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학생이 바라본 세상 속 신앙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일어난 촛불문화제와 촛불평화미사에 줄곧 참여해온
     오 아무개(16세)군을 만났다. 이날은 용산참사 현장에서 주님만찬 성목요일 미사가 열리는 4월 9일,
     오 군은 중학교 2학년생이며, 이 날도 일찌감치 현장에 나와서 미사 준비를 거들고 있었다.
     그를 미사 전에 잠깐 만나서 인터뷰 했다.      -편집자

 

-그동안 촛불평화미사에서 늘 보던 얼굴인데, 촛불과 인연을 맺은 것은 언제였나요?
작년에 촛불문화제가 시작되고 5월말이 돼서야 인터넷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뭘 하는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날 외삼촌이 "한번 가보자" 하더군요. 예전에 방송일 하던 삼촌이었는데, 세종로에서 열린 촛불집회를 데리고 가며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해줬죠. 사실 제가 워낙 사회문제에 좀 관심이 있었는데, 그날이 바로 경찰이 소화기랑 물대포 쏘고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때 '국민들이 공권력한테 이렇게 맞아도 되나' 화가 났어요. 그때부터 촛불집회 다니고,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드리는 촛불평화미사에도 참석하기 시작한 거죠.

▲ 주민들이 내어준 레아호프를 손을 봐서 미술가들이 갤러리를 꾸며 놓았다. 이 집 이층 공간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요즘 용산참사 때문에 말이 많은 데, 작년처럼 촛불시민들이 참석하지 않는데..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장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저 철거민들 일이라고 여기는 거죠. 미친 쇠고기는 누구라도 먹을 수 있으니까 내 문제, 내 가족 문제라고 여기지만요.

 -본인은 어때요, 자기 일처럼 생각되나요?
저는 할머니랑 단 둘이 살고 있어요. 그래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게 뭔지 대충 알아요. 철거민들 아픔에도 공감이 가고요. 사직동 살 때 재개발한다고 여러번 이사를 다녔는데, 할머니가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죠. "재개발한다고 왜 난리들인지 모르겠어. 멀쩡한 집을 다 부수고... 미친 짓이지"

할머니들이 그냥 툭툭 던지는 말이 진짜라고 생각해요. 삶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잖아요. 촛불평화미사에 할머니들도 많이 오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몸이 불편한 분들도 오시고. 똥꾸녘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고, 철거민들처럼 내 집이 없이 불행한 것도 아닌데, 여기에 왜 못 오는지 모르겠어요. 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지난번 선거 때 한나라당 찍으면서 뉴타운으로 부자되고 자기는 철거민 안 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이죠. 지난번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자유게시판에 제가 노래 하나 올렸잖아요. 그 내용도 그런 거죠. 이명박 정부 들어서 개발 되면 이제 부자 될 것이라고... 당신은 철거민 아닌가요? 묻자 제 자식들은 아닐 거라고... 모든 헛된 기대 속에 너무 개인적으로 변한 거죠. 공동체가 아니라...

-그래도 천주교 신자들은 조금 낫지 않을까요?
천주교회도 선교본당이나 작은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데, 큰 본당에서는 곳곳에서 신부님들이 위세를 부리고... 큰 본당에선 신부님과 신자들 사이, 신자들끼리도 서로 미움이 증오를 낳고 증오가.. 다툼을 낳고..그러고 살아요. 같은 신앙을 가지고서도 원수도 아닌데 서로 증오하는 것을 보면 실망이 커져요. 제가 5살 때 처음 보았던 성당과 지금(16살) 바라보는 성당은 다른 것 같아요. 뭐...30살이나 50살에 되어 바라보는 성당도 다를 테지만. 

