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37]

아이 셋을 낳아보니 아이 하나일 때의 자유로움(?)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아이가 하나이고, 그 아이가 혼자서 걸을 수 있다면 세계여행인들 못할까 싶다. 이제 아이 하나만 돌보는 것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하나였을 때는, 하나보기도 너무 힘들어 가까운 여행이라도 버겁기만 했고 애 셋 딸린 어떤 아줌마가 내게 세계여행을 권했다면 “아, 그런가요? 아무래도 당신 사정 상 그런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네요.”라며 웃어 넘겼을 게 분명하다.

아아, 어리석었도다, 어리석었도다. 지금에 와서 '그때가 좋았었지'하며 선뜻 떠나지 못했던 지난 날을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인가. 만약 열두 명의 아이를 키우고 계신 엄마가 있다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을까.

“애 셋은 아무것도 아니요, 그 정도면 한 차에 실을 수 있지 않나요?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을 수 있지 않나요? 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지 않아요? 애 셋밖에 안 된다면, 나는 당장 세계여행 짐을 꾸리고 말텐데요.”

그럴지도 모르겠다. 선녀가 날개 옷을 찾아 입고 하늘나라 자기 집으로 가느냐 마느냐도 아이가 셋이냐 넷이냐 차이였다. 선녀도 애가 셋이라면 아이 하나는 업고 둘은 팔에 끼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판에 하물며 땅 위에선 어딘들 못 가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고 누군가(예를 들어 애가 열 둘인 아주머니)에게는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고로 세계여행을 떠나자!

▲ 장난감을 양보한 멋진 형 욜라와 형에게 사로잡힌 동생 로 ⓒ김혜율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종종 미루더라도 굳이 안 해도 될 일은 바로바로 실행에 옮기는 나와 내 남편은 언제가 될지 전혀 모르는 세계여행을 위해 아이들 여권사진을 찍으러 부랴부랴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이런 것을 두고 쓸데없는 현명함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님 쓸모 있는 우매함이던가.

암튼 우매하거나 현명하거나 둘 중 하나인 우리 부부는 조만간 큰 여행을 앞 둔 사람들처럼 얼굴이 상기되어서 세 아이의 여권사진 촬영을 의뢰했다. 메리와 로는 순조롭게 사진촬영에 응했다. 그런데 욜라가 문제였다. 욜라는 사진을 절대 안 찍겠다고 했다. 역시 욜라.

욜라 혼자 한국에 남겨두자니 마음에 걸린 나는 척척척 걸어가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도 보여주고 재미있는 놀이처럼 사진 찍기를 유도해 보았다. 사진을 꼭 찍어야만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도 해주고 시간을 두고 기다려도 보고 제발 3초만 앉아 있자고 사정도 해 보았지만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다른 손님도 있는데 사진관 바닥에 등을 대고 발로 발발대고 360도를 회전하며 목젖이 보이도록 울어재끼는 쇼까지 수습하고 나자 상큼했던 미소의 젊은 사진사도 표정이 어두워지며 변소에 가는 것처럼 하면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다급한 호출을 받고 투입된 구원투수 베테랑 사진사!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술적인 아우라를 한껏 풍기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사진사가 등장했다. 그 사진사는 이런 악동이야말로 내 손 안에 있소이다 하는 투의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욜라 또래의 사내아이들을 홀릴만 한 각종 소품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사실 욜라의 상태로 보아 오늘 사진 찍긴 다 틀렸다고 포기하고 하고 있었는데 아이 전문 스튜디오 사진사의 실력을 믿어 보기로 했다. 사진을 찍어 온 지 이십 년은 족히 돼 보이고 그동안 욜라같은 아이에 대한 많은 임상데이터가 확보돼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크고 작은 공을 드리블하고 슛을 날리며 욜라에게 접근했다. 욜라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며 입이 헤 벌어지려고 하다가 이내 ‘여기는 사진관,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한 설득과정 중에 놓여있음!’을 생각해내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 싶어서 욜라의 생각을 방해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사진사가 던지는 야구공, 배구공, 축구공, 럭비공을 잡으러 끼야악거리면서 사진관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다.

내가 너무 팔짝팔짝 뛰며 오두방정을 떨었던 것일까, 구석에 들어간 비치볼을 꺼내 환호하며 뒤를 돌아보니 욜라는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더 이상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왜? 아니 왜? 사진 찍는게 뭐라고! 하여튼 욜라는 그렇게 마음을 먹은 듯 보였다.

▲ 동생 의자를 모자로 애용하는 욜라. 이걸 쓰고 밥도 먹는다. ⓒ김혜율
그 사이 사진사는 욜라에게 휘파람을 불고 소리 나는 장난감을 흔들어 보이며 어릿광대로 역할을 바꾼 것 같았다. 하지만 욜라는 시큰둥했다. 사진사는 베테랑답게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히든카드를 제시하는 양 주머니에서 짜잔~ 막대사탕을 꺼냈지만 욜라는 ‘막대사탕을 먹는 것=사진을 찍는 것’ 이라는 공식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사진사에게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 후로도 사진사는 뭔가를 자꾸 꺼내고 ‘호잇, 호잇, 얍얍’ 소리로 시선을 끌며 사진촬영석에 욜라를 앉혀보려 애를 썼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직업의식과 사명감이 투철한 최소 20년 경력의 사진사는 사진기 셔터를 누르기 위해 한 번 더 기회를 얻고자 했으나 나는 초로의 사진사를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은 할 만큼 했어요. 그리고 욜라는 결코 오늘 사진을 찍지 않을 겁니다. 실례 많았어요. 이만 총총’ 하며 황망히 사진관을 나오는데 사진사가 사진관 밖까지 쫓아 나오며 내게 말했다.

