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7일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결정하고 다음 주 이를 공식화할 것이라는 보도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민주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세계에서는 북한과 방글라데시, 그리고 아직 민주화가 덜 된 이슬람국가들을 제외하면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고 있는 나라가 없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원칙에 벗어난다. 1948년 유엔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 제18조는 사상과 양심 및 종교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 조항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종교 자유와 마찬가지로 각자가 자유로 자기 판단을 바꿀 수 있고 혼자서나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체 안에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교육(가르치는 행동)과 예배 및 실천으로 그의 사상과 소신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역사 문제는 외부에서 간섭하거나 생각을 강요할 수 없는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문제로 원칙적으로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분야다.

역사는 큰 사건의 연대나 주역들의 활동상을 배우고 암기하는 것으로 충분한 학문이 아니다. 사건을 보는 시각과 판단에 따라 과거사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토론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새 교훈을 배우고 기존의 판단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가치의 학문이다. 따라서 권력이 학생들에게 어떤 가치나 판단을 하달하고 지시하는 학문이 돼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의 인생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역사관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보고 말하는 것이 혼란스러우니 “역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체주의 사고방식이다.

▲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지금여기 자료사진

제2차 대전 뒤 일본을 점령한 미군정은 1947년 일본 임시정부에 대해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폐지하고 민간 분야 학자들에게 교과서를 집필하도록 지시했다. 그래서 일본이 국정을 폐지하고 검인정제를 채택한 것이다. 미국이 비민주적이라는 이유로 폐지를 지시할 정도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민주주의 원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68년 전에 폐지했고 우리도 2007년 개정교육과정에서 폐지한 나쁜 제도를 우리가 지금 굳이 부활시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박근혜 정권은 왜 이처럼 문제가 많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강행하기로 결정했을까? 박근혜 정부가 국정화를 강행하려는 진짜 이유는 뭔가?

의문이 많다. 박근혜-새누리당 정권도 당장은 현재의 역사 교과서가 너무 좌편향돼서 그것을 바로 잡으려 한다는 것 외에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말하지 않고 있겠지만 장기적인 정치적 이유를 우리도 어렵지 않게 추리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두 차례나 인용한 명언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진리를 정권유지에 활용해 보겠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 목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불법선거로 정권을 장악하고도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다. 군대와 경찰, 막강한 정보기관 국정원을 통해 반정부 세력을 통제하며 권력을 향유하고 있다. 언론도 친정권 신문과 정부에 장악된 방송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분야에서는 오히려 수세에 있다. 재야 역사학자 역사 교사들이 “과거”를 지배하고 있다. 학부들도 국정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것 같다. 이들이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새누리당은 내일이 불안하다. 지금까지 저지른 역사적 죄과가 많아 내일이 불안하다. 그래서 내일의 안전을 위해 과거를 장악하려고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새누리당처럼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오늘을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오웰의 명언을 하늘의 계시처럼 믿고 있는 정치인 정당이 지상에 또 있을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새누리당이 오웰의 이 말을 믿고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현재 그들이 지배하는 체제가 바로 오웰이 말하는 전체주의 체제라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한국은 과거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세력들이 그들을 끊임없는 감시와 탄압으로 억압하는 “1984” 전체주의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빅브라더들과 과거를 놓고 투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화 세력은 민주주의를 위해 박근혜-새누리당과의 과거 장악투쟁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민주세력은 교과서 국정화 찬반 투쟁을 단순한 교과서 국정화 투쟁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걸린 아마겟돈이라는 각오로 투쟁에 임할 태세다. 한국 민주화를 위한 제2의 투쟁이 전개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장행훈(바오로)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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