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만찬 성목요일 미사, 용산현장에서 봉헌

 

▲ 노상에 놓인 탁자를 제대 삼아 사제들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주님만찬 성목요일 미사가 4월 9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봉헌되었다. 이날은 마침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 34주기 추모식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200여명이 참석한 이날 미사는 지난 3월 30일부터 용산참사현장에서 열흘동안 계속 매일미사를 드려온 문정현 신부(전주교구)와 박병석(인천교구), 박창일(예수성심전교회), 그리고 골롬반외방선교회 소속의 오기백, 전요한 신부가 공동집전하였다. 

주례를 맡은 오기백 신부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라면서 "예수시대에는 식사 전에 종을 시켜서 손님들 발을 씻어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날 예수께서는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이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 예수를 따라 가고 있는지 우리에게 반성하도록 만든다"고 말하면서 미사를 시작했다. 이날 독서에 대한 화답송이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다"라는 귀절이어서 더 의미심장했다.  

▲ 미사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영정을 부여안고 기도하고 있다

문정현 신부는 강론에서 지난 3월 28일부터 날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희생된 분들을 위로하기 위해 꽃을 바쳐왔다며 운을 떼었다. 분향소 주변에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화분과 꽃다발로 봄향기가 가득했다. 

문 신부는 "주님의 만찬미사를 봉헌하면서 예수가 공적 활동을 하면서 주로 누구와 만나 함께 지냈는지 봐야 한다"면서 예수는 숱한 병자들,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 억압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어울려 지냈다고 답했다. 예수같은 이가 이런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지내는 것 자체가 지배자들과 기득권자들에게 위협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를 불편해하던 이들이 예수에게 붙여준 이름이 "먹보요 술보"였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는 당신이 그들에게 체포될 것을 예감하셨고, 이 때에 제자들과 더불어 마지막 식사를 하게 되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라고 말했다. 예수는 이날 빵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이것이 곧 나"라고 말한다. "체포돼서 처형된 나"라는 것이다. 내가 죽고 묻힐 것인데, 이 수난은 제자들 역시 감당해야 하므로 "이 시간을 기억하라"고 예수가 말했다고 문 신부는 강조했다. 

한편 이 자리에서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내가 너희들을 시중들며 발을 씻어주었듯이 제자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의 발을 씻어주라고 당부한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효력을 드러내는 예절이 오늘 주님의 만찬 미사"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걸 실감나게 느끼게 해 주는 장소가 바로 이 용산참사 현장"이라는 것이다.

이어 문 신부는 "유신정권이 죄를 뒤집어 씌워 죄없는 이들을 살해한 인혁당 사건이 발생한지 오늘로 딱 34년이 되었다. 그 때 나도 다리 병신이 되었다. 이건 사법살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독재정권의 조작사건이라는 게 밝혀져 무죄판결을 받고 그들은 부활했다"면서 "용산참사 피해자들도 정부에 의해 죄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곧 진상이 밝혀지고 그들은 부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상황에서도 개발조합측에서 대책위가 분향소 등을 설치하면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건물을 무단점거했다고  8억여 원의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례를 들며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복을 받겠느냐!"고 탄식했다. 강론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때리면 그저 맞으면서 지구전으로 가자.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들의 거짓을 밝히겠다고 마음 먹고, 이 진실이 결국 드러나 모든 것을 해방시킬 날이 오리라 믿고 살자"고 했다.  

▲ 용산참사 유가족의 발을 물로 씻어주고 물기를 닦아주고 있는 사제

이날 미사에 참석한 사제들은 용산참사 유가족들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었다. 가장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고 가장 아파하는 자를 깨끗이 해주고, 가장 무력한 이들에게 시중을 드는 세족례였다. 미사를 마치고 참석자들은 미리 준비해 온 음식을 서로 나누며 주님의 만찬을 기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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