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고성에서 있었던 청소년지도자들과 함께 보낸 1박2일.
그 반가운 얼굴 만큼이나 보고 싶었던 동해.
동해의 바다는 언제 보아도 푸르고 아름답다.
청간정에 올라서 바라보았던 풍경.
관동팔경의 수일경이라 일컬을 만큼, 앞이 탁 트이고, 바람이 잘 통하는 청간정.

여기선 다른 생각을 다 놓고, 그저 저 바다와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 같다.
바람과 옆에 선 노송과 함께.

문득 큰 눈이나 작은 눈이나 앞에 있는 것을 보는 데는 서로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내 작은 눈에 이 너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옛 사람들이 이곳에서 시를 논하며 바다를 관상하였을 때를 생각하니, 바쁜 중에도 머물 줄 알았던 그들의  마음과 자연과의 조화가 부럽기만 하다.

뒤이어 이 정자에 오르고 싶어 하는 다른 그룹이 있어 서둘러 내려오니, 조금 아쉽다.
조금 아래 내려오니 그만큼의 풍경관상은 아니어도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또 다른 정자가 있어 반가이 기대어 앉아 본다.
흥얼흥얼 노래라도 한 곡 부르며 머물러야 할 것 편안함이 가득차 온다.

이럴 때 부르고 싶은 노래가 몇 곡 있다.
내 단골 노래 메뉴다.
‘바람 속의 주’, ‘등불’, ‘내 생애의 모든 것’, ‘과꽃’, ‘섬집아기’ 등이다.

오늘은 편안히 다리를 펴고 앉으니, ‘내 생애의 모든 것’이 가슴에서부터 흘러나온다.
노래도 잘 못하는 데 흥얼거리기는 좋아하는 나.
어렸을 때 남들은 그래서 내가 노래를 잘하는 줄 착각하기도 했다.

시편 139편을 다시 요약해서 읽고 있는 듯 여겨지는 노래.
반복되는 가사인 “내 생애의 모든 것”으로 가사가 어렵지 않은 노래.
눈을 감고 내 주님 생각을 하며 노래해야 할 것 같은 노래.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
제가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당신께서는 헤아리시고 당신께는 저의 모든 길이 익숙합니다.
정녕 말이 제 혀에 오르기도 전에 주님, 이미 당신께서는 모두 아십니다....(중략)

정녕 당신께서는 제 속을 만드시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습니다.
제가 오묘하게 지어졌으니 당신을 찬송합니다. 당신의 조물들은 경이로울 뿐. 제 영혼이 이를 잘 압니다.
제가 남몰래 만들어질 때 제가 땅 깊은 곳에서 짜일 때 제 뼈대는 당신께 감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직 태아일 때 당신 두 눈이 보셨고 이미 정해진 날 가운데 아직 하나도 시작하지 않았을 때 당신 책에 그 모든 것이 쓰였습니다.

어머니 배 속에서 엮어 내신 분이니,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
앉거나 서거나 아시고, 내 생각도 모두 아시는 분.
그러니 그분을 내 생애의 모든 것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나를 모를 때, 결정하기 어려울 때, 상황을 읽기 어려울 때 기도할 수밖에 없다.

주님, 당신이 내 모든 것이오니, 저를 밝혀 주소서.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오니, 저를 깨닫게 해 주소서.
‘내 생애의 모든 것’인 주님, 부족한 저를 받아 주소서.

▲ 겸재 정선이 그린 청간정.(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내 생애의 모든 것

 - 이형진

내 생애의 모든 것 알고 계신 주님
내 생애의 모든 것 살피시는 주님
내 생애의 모든 것 당신께 드리니
내 생애의 모든 것 받아 주시옵소서

어디에 앉아 있어도 당신 알고 계시며
어디를 걸어가도 살피시는 임마누엘 주님

내 생애의 모든 것 당신께 드리니
내 생애의 모든 것 받아 주시옵소서

어디에 앉아 있어도 당신 알고 계시며
어디를 걸어가도 살피시는 임마누엘 주님

내 생애의 모든 것 당신께 드리니
내 생애의 모든 것 받아 주시옵소서
받아 주시옵소서

  

김성민 수녀 (젤뜨루다)
살레시오회 수녀이며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동화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이야기해 주고 싶은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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