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용 신부] 10월 18일(전교 주일) 마태 28, 16-20

10월 18일 전교주일과 11월 4주간의 '지금여기 강론대'는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의 정수용 신부가 맡습니다. 원고 집필을 맡아 주신 정수용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오늘은 1926년부터 교회의 선교 사명을 기억하기 위해, 해마다 시월 마지막 주일의 앞 주일을 ‘전교주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미사 안에서 선포되는 복음 역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승천을 앞둔 순간,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시는 장면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고,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너희는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라고 말씀하십니다.

▲ 사진 출처 = pixabay.com
이 말씀을 들으니, 예전에 어느 선배 신부님이 본당 주임 신부로 부임해 있었던 일을 나누어 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 본당에는 비교적 넓은 마당과 함께 큰 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 본당에 부임해 본당 곳곳을 돌아보는데, 새로 부임한 주임신부를 발견한 관리장이 급하게 뛰어와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며 무언가 물어보고 싶어 했다 합니다. 그러면서 그 관리장님이 하시는 이야기가 “신부님, 앞으로 이 마당에 있는 낙엽을 쓰는 것이 좋을까요? 쓸지 말아야 할까요?” 하시더랍니다. 오랫동안 본당에서 일해 오신 그 관리장님은 예전 주임 신부님들 중에는 낙엽을 쓸면, 계절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그대로 두라는 분도 있었고, 반대로 청소하지 않으면 꾸중하는 분도 있었기에 새로 부임한 주임 신부님께서 정해 주길 청했던 것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주임 신부로 발령받은 그 신부님은 이 때 머릿속에 ‘아.... 주임 신부가 이런 사람이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오늘의 성경구절인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재미있게 표현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본당에서 사제, 그것도 주임 신부님의 결정 사항은 막강한 것이 현실이니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새 주임 신부님이 부임하면, 유아방이 사라지거나, 커피숍이 생겨나는 등 본당마다 큰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 사실이니 그깟 낙엽 정도야 얼마든지 결정이 바뀔 수 있는 것이겠지요. 문제는, 있는 것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 생겨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결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원의와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의견 조율이 이루어졌느냐 하는 점일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교를 알리는 가장 최전선의 공간은 바로 본당 공동체입니다. 신앙인들이 함께 모여 전례를 거행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친교를 나누는 본당은 이 세상 안에서 산 위의 마을이나 등경 위의 등불(마태 5,13-16 참조)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 줍니다. 그러하기에 그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일치하여 신앙을 증거하는 공동체가 될 때, 선교나 전교는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본당이 갈등과 분열의 장소가 된다면,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고 싶습니다.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앞두고 산에 모여 마지막 스승의 당부와 가르침을 듣는 순간에도 ‘더러는 의심하였다’(마태 28,17)고 합니다. 제자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 나약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제자들의 손에 복음 선포라는 중요한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또한, 제자들과 늘 함께 해 주신다는 약속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우리 공동체가 나약하고 부족함이 있다 하더라도,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공동체이고, 성령께서 함께 머무시는 거룩한 궁전이기에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선교 사명은 계속될 수 있고, 또 계속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이 먼저 복음화 되지 않고서는 결코 따를 수 없는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들은, 과연 주님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잘 지키고 있는 일치의 공동체인지 스스로의 모습을 먼저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마음 한목소리로 복음의 기쁨을 선포할 때,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통해 남겨 주신 우리의 사명을 충실히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정수용 신부 (이냐시오)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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