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로핑크, 김혁태 옮김, “예수 마음 코칭”, 생활성서, 2015

이 책을 처음 건네받았을 때, 처음엔 두께에 놀랐다. 그리고 형광분홍에 가까운 색의 표지 하단에서 활짝 웃고 있는 로핑크 신부님의 사진에 놀랐다. 제목에도 의문이 갔다. ‘코칭’이란 단어를 보고 요즘 유행하는 힐링서적의 한 부류인가? 싶었고, 소제목을 보니 역사비평학 책인데 예수의 마음에 관한 가르침이라니.... 원제목은 “Coaching on Jesus' Heart”라고 되어 있다. 성경에 써 있는 예수님의 말과 행적에 관한 책도 널렸는데 이젠 예수님 마음에까지 성서학 방법론이 발전을 하였던가! 홀로 감탄하며 읽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읽었던 여러 가지 성서연구방법론에 관한 책 중에서는 제일 재밌게 읽었다. 무언가를 조금 깊게 배우기 시작하면 으레 그 시작과 끝은 방법론인 것 같다. 학생들을 위한 방법론 교재는 정말 달달 외워야 될 문장들로 가득한, 말 그대로 교과서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평신도를 위해 역사비평학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예수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애쓴, 삶의 대부분을 신학연구에 바친 어느 노 신부의 이야기라고 봐도 좋을 만큼 편하고 물에 흐르는 듯한 문장으로 이어져 간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쉽지 않은 이야기로 가득찬 책을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그 시작이 무엇이건,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드는 여러 가지 의문이 있다. 성경에 쓰인 얘기는 진짜일까? 정말 예수는 이런 사람이었을까? 궁극적으로, 예수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지금까지 이 난리인가? 종교문제로 전 세계가 시끄럽고, 죄 없는 어린아이들과 학생들이 죽어 나가는 일들 앞에서 똑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이쪽, 저쪽으로 갈려 있다. 이런 세상에서 도대체 신앙은 무슨 의미가 있나? 저 사람들을 저렇게 만든 성경은 도대체 무슨 책일까?

▲ 게르하르트 로핑크, 김혁태 옮김, “예수 마음 코칭”, 생활성서, 2015
역사비평학 책답게, 저자는 많은 이야기로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성경을 읽다 보면 어느 본문, 어느 구절이 확 다가올 때가 있다. 저자는 그 본문과 구절이 쓰인 고대 근동 두루두루의 사회적 배경과 습관, 사고방식, 여러 가지 외경들과 고전, 그 언어의 의미와 다른 연구방법론 분야의 연구결과들, 최근 연구들을 통해 한 줄 짜리 성경 구절을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든다. 특히 인용 자료들 중 성서연구자가 아니면 잘 모르는 외경이나, 고대 문헌들을 읽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 즐거움은 결국 책에서 언급되는 성경 구절들을 직접 찾아내어 내 눈으로 직접 읽어보고싶다는 마음까지 이어져갔다.

그러나 분명, 이 책을 읽기 전 나와 읽고 난 뒤의 나는 성경 앞에서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저자가 바라는 독자의 태도일 것이다. 우리가 만난 예수는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며 하느님 ‘나라’를 외쳤다. 고된 노동, 병들어 죽어 가는 육체, 내일 먹을 거리와 잠들 곳을 알지 못하는 일상, 사람이지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어쩌면 그때와 지금은 이다지도 달라진 것이 없는지! ‘이미’ 그 삶을 직접 살고 떠난 예수를 믿는다고 외치지만 ‘아직’ 그 삶을 살고 있지 않은 인간의 어리석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예수의 삶에서 감동만 받았을 뿐,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시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사람들과 나는 도대체 무엇이 다를까?

그러나 예수는 자신과 뜻이 완전히 일치하는 어느 한 사람을 찾은 것이 아니라, ‘나라’를 꿈꾸었다. 그가 실현하고자 한 하느님 나라는 이 끔찍한 현실 속에서 예수님이 절박하게 외친 그 희망과 나눔,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 주고 미래를 꿈꾸며 움직이게 하는 그런 곳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천국은 없다. 그러나 지상에서 천국처럼 사는 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어야만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신앙을 통해 내 삶이 변화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체험이다. 그러나 이렇듯 아름답게 변모한 나는 발딛고 서 있는 이 사회에 눈길과 마음을 돌려 그곳에 내 삶에 일어난 균열 속에서 얻은 그 무엇을 나누어야 한다. 결국, 신앙의 지평을 내 집과 일상의 안위에서 내 이웃에게로까지 넓히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한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여전히 거대한 살상 무기, 권력자들과 기업가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정치가나 권력자들이 아니라 가장 아프고 힘든 곳에 기꺼이 달려가는 우리의 다른 이웃이 아니었던가. 돈보다 사람이 귀함을 알고, 억울한 자의 손을 잡아 주고 힘없는 이들끼리 함께 기댈 언덕이 되어 주는. 정작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라도, 아마 로핑크 신부님이 그들을 보신다면 그들은 이미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룩한 사람이라 말씀하실 것 같다.

책장을 덮으며, 내겐 그럴 용기가 있는지 다시 한번 되물었다. 매일 믿기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는 이 곳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 이렇게, 저렇게 모인 사람들 안에서 나는 정말 그들을 사랑했는지 아픈 마음으로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간만에 성서연구방법론에 관한 책을 읽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책을 통해 돌아온 곳은 내 삶, 내 사람들이 있는 이곳, 우리 동네, 내 나라였다.

책을 읽는 내내 성경에 대해, 교회에 대해, 예수를 그리스도라 부르는 것에 의심이 들고 의미를 잃어 가는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었다. 또한, 성경과 교회, 예수를 그리스도로 기꺼이 고백하는 사람들하고도 함께 읽고 싶은 소중한 책이어서 이 책을 내 삶의 시의적절한 시점에 ‘만나게’ 된 것이 진심으로 기쁘다. 부디 이 배움이 내 삶과 내가 속한 모든 곳에서 의미 있는 실천이 되기를 소망한다.

배안나(안나)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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