“둘째라 힘들어서 그럴거에요. 제 밑에 아기 동생이 있어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뺏긴 게 됐으니 얼마나 마음이 안 좋겠어요? 둘째를 더 많이 사랑해주세요. 이제부터 막내는 내버려 두고라도 둘째를 더 많이 안아주고 예뻐해주면 나중에 다 잘될 겁니다.”

오오, 그는 진정한 베테랑 사진사였다. 피사체의 내면까지 읽고 있다니! 나는 사진사의 말을 가슴깊이 새기며 연민이 가득한 눈길로 욜라를 쳐다보았다. 차 뒷자석에 탄 욜라는 운전석을 침범해 운전 중인 제 아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목에 매달려 타고 오르는 중이다. 무시무시한 경고와 따끔한 훈계도 소용이 없고 결국엔 제 아빠의 억센 손아귀에 귀가 잡혀야만 잠시 주춤할 뿐이다.

그 다음엔 카시트에서 곤히 자는 로에게 다가간다. “안돼, 욜라, 제발~~ 자는 애는 건드리지 말자. 응?” 내가 말하는 사이 욜라는 이미 잠자는 로의 머리카락을 잡아 댕기고 있다. 로는 한때 순한 기운으로 우리집 ‘유망주’였지만 어느 순간 우리집 ‘복병’이 된 만큼 이런 경우엔 차가 들썩일 정도로 악을 쓰고 운다. 카시트에서 꺼내 안아주고 젖을 주고 아무리 얼러보아도 절대! 아무렴 절대로!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비상 깜박이를 켜고 갓길에 차를 대고 밖으로 꺼내주기 전까지는. 휴....

얼마 전엔 욜라가 자는 로의 얼굴에 다 먹은 과자봉지를 사정없이 문대서 차 안이 초토화된 적이 있다. 그때는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이었지만 우리는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욜라를 내버릴 참이었다. 고속도로 미아가 될 뻔한 욜라였지만 그 후로도 나아진 것은 없었다. 미운 네 살이라 그런가.... 중간에 낀 둘째여서 그런가.... 항상 이것들을 의식해 나와 남편은 더욱 욜라에게 집중해 사랑을 표현했지만 욜라의 꼴통 행각은 끝이 없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하던 중 흥미로운 제보를 하나 받았는데, 욜라의 일련의 행동들이 남편의 어린시절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랬구나, 그랬어. 욜라가 맨날 혼날 짓을 밥 먹듯이 줄기차게 하는 이유는 ‘물론 위의 후천적인 상황에 의한 영향도 있겠지만 타고난 게놈(개놈 아니다)때문’이었다. 나선형 유전자의 염기서열 어딘가에 기록돼 있어 욜라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우러나는 행동! 욜라가 괜시리 무언가를 주먹으로 내려치고 오만 사람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목을 조르다시피 매달리고, 타고 오르고, 고개를 처박고 하는 것들은 백 번 천 번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되어 있다. 아마도 크면서 서서히 옅어지거나 사라질 것이다. 그때까지는 욜라에게 사랑을 듬뿍 주면서도 그놈의 게놈 탓을 하면 될 것이다.

결론이 좀 이상한 것 같지만 나름대로 만족한다. 친정엄마가 하시는 말씀 중에 ‘애는 좋은데 행사가 더럽다.’는 말이 있다. 그 말엔 아이의 나쁜 행동과 그 아이의 존재 자체를 분리해서 보는 지혜가 담겨있다. 그 말은 아이에 대한 애정을 식지 않게 한다. 나의 ‘게놈’ 결론도 그러한 것으로 풀이하면 될 것 같다.

▲ 사진도 흔들리는 세 아이들 ⓒ김혜율
세 아이를 키우는 것은 세 개의 가지를 거느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게서 뻗은 그 세 개의 가지는 언제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살랑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들로 인해 옆구리가 간지러울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만 부러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강풍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지들을 붙잡아야 할 때도 있다.

바람이 지나가고 고요가 찾아들면 발치에 떨어진 잔가지와 나뭇잎들은 애처롭다. 그러나 아까의 바람을 견뎌내고 가지에 붙어있는 나뭇잎은 단출한 만큼이나 의젓하다. 곁에 부는 숱한 바람에도 거뜬하다. 그리고 상처 입은 가지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 연둣빛 환한 새싹이 발랄한 생을 시작하고 있으니 바람 잘 날 없는 내 나무의 숙명은 그렇게 흔들리며 크는 것인가 보다 한다.

게다가 가지마다의 사정은 언제나 엄마나무의 뜻대로 되지도 않는 법. 나무가 자라는 데 필요한 햇볕과 비와 바람과 기온은땅을 딛고 서 있는 생명체가 관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지켜보는 엄마. 하루라도 바람 잘 날 없는 날들이지만 요새 부쩍 흔들리고 흔들리는 욜라에게 불고 있는 세찬 바람이 잔잔한 미풍으로 바뀌길 지켜보기로 한다.

욜라에게 영상편지를 하나 띄우고 싶어지는 밤이다.
"욜라야, 사랑하는 욜라야, 웬만하면 여권사진은 찍는 게 좋을 거다. 엄마 아빠가 세계여행을 하게 된다면 너를 떼어 놓고 갈 수도 있어. 정말 그러려고 생각 중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명확한 진리 앞에서 쓸데없이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걸지 않았다는 것을 부디 기억하렴. 그러나 여권만 만들어 놓았지 세계여행은 실로 머나먼 쏭바강이구나. 꿈에서나마 알프스에 가서 눈썰매라도 타고 오자꾸나. 엄마는 핀란드의 온천목욕탕에 들어가 눈을 감고 그동안 못다 잔 잠을 자고 싶구나."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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