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한상봉]

조수미가 리메이크해서 다시 한번 읊조리는 노래가 있다. ‘사랑, 그 쓸쓸함에 관하여’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로 시작하는 그 노래다.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야 탓할 수 없지만, 문제는 어긋난 사랑이다. 어긋난 사랑은 기쁨을 쓸쓸함으로 뒤덮는다. 나는 사랑하고자 하나, 상대가 응답하지 않을 때 어긋난 사랑이다. 때로 사랑이 어긋나는 이유는 그릇된 사랑 때문이다. 본인은 사랑한다고 하지만,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그릇된 사랑’ 때문에 빚어진 안타까운 상처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쿠데타’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하는 모양이다. 조국 근대화 과정에서 다소 무리를 했다고 해서 그분을 ‘군사독재정권’의 수괴로 지목하는 역사교과서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마지막 사랑의 대상으로 아버지를 지목했고, 아버지의 신원회복을 국정 목표로 삼았다. 민주사회의 명백한 역사적 판단을 호적에서 이름 고치듯이, 뒤바꿔 놓는다고 걸어 온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 법인데, 그래서 안타까운 사랑이다.

대통령이 정작 아버지를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은 아버지의 죄과를 아버지에게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충분히 보속하는 일이다. “딸인 제가 아버지 대신 사과드린다. 용서해 달라”고 인혁당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다시는 죄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이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박정희가 그래도 딸 하나는 잘 두었네”하며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않을까 한다.

오히려 아버지를 우상처럼 신봉하는 자들과 더불어, 아버지를 반대하는 자들을 ‘비국민’으로 몰아가는 태도는 아버지를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에 깊숙이 집어넣는 일이다. 그런 사랑은 쓸쓸하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이고, 가련한 중생의 어리석은 선택이다. 그래서 그 곁에 어떤 사람들이 남아 있는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집회가 열리면, 항상 그 주변에는 국정화를 찬성하는 무리들도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대부분 군복을 입은 ‘흉칙한’ 노인들이다.

 사진 출처 = pixabay.com

시인 기형도는 ‘노인들’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감당하기 벅찬 나날들도 이미 다 지나갔다
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슬프지만 이미 죽은 가지들은 알아서 땅에 떨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렇지만 이미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이 부러지지 않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은 ‘추악하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군에서 제대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군복을 벗지 못하는 노인들은 그래서 추악하다. 그 추악한 노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이미 떨어진 가지를 나무에 붙여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박근혜 대통령의 처신은 가련하고 안쓰럽다. 그녀는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노인들의 나라에 들어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비명횡사, 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노인의 마음으로 굳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우리나라 역사학자의 90퍼센트가 좌파”라고 말할 때, “국정화 반대세력은 국민이 아니다”라는 말이 여당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올 때, 정치는 실종되고 대통령이 그렇게 존경한다는 국민 대다수는 좌파이거나 이미 국민이 아니어서 대화상대에서 제외된다. 대통령이 국민을 사랑하는 방법은 국민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대통령은 지금 국민과 어긋난 사랑을 하고 있다. 국민은 이 가련한 대통령을 사랑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아버지를 용서하려고 해도 용서할 기회를 대통령이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국민이 ‘자칭 근대화의 민족영웅’을 용서할 방법은 없다. 본인이 할 수 없다면 그 딸이라도 아버지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대화의 물길이 열린다. 사랑의 마음길이 열린다. 아버지에 대한 그릇된 사랑 때문에 빚어진 국민과의 어긋난 사랑으로 대통령의 하루는 지금 참으로 쓸쓸하고 참담하리라 믿는다. 그래야 사람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