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리나 코레이라트

레바논 사람으로 호주국립대학에서 역사학과 인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리나 코레이라트(35). 논문 주제로 ‘한국 가톨릭교회의 사회운동’을 정하고 연구를 위해 한국에 온 지 2년 만에 다시 호주로 돌아간다는 그를 제주 강정마을에서 만났다.

리나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2005년. 레바논에서 한국 정부 장학금을 받아 연세대에서 3년간 한국학 공부를 하고 돌아간 뒤, 2013년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 강정에서 만난 리나 코레이라트. ⓒ정현진 기자

그가 논문 주제를 정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계기는 강정마을에 대한 기사였다. 외신을 통해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알게 됐을 때,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장면은 제의를 입고 맨 앞에 서 있는 사제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왜 그곳에 있을까”, “가톨릭 교회는 왜 기지를 반대하며, 그 근거는 무엇일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 질문이 그를 한국으로 이끌었고, 연구방법론인 참여관찰을 위해 2년간 꼬박 여러 수도자들, 사제들과 여러 현장을 누비면서 답을 찾았다.

이제 논문을 쓰라는 지도교수의 부름을 받아 호주로 돌아가는 리나를 제주 강정마을에서 만났다. 그는 왜 제주 강정의 모습을 특별히 기억했으며, 2년간 만났던 한국의 교회, 한국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싸움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리나가 태어났을 때, 레바논은 내전 중이었고 10살 무렵 전쟁이 끝났다. 삶 속에 깊이 새겨진 전쟁 경험은 그에게 “우리가 원하지 않는 전쟁을 왜 해야 할까”라는 의문을 품게 했고, 우리의 삶과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전쟁을 통해 군대가 무엇인지, 군사주의가 무엇인지 경험했어요. 난민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시리아 난민들의 모습이 남 같지 않아요. 전쟁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고통을 줘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고, 원하지 않은 전쟁을 겪어야 해요. 왜 그래야 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야 할지 몰라, 그 답을 찾고 싶어서 공부를 했고, 사람들을 만났다. 나와 다른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궁금했고 사람들마다 갖고 있는 고유한 역사와 경험을 통해 고통을 공감하고 함께 희망을 찾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학, 국제관계학, 역사학, 인류학을 전공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한국에서 리나의 여정은 강정, 4대강 반대 운동, 쌍용차 해고자들이 있던 대한문, 밀양, 반핵 운동 현장으로 이어졌다. 그 많은 이슈와 현장 속에서 그가 먼저 알게 된 것은 “이것은 모두 다른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본질로 비롯된 하나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해방신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의 가톨릭 사회운동은 어떤 신학적 근거를 갖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죠. 아직 어떻게 정리할 수 없지만, 한국은 해방신학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도 민중신학과 한국 문화가 섞인 고유한 한국만의 신학이 있는 것 같아요. 아직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지만....”

한국의 역사와 가톨릭 사회운동사를 공부하면서 그는 아직 뚜렷이 정리할 수는 없지만 한국만의 고유한 신학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교적 기록이 많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역사와 자료, 그 결과물을 정리하는 것은 신학자들에게 그 몫이 있을 것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가 1960년대부터 자료를 찾아 공부하고 현재를 경험한 결과 가장 많이 변화를 목격한 것은 ‘수도공동체의 변화’다. 특히 밀양 송전탑 싸움에서 수도자들의 연대 활동을 지켜 본 리나는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는 수도자들의 시대를 살고 있다”며, 주요한 변화의 양상은 수도자 개인적 참여에서 수도회 공동체 차원의 참여로 변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레바논, 호주도 신앙인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아요. 자기 삶이 너무 급박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어요. 함께 살아야 하는 이웃이 평화롭지 못하면 우리도 평화롭지 못해요. 하지만 신앙 공동체가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고자 하고 그것을 믿는다면 그 믿음을 살아야죠.”

리나가 가장 특별한 경험으로 꼽은 것은 거리에서 봉헌되는 미사다. 강정, 대한문, 광화문 거리 천막 미사는 종교가 없는 그에게도 거리에서 아프고 가난한 이들과 만나는 예수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성당에서 기도 열심히 하면서 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요?”라고 돌직구를 던지는 그는, “건물 필요없어요. 예수님처럼 어디서나 이웃들과 자유롭게 만나고 공동체 이룰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스스로 가진 짐이 너무 많아 곁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에게 교회는 더욱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세상일에 먼저 관심을 가진 이들이 함께 기도하고 지지해야 한다”면서, “어떻게 힘겨운 우리의 삶을 바꿀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 무엇이 필요한지는 스스로 이미 잘 알고 있다”면서, 세상을 바꾸고 싶고, 삶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면, 먼저 우리 자신의 변화를 도모하게 될 것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찾게 될 것이라며, “문제는 우리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이런 저항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미치광이처럼 보일 수 있을 거예요. 자신과 다른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일방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다른 삶을 선택하는 이들에게 왜 그러는지 한 번쯤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리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물었다. 그는 많이 변했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답했다. 언젠가는 가족들이 있는 고향 레바논에 돌아가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는, 특히 강정의 평화지킴이들에게서 주류에 저항하는 대안공동체의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는 리나는 많은 문제를 가진 주류사회에 대항하는 대안적 삶, 대안적 사회의 모습을 강정 평화지킴이들 속에서 발견했다. 매일 자신들만의 평화로운 방법으로 일상의 저항을 이어가는 그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그는, “끊임없이 싸우면서 멈추지 않는 것에 감동 받았다. 사람들이 잘못된 주류에 어떻게 저항하는지, 그리고 매 순간 무엇을 선택하는지 많이 배웠고, 힘도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역사는 상당히 감동적인 역사다. 문제도 많지만 끊임없이 싸웠고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면서, “나도 언젠가는 레바논으로 돌아가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시작하고 참여할지 매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나라든 문제는 있어요. 역사, 문화, 국제관계도 다양하고 문제도 다양해요.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곳에 희망도 있어요.”

리나가 본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묻자, “남북 분단”이라고 답했다. 분단이 지속되는 동안 끊임없이 다른 문제가 파생되고, 레드 콤플렉스도 계속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그는, 특히 군대 문제를 지적하면서, “무엇보다 폭력을 배운다는 것이 큰 문제다.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많은 문제를 겪고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배운다. 군대는 폭력을 수반하고 더 많이 아픈 이들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그가 만난 모든 한국 사람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그저 고마울 뿐, 다른 말을 찾지 못하겠다”는 그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문제를 많이 보여 줬다고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문제는 어디에나 있고, 그 만큼의 희망도 있다”며, “다만, 시민들이 가만히 있는다면 정부는 계속 문제를 만들 것이다. 같이 살고, 이해하고 고민하고 행동하면서 희망을 실현시키기 바란다”고 말했다.

▲ 강정 평화센터에서 그녀의 환송파티가 열렸다. 리나는 강정마을에서 발행하는 영자신문의 편집자이자 국제팀의 든든한 지원자였다. ⓒ정현진 기자

호주에 돌아가 논문을 쓰고 난 뒤, 리나는 논문에 담지 못한 다양한 이슈와 관련된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가톨릭 사회운동이라는 연구 주제의 시간과 주제가 너무 방대한 탓에 한번에 정리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한국 가톨릭 사회운동의 뿌리부터 각각의 줄기, 열매를 모두 살펴보고 싶은 욕심이다.

환송 파티를 열어 작별의 시간을 마련한 강정의 친구들은 리나에게 “존재 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 이미 강정과 레바논의 평화를 위해 실천하는 평화운동가”라고 말했다. 리나는 친구들을 향해 “나는 한국 사람이에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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