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누리 이야기-3]

 

▲ 밥

드디어 밥이 왔다.

하루에 두 끼 밖에 먹지 못하기에 애들은 밥 먹기 몇 시간 전부터 아우성이다. 그러나 밥을 먹을 때는 말하지 않아야 한다. 이 음식이 내 앞에 오기까지 노력하신 분들을 감사히 생각하며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조용히 밥을 받는다. 고기가 나오지 않으니 답답해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하루에 두 끼에 고기, 유제품, 견과류가 없는 생활이다 보니 이거라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간 하루 종일 배가 고프므로 불평할 수 없다.

밥은 검은 콩이나 강낭콩과 함께 나온다. 이따금씩 고기가 생각나면서 “콩이 고기보다 비싸다던데.......” 하고 말도 해보고 싶었다. 그래도 우리 때문에 두부도 한 번씩 나왔고 사과도 사왔다.(우린 이걸 몰래 훔쳐서 20명이 넘는 사람들끼리 한 개를 나눠먹곤 했다.) 카레와 짜장도 한 번씩 특식으로 제공됐다.

이곳에서의 밥상 예절은 모든 사람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게 특징이다. 음식을 남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밥을 다 먹고 나면 그릇 안에 물을 부어 남은 찌꺼기까지 갈무리해서 마무리해야 한다. 사람들 먹는 시간이 거의 엇비슷하기 때문에 과식을 하지 않아야 제 시간에 먹을 수 있다. 이따금씩 배고프다고 여러 번 먹고 너무 많이 받아서 제대로 수습도 못하고 억지로 집어넣는 친구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친구에게 해선 안 될 말이긴 그럴 때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교과서의 문장 자체를 마음속으로 새기며 “난 안 저래야 할 텐데......”라고 속으로 되 뇌이곤 했다.

▲ 밀가루로 설겆이 하는 원준이

모든 사람이 밥을 다 먹으면 이제 설거지를 하러 가야한다. 산에 내려오는 냇물에 씻으러 간다. 모래를 밥그릇에 받아다 흔들면서 큰 조각들을 씻어내고 나머지는 손으로 긁고 숟가락으로 긁어 파내야 한다. 한 번씩 기름진 음식이 나왔을 때는 밀가루와 귀한 수세미로 설거지를 한다. 그러나 밀가루는 장난치는데 많이 쓰이지 설거지 할 때 많이 쓰이진 않는다.

아점을 10시에 먹고 11시까지 쉬다가 그때부터 노작시간이 시작된다. 노작은 푸른 누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정이다. 11시부터 시작해서 저녁시간인 5시까지 진행되는 일정인데 주말과 목요일을 제외하면 이틀에 한 번 꼴이나 사흘, 나흘 연속 있는 날이다.

노작(勞作)은 말 그대로 일을 하는 것인데

일의 종류는 많지 않은데 한 가지 일을 오래 한다는 게 지겨우면서도 힘든 것이다. 일단 가져온 땔나무들을 톱으로 썰어 장작으로 쓸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있다. 땔나무로 방에 불을 넣었을 때 잘 타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땔나무들의 두께가 여간 두꺼운 게 아니라서 대부분 톱으로 썰어야 한다. 문제는 톱이라는 것들이 이빨은 다 나 간지 오래인 써나마나 톱이라는 것. 톱이 왔다 갔다 하며 내는 열로 땅에 불이라도 내겠다는 심정으로 썰지 않으면 나무가 안 썰린다. 지금 생각하면 몰입교육의 한 부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설마 그런 이유로 톱들을 그 모양으로........)

▲ 톱질

톱질을 오랫동안 하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얻었다. 한 가지는 톱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게 되어 나무를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깎아 내는 기술도 터득했다는 점이다. 친구 웅섭이는 긴 나무 작대기를 골프채처럼 깎아 내서 돌을 정확하게 맞춰 멀리 보내는 ‘돌프’라는 놀이를 개발했다. 또 한 가지는 주부 습진이랑 비슷한 유형의 한 가지 일을 너무 많이해서 나타나는 신체 반응이다. 톱질을 하면 손이 덜덜덜 떨리는데 일을 마치고 나서도 손이 덜덜덜 떨리는 여운이 가지 않고 몸에 남아있는 것이다.

톱질을 하지 않으면 근처에 있는 밭들에게 오줌을 뿌리기도 하고 잡초를 뽑았다. 하루는 작물을 수확하러 갔었다. 고지다 보니 땅이 다 얼어붙어서 흙이 손이나 심지어 삽으로도 안 퍼진다. 무를 수확했던 기억이 나는데 흙에다 뜨거운 물을 붓고 곡괭이로 수십 번을 내리 찍어야 흙이 파졌다. 그 곡괭이질도 덩치가 제일 큰 내 몫이었는데 나중에 곡괭이질을 다 하고 나니 손에 물집이 잡혀있었다. 뭔가를 해냈다는 것의 표식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무들은 수확해서 동치미로 담가 먹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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