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에페 5,8)

올해로 제48회를 맞는 ‘평신도 주일’(11월 15일)을 앞두고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 단체협의회(한국평협)가 내놓은 주제 성경 구절이다.

‘빛’. 어쩌면 비가 내리는 가운데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을 한국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기는 어려운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빛은커녕 어둠이 짙게 깔린 듯한 세속의 한복판에서 “빛의 자녀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하느님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무엇보다도 ‘사람답게’ 살고자 숨가쁘게 노력하고 있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어떤 삶을 바라실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평신도 주일을 앞둔 몇몇 평신도들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듣는 한편, 이날을 앞둔 한국 천주교의 눈에 띄는 동향도 살펴봤다.

평신도 주일 하루만큼은 미사 강론을 평신도 대표에게 맡기는 성당들이 있다. 서울대교구 신자인 박지선 씨는 평신도 주일 강론을 맡은 적이 2번 있다. 박 씨는 자신은 정말 평범한 사람 중 하나라면서, 그러나 장애를 갖고 있는 자녀가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점이 평신도 주일 강론을 맡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박지선 씨는 본당 주임 신부가 매우 활발한 성격이어서 평신도 주일에 ‘신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씨에게는 평신도 주일이 교회에서 하는 봉사를 더 열심히 하게 된 출발점이었다.

▲ 지난 1월 명동성당 미사에 참여한 천주교 평신도. ⓒ강한 기자

예수살이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윤진영 씨는 자신이 속한 본당에서는 평신도 주일에 청년분과장이 강론을 맡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분과장 중 한 분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별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오히려 신의 존재에 대해 깊이 느낄 때가 많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기억했다.

다만 윤 씨는 “평신도가 강론을 할 기회는 평신도 주일밖에 없다”면서, 그 밖에 “미사에서 평신도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농민 주일 등 특별한 주제를 가진 여러 주일에 대해 윤진영 씨는 “평신도가 더 전문가이고 더 잘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면서 교회에서 평신도가 말할 기회가 좀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회가 평신도 주일을 형식적으로 별 의미 없이 지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의정부교구 신자인 김재진 씨는 “평신도 주일이 신자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평신도의 역할이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구나 본당에서 평신도는 여전히 성직자를 보조하는 위치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아직 해결책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김 씨는 본당 공동체는 평신도들이 꾸준히 지내고 생활하는 곳인데, 임기를 마친 본당 사제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심지어 사제의 성향에 따라 사목위원도 개편된다”고 덧붙였다.

평신도가 더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봉사하기 위해서는 미사만 참례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에 소속감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새천년복음화사도직협회에서 활동하는 김재권 씨는 “성당에 다양한 단체가 있는데 많은 본당 신자가 활동을 기피한다”며 “본당 신자가 5000명이라면 최소한 1500명 이상은 본당에서 활동하는 단체에 소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 대해 그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며, 평신도 주일을 계기로 더 적극적인 자세로 신앙생활을 가꿔 나가자고 제안했다.

성경 공부 모임을 이끌고 있는 박지선 씨는 성경을 깊이 알고 익히는 것이 교회 안팎에서 하는 활발한 봉사로 이어진다며, 평신도 주일을 맞아 성경을 더 가까이 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성경을 공부한 신자들 안에는) 말씀이 들어와 있기에 그 영성과 믿음으로 어려운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신도는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평신도 주일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평신도의 역할을 부각시킨 데 따라 1968년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 협의회가 만들어지고, 주교회의가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지내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자는 것이 이날의 취지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고 있다.

평신도에 대해 처음으로 논의하고 평신도의 신분과 역할을 분명히 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을 통해 평신도의 ‘사도직’을 강조한다. 교령은 평신도의 사명에 대해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효과적으로 참여하여 하느님 백성 전체의 사명에서 맡은 자기 역할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수행하는 것”(2항)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세계의 어디서나 모든 사람이 구원의 복음을 알고 받아들이도록 노력하여야 할 영광스러운 임무”(3항)를 갖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올해 한국평협 평신도 주일 강론 자료에서는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소개하고 강조했다. 한국평협은 이 운동은 구호를 외치는 운동이 아니며, “우리 사회 전체가 하느님 보시기에 좋도록 바꿔 나가는 쇄신 운동이자 실천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광주, 안동, 대전 등 몇몇 교구 ‘주보’에는 교구 평협 회장의 글이 실렸다. 인천교구는 본당 신부들에게 평신도 주일 강론은 평신도 지도자가 하도록 배려해 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이날 헌금의 1/3을 교구로 보내면 평신도 관련 예산으로 쓰인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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