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용 신부] 11월 8일(연중 제32주일) 마르 12,38-44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헌금함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으시고,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사람으로 분주했고 여러 지방에서 온 그들은 각자가 마련해 온 봉헌금을 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오늘의 복음은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라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역, 혹은 멀리는 지중해 근방의 해외 유대교 공동체에서 성전으로 순례를 온 사람들은 적지 않은 돈을 성전에 봉헌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어느 허름한 차림의 한 여인이 나타나 헌금함 앞으로 걸어갑니다. 화려하고 좋은 옷을 입고 보기에도 귀티가 나는 부자들 사이로 가난한 과부가 한 명 나타난 것입니다. 자신의 옷 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다루듯이 아주 조심스럽게 동전 두 닢을 꺼내 수줍게 봉헌함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서둘러 돌아섭니다.

부유하고 여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의 허름한 옷차림은 그 자체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헌금함으로 떨어지는 동전 두 닢의 요란한 소리에 그녀는 더욱 위축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가 봉헌한 동전은 금화도 아니요 은화도 아닌 렢톤 두 닢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돈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데나리온 한 닢의 1/64에 해당하는 적은 돈이었습니다. 오늘날 화폐로 어림잡아 계산해도 백 원짜리 동전 몇 개에 지나지 않는 돈이었습니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그런데 사람들의 비웃음과 과부의 움츠러듦이라는 상황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꺼내시면서 상황은 급반전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는 것을 계속 지켜보시면서 미동조차 하지 않으시던 예수님께서 갑자기 말문을 여셨던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많은 봉헌금을 냄으로써 예수님께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듣고 싶어했을지 모를 부자들을 비롯하여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과 또 수치심에 움츠러든 그 여인 자신도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누가 얼마나 많이 봉헌금을 넣었는가”라는 세속적 기준으로 상황을 바라볼 때, 예수님께서는 “누가 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넣었는가”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시며 여인의 행동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부자들을 비롯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러한 어리석은 시선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도 흔히 빠지게 되는 오류입니다. 물질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화려한 것, 값비싼 것, 유명한 것, 그리고 크고 많은 것 등이 당연히 좋은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눈에 드러나는 현상만을 따라 살 뿐 진실함이나, 순수함, 그리고 선함 등은 초라한 것, 싸구려인 것, 그리고 작고 보잘 것 없는 것 등으로 인식합니다. 옷은 유명한 명품이어야 멋진 것이고, 자동차는 크고 새것이어야 좋은 차이고, 집은 평수가 넓고 비싼 것이어야 살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눈에 드러나는 현상이 아닌 그 이면의 본질적 마음과 자세를 살피는 시선을 가졌기에 과부의 헌금이 비록 적은 금액이었지만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가진 것을 전부 내어 놓는 행동이었음을 알아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통해 하나의 위로와 하나의 가르침를 얻게 됩니다. 먼저 위로는 예수님은 절대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나를 판단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내는지, 얼마나 자주 성당에 나와 봉사하는지, 혹은 얼마나 오랜 시간 기도하는지 등으로 나를 평가하고 바라보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세속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예수님이 나를 평가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합격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렇듯 예수님께서 세속적 눈으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는 바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할 때 얼마나 뜨겁게 사랑해야 하는지, 봉헌 때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닌 기꺼운 마음으로 내어 놓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기도하고 봉사할 때는 얼마나 진솔한 마음으로부터 임하는지를 돌아보기 바라시는 것입니다.

과부의 헌금처럼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더라도 무어라 탓하지 않으시며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실한 마음을 결코 놓치지 않는 예수님께는 우리의 모든 언행이 진실한 마음에서부터 우러나길 바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이러한 예수님의 시선을 배우고 과부의 진솔한 마음을 닮아갈 때 우리도 예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나의 마음이 어떠한지 되돌아보며 우리의 마음도 아까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의탁한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닮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아멘....

 

 
 
정수용 신부 (이냐시오)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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