고 한다. 1955년에 결혼한 성은이 할머니는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두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자식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성은이 할머니는 35만 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월세 20만 원을 내면 15만 원으로 생활해야 하는데, 별다른 보조가 없는 손녀에게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으니 전기세, 전화세 등이 밀리기 십상이라고 한다.

그래도 성은이 할머니는 10년 넘게 봉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송림동과 송월동의 사랑의 이웃집, 석남동 온정의 집, 도원동 기쁨의 집 등이 성은이 할머니가 봉사해 온 곳이다. 지난해 9월부터는 주로 민들레국수집에서 봉사하고, 국수집이 쉬는 목·금요일에만 다른 곳에서 봉사한다. 허리도 다리도 모두 불편한 걸 알기 때문에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었다. 전날 국수집에서 봉사할 때도 짬만 나면 무언가를 짚고 비스듬히 서 있어야 할 정도로 불편해 보였다.

“그렇다고 집에서 있으면 뭐해요? 몸이 아프면 쉬더라도 일할 수 있으면 일해야죠. 그리고 수사님(서영남)이 가끔 쌀도 주시고 반찬도 챙겨주시니 고마워서라도…….”

   
안방에 있는 성물들. 성은이 할머니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당신 자식들뿐만 아니라 기도해줄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10년 넘게 여러 군데서 봉사하고 있는 분이라 민들레국수집이 다른 곳과 다른 점이 있는지 물어봤다.
“마음껏 먹게 하는 거죠. 다른 데는 조금 주고 더 먹고 싶으면 더 가져다 먹게 하는데, 민들레국수집은 처음부터 먹고 싶은 만큼 가져다 먹으라고 하잖아요.”

흔히 사람들은 이 담에 돈을 모아서 어려운 사람도 돕고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 가운데 나중에 그 말을 실천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나중에도 그럴 수 있다. 아마도 성은이 할머니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당신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의 삶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박영대 2008.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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