▲ 철거가 진행된 지역은 철판으로 막아놓고 건물들을 해체하고 땅고르기 작업에 들어서고 있다.(사진/한상봉)

-5살? 성당에 언제부터 다닌 거죠?
어려서 성당 유치원에 다닌 적이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없어져서 돈도 없고 못 다니게 되었어요. 그런데 유치원 수녀님이 '그냥' 다니라고 하더군요.  일곱살 때 어떤 분이 만원을 용돈으로 주셨는데, 하루만에 그걸 다 까먹고 할머니한테 혼날까봐 달려간 곳이 성당이었죠. 마침 성모성월이라 자주 묵주기도를 했는데...저도 노상 거기 쫒아다녔어요. 할머니가 입교하신다고 먼저 성당 예비자교리반엘 다녔는데, 거기도 따라다녔죠. 그때 본당 신부님이 저를 잘 보았는지  교리 받았으니 그냥 영세받으라 해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영세받았어요.

그 신부님, 수녀님 모습보면서 나도 '신부 되야지' 생각했죠. 그래서 지금도 성소자 모임에 나가고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나중에 박홍 신부님이랑 추기경님 모습 보면서 좀 실망하고 있어요. 어떨 때는 '무늬만 신부'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촛불평화미사 참석하면서 여기에 오신 분들같은 신부님들을 보면서 다행이라 여기고 있어요. 이분들을 닮고 싶어요. 어린 시절 경험했던 신부님들을 다시 보는 것 같아서요.

-다른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나요?
어제 기쁜 소식이 있었죠.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교수님이 된 거요. 일제고사만 해도 어른들은 대개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일제고사 반대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부모들도 자식을 통해 자신들이 못 이룬 것을 이루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 교육이 너무 교과서 위주로 가는 걸 반대하는 거죠. 친구들은 내가 그런 이야기 하면 '너는 공부 잘하면서 그런 이야기 하냐?'고 하지만, 그건 다른 문제죠.

학원 다닐 때, 학원 선생님들도 2등도 필요없다 1등해야 한다고 말해서, '저는 신부 될 건데요.."하니까, 신부가 되더라도 가장 똑똑하고 능력 있는 신부가 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공부만 열심히 했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사회문제들이 더 늘어나고,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제 생각도 바뀌게 된 거죠. 친구들은 제가 이런 데 쫒아다니는 것을 보고 여전히 '왜 시간낭비 하냐?'고 하지만, 솔직히 이렇게 다녀도 성적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어떤 선생님은 "이건 어른들의 게임이니 말려들지 말라"고 합니다. 일제고사 반대하고 체험학습 신청하니까, "너무 행동으로 나서지 말라"고 합니다. 아직 어리다는 거죠. 어른들한테 휩쓸려 다니지 말라는 거죠.

▲ 아직 어린 중학생이지만, 차분하게 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직 어리다는 것이군요
나이 많다는 게 자랑이 아니라고 봐요. 나이 먹고도 이명박 대통령처럼 나이 값 못 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청소년들도 한 명의 사람이고, 제 생각으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요. 이건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아이들도 알 건 다 안다'는 말이예요. 언젠가 국어수업 시간에 '탄핵'이란 단어가 나오자, 아이들이 대번에 '이명박'이라고 합창 하더라고요. 다행히 담당선생님이 전교조라 별 일 없었지만요.

-본당에선 어때요?
언젠가 본당 신부님이 '군중심리가 무섭다'며 미사 시간에 뭐라 하셔서 마음이 별로 안 좋았어요.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단순히 군중심리 때문에 나온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요즘처럼 사람들이 길을 잃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교회와 신앙인들이 나서야 하는데, 우리는 길을 알면서도 가려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봐요.  아마 한나라당 사람들도 지금 뭐가 잘못되어 있는지 알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고치려고 들지 않는 것 뿐이죠. 자기들 한테 이익이 되니까. 천주교가 너무 조용하고 나서지 않는 게 답답해요.

언젠가 수경 스님이 '용산 문제로 슬퍼하지 않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라고 하셨어요. 삶의 터전이나 집 문제이기도 하고 생목숨이 죽은 일인데도, 생명을 존귀하게 여긴다는 교회가 장기기증에는 열을 올리지만, 정작 눈 앞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하다는 게 이해가 안 돼요.  교회가 그런 사람들을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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