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국제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Aid To The Church In Need, 약칭 ACN)가 한국지부를 설립하고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지원을 호소했다.

11월 4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설립 기념 심포지엄에서, 장-아브도 아르바흐 대주교(시리아 홈스 대교구장)와 레바논 비정부기구 알파(Alpha) 대표 알버트 아비 아자르 신부가 5년째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전하며 한국 신자들의 도움과 기도를 요청했다. 200여 명이 파밀리아 채플을 가득 메우고 시리아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 11월 4일 서울 명동대성당 파밀리아 채플에서 열린 교황청 국제 가톨릭 사목 원조 기구 한국지부 설립 기념 심포지엄에서 장-아브도 아르바흐 대주교(시리아 홈스 대교구장)가 시리아 내전과 그리스도교의 피해 상황을 전하고 있다. ⓒ강한 기자

아르바흐 대주교는 홈스, 알레포를 비롯한 시리아의 주요 그리스도인 도시 16곳이 대부분 내전 지역에 속해 있다는 것을 지도를 보여 주며 설명했다. 또 시리아 등 중동 세계에서 소수자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한 쪽을 지지할 것을 강요 받기도 하며, 극단적 이슬람 단체에 의해 개종이나 차별적 세금을 요구 받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아르바흐 대주교는 그리스도인 도시 가운데 하나인 알레포에는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 15만 명 넘는 그리스도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2013년 9월 기준으로 5만 명 이하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시리아 그리스도인 50만 명이 터키나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등 가까운 나라나 북아프리카로 망명했다. 이라크 전쟁 때 시리아로 건너온 60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다시 난민 이주에 동참하고 있어 상황은 더욱 복잡하고 처참하다.

아르바흐 대주교는 시리아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식량, 의료 등 인도적 지원이 교회를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존재하면서 미사 뿐만 아니라 교리교육 같은 본당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자르 신부는 참석자들에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로서 세계의 고통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누군가 문을 두드릴 때 ‘나는 당신을 몰라요’라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떤 사람이 희망을 잃었을 때 교회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물질적 도움뿐 아니라 믿음, 사랑, 평화가 전쟁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자르 신부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전쟁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시작된 시민들의 민주주의와 자유 요구를 아사드 정권이 강경하게 진압하려 하면서 불거져 5년째다. 시리아는 1971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하페즈 알 아사드에 이어 2000년부터 그의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가 지배해 왔다.

ACN 한국지부 이사장을 맡게 된 염수정 추기경은 이날 심포지엄에 앞서 그동안 ACN이 한국 가톨릭교회를 지원한 사례를 언급한 뒤 “한국 가톨릭교회는 다른 나라에 도움의 손길을 건넬 만큼 성장해 ACN에 한국 교회를 위한 지원신청서가 거의 접수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아르바흐 대주교와 아자르 신부에 이어 ‘ACN을 통한 한국 가톨릭교회의 소명’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유경촌 보좌주교(ACN 이사)도 한국 천주교의 성장은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면서, 여러 선교회와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교회, 교황청의 지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유 주교는 1983년 완공된 서울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양업관을 짓는 데 지원된 25만 달러가 한국 교회가 ACN의 도움을 받은 대표적 사례라고 소개했다.

유 주교는 국내사업과 해외원조를 병행하는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한마음한몸운동본부, 가톨릭교회에 제한을 두지 않고 해외원조를 하는 카리타스 인터내셔널과 달리 “ACN은 전세계의 박해 받는 가톨릭교회를 직접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유 주교는 “우리는 한국 교회의 신자이지만 동시에 세계 가톨릭교회의 신자”라며 “박해, 전쟁으로 고통 받는 지역교회는 우리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ACN은 네덜란드 출신 베렌프리트 판 슈트라텐 신부의 독일 난민 지원 활동을 중심으로 1947년 만들어졌다. 2012년에 교황청 직속 재단이 됐다. 아시아 지역에서 ACN 지부 설립은 한국이 최초이며, 지난 7월 3일 한국지부 이사장으로 염수정 추기경을 선출하고 유경촌 주교와 임병헌 신부(서울대교구 도곡동 성당 주임), 한홍순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등을 이사로 선임했다.

한편, 이날 ACN 한국지부는 ‘박해받는 그리스도교인에 대한 보고서 2013-2015’ 요약보고서의 한국어판도 내놓았다. 보고서에서는 유민과 난민의 수가 유례없이 크게 늘어난 현재 상황에서 일부 이슬람 세력이 특히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종교를 이유로 ‘인종 청소’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을 포함한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저항적 ‘지하조직’이 증가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위협 요소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북한에 대해서는 “김정은 체제 하에서 그리스도교인들은 신앙을 이유로 처형당한다”며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 약 20만 명의 그리스도교인들이 교도소나 노동교화소에 수감 중”이라고 전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의 박해, 억압 등급을 가장 나쁜 ‘극심’ 단계로 보고 지난 3년간 상황이 악화된 것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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