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데기 밥상 통신 - 03]

아무리 생각해도 농사와 요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농사를 짓다 보면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요리와 친해질 수밖에 없으며, 요리해서 먹는 맛까지 알아야 농작물을 키우는 과정에서 절로 애정이 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팔아서 돈을 사는 농사가 아니라)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한 농사에서 그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둘 사이의 관계에 무신경했다. 살림살이 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미숙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싶지만 사실은 내 게으름을 탓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신랑이 부지런히 무언가를 거두어 놓아도 내 입맛에 맞지 않거나 다루기에 쉬운 재료가 아니라면 못 본 척 쟁여 두고 썩히거나 시들게 하기 일쑤였으니까.

그러다 보니 신랑은 신랑대로 속이 썩었을 것이다. 애터지게 농사 지어서 갖다 바쳐도 안 먹고 버리는 게 반 이상이니 얼마나 열불이 났을꼬. 어지간해서는 화난 기색을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인데 한번은 싹이 터서 못 먹게 된 마늘과 다 쪼그라져가는 토란을 발견하고는 "이럴 거면 내가 왜 농사를 짓는지 모르겠네요. 앞으로 마늘하고 토란은 안 심을 거니까 그리 알아요!"라고 소리치고 짧은 가출을 하기도 했다.

그 뒤로는 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재료 관리에 마음을 쓰는 편이다. 그전에는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위주로 식단을 꾸렸다면 이제는 내 손에 맡겨진 재료를 위주로, 밭에서 자라고 있는 전체 농작물의 상황까지 고려한 끝에 어떤 요리를 할지 가늠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니까 뭔가 대단히 치밀하고 계획적인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들깻잎이 파랗게 좋을 땐 깻잎으로 장아찌나 김치를 담그고, 애호박이 한창일 때는 호박국에 호박나물, 호박찌개까지 줄줄이 해 먹는 식이다.)

▲ 김치가 양념을 만나 곱게 물드는 순간, 입안에 침이 꼴깍 고인다. ⓒ정청라

며칠 전에도 애초에 김치를 담글 생각일랑 없었는데 밭에 가보니 무밭이 엉망이었다. 무를 적당한 간격으로 솎아 주어야 무가 가슴을 펴고 쭉쭉 자랄 텐데 제때 솎아 주지 않아서 제대로 크지도 못했을 뿐더러 저희들끼리 자리다툼을 하느라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신랑은 신랑대로 가을걷이를 하느라 바빠서 무밭까지는 손을 뻗칠 여력이 없었고, 나는 나대로 내 몸 추스르고 아이들 돌보느라 여유가 없었던지라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아무튼 무한테는 한없이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밭에다 풀어 놓고 나는 무작정 무 솎아내기 작업에 돌입했다. 올해는 반청무, 개성무, 조선무 등 갖가지 토종 종자까지 해서 무 심은 양이 꽤 많았기에 솎아내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랬더니만 어느새 갖가지 크기(다랑이 새끼 손가락만 한 무부터 다울이 종아리만 한 무까지)의 무들이 그득그득 쌓인 것이 아닌가. 그러니 어쩌랴. 김치를 담그고 싶지 않아도 담그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을!

때마침 다음날은 아침부터 비가 와서 오전 내 김칫거리 손질을 했다. 무 뿌리는 잘라서 따로 모으고(말려서 물 끓여 먹으려고), 질긴 무이파리는 시래기용으로, 시들거나 상태 안 좋은 무이파리는 개밥용으로 따로 분리를 하고. 그리하여 나머지 무와 여린 이파리만을 모아 깨끗이 씻고 먹기 좋게 썰어 소금에 절였다.

그런 다음 양념 만들기에 돌입! 마침 빨갛게 익은 끝물고추가 있어서 고춧가루 대신 갈아 넣기로 했다. 따로 찹쌀죽을 쑤는 것도 귀찮아 식은밥이 있기에 크게 한 덩이 넣고, 깐마늘 한 주먹과 생강차 건지 한 숟갈, 제피나무 열매 한 움큼, 시들어가는 사과 한 알, 뒷집 아저씨가 준 민물새우젓과 국간장, 울금효소 약간을 넣고 믹서기를 득득 돌렸다.

부재료의 양은 정확히 얼마나 되냐고? 정확한 양을 재어가며 하는 게 아니라 대충 감이 오는 대로, 재료가 눈에 띄는 대로 하는 마구잡이식이라 잘 모르겠다. 그냥 느껴지는 대로 넣는다. 이렇게 해서 맛있으면 고맙고, 아님 말고!

그렇게 해서 양념을 준비하고 점심을 먹고 했더니 김칫거리 절인 지 두 시간 남짓 되었다. 얼추 간이 들었겠다 싶어 맛을 보니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잘 절여졌다. 얼른 무를 씻어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뺐다. 그런 뒤에 물 빠지기가 무섭게 곧바로 양념을 넣고 버무렸다.(예전에 한번은 절인 김칫거리를 씻어 건져 놓았다가 한참 뒤에 양념에 버무렸더니 김치가 얼마나 질겨졌는지 모른다. 그 일을 계기로 농사와 마찬가지로 요리 또한 타이밍이란 사실을 절감했고, 그 뒤로는 물기 빠지는대로 신속하게 버무려 담그는 걸 철칙으로 하고 있다.) 고춧가루 대신 빨간 고추를 갈아서 썼더니 빛깔이 얼마나 고운지 절로 군침이 돌아 버무리면서 몇 번이나 집어 먹었는데 간이 적당하고 아삭아삭 무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과연 익으면 맛이 어떨까?

이삼 일쯤 뒤에, 맛보기로 한 접시 꺼내어 밥상에 올렸더니 신랑도 아이들도 미역국과 무김치에 밥을 두세 그릇씩 먹었다. 입맛이 섬세해서 우리 집 소믈리에로 불리는 다울이 왈, "무 김치 엄마가 담근 거야? 엄마 요리 진짜 잘한다. 무에서 단맛도 나고 쓴맛도 나고 매운맛도 나는데 그게 정말 잘 어울려, 내 입맛에 딱이야 딱!" 형이 하는 말을 곧잘 흉내내는 다랑이도 "딱이야 딱!"이라며 연거푸 따라하며 나에게 웃음을 주었다.

'그래, 맛있게 먹어 주는 너희가 일등공신이다.' 아이들 칭찬에 나는 아이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이런 나만큼이나 잔챙이 무들도 기쁘겠지?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아 밥상에서 몸으로, 그렇게 생명이 되고 존재 가치를 발하였으니 얼마나 눈물겨울까? 한때는 무관심 속에 밭에서 고군부투 하지 않았던가. 자칫 했으면 뽑히고 나서도 한구석에 쳐박혀 시들고 말았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내 몸 하나 부지런히 놀리는 게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는 걸 잔챙이 무김치를 통해 맛있게 배운다. 그러고 보면 부엌데기는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강력한 위치에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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