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IC 좌담회 - 강신숙, 맹주형, 박동호, 조현철

““찬미받으소서”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우리 교회 안에서 JPIC를 의식하고, 논의하며, 사목적 구현을 확산시켜야 한다”

지난 9월 15일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주제로 열린 에코 포럼에서 발표를 맡은 서울대교구 유경촌 보좌주교는 회칙 실천을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로 JPIC에 대한 인식과 사목 구현을 주문했다.

JPIC는 ‘정의, 평화, 창조보전’(Justice, Peace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을 말한다.  개혁적 장로교 연합체인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에서 처음 제안된 뒤, 1983년 밴쿠버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총회(WCC)에서 채택된 교회 운동이다. 운동의 목적은 인류와 교회의 공통과제인 인권, 경제불평등, 민주주의 실현 등 현대사회의 과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으로 한국 가톨릭교회에는 1990년 한국에서 열린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을 위한 세계대회’를 통해 알려졌다.

에큐메니컬운동의 한 축이기도 한 이 운동은 30년 전 당시에 이미 사회,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생태, 환경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며, 모든 피조물간의 관계 회복과 연대를 통한 복음화의 비전을 제시했다.

유경촌 주교는 사회 회칙이 다루고 있는 주요 주제의 흐름이 ‘새로운 사태’의 정의, ‘민족들의 발전’의 평화에서 ‘찬미받으소서’의 생태로 변화, 통합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에 부합하는 운동의 하나로 JPIC를 제안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계기로 제안된 JPIC운동이 한국 교회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구체적 방법을 묻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진행된 10월 1일 좌담회에는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박동호 신부, 예수회 조현철 신부, 성가소비녀회 강신숙 수녀,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맹주형 사무국장이 참석했으며,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여전히 JPIC가 생소한 현실과 그 배경을 짚어 보고, 현재 교회 현실에 맞는 JPIC 구현 방법을 제시했다.

▲ (왼쪽부터) 좌담회에 참석한 박동호 신부, 맹주형 국장, 조현철 신부, 강신숙 수녀. ⓒ정현진 기자

JPIC, 교리적 차원에서 가장 핵심적 가치

“병자와 죄인 세리, 창녀와 함께 먹고 마셨지만 사두가이와 바리사이, 율법학자를 위선자로 신랄히 비판한 예수....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실현을 위한 예수의 노력은 모든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나타났다. 하느님 나라에 바쳐진 예수의 삶은 JPIC에 대한 헌신이기도하다.”

먼저 조현철 신부는 JPIC의 당위성에 대해 “그것이 예수의 삶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1971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문헌 ‘세계 정의’ 6항에서 “정의를 위한 행동과 세계 개혁 활동에의 참여는 복음 선포의 본질적 구성 요소임이 명백하다. 즉, 인류를 구원하고 온갖 억압에서 해방시켜야 할 교회 사명의 일부”라고 밝힌 것을 들며, 성경은 안식년, 희년 그리고 예수의 사명 선포 등을 통해 근본적으로 정의와 평화, 하느님 창조 질서 보전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역대 회칙에서 이번 ‘찬미받으소서’까지 정의와 평화, 창조보전은 교회의 사명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가치임을 줄기차게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당위를 가진 JPIC는 교회의 존재, 사명에 맞게 이뤄지고 있는가. 박동호 신부는 정의와 평화, 창조보전의 소명이 교회에 있음이 한국교회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조차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JPIC 활성화를 위한 고민 이전에 그 원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논점을 제시했다.

JPIC 실현은 교회의 의지이자, 의도의 문제
정의, 평화, 창조보전을 위한 문화와 리더십 부재

“교회의 본성은 현실 세계 속에서 당연히 정의, 평화, 하느님 창조질서의 문제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데도 그토록 철저하게 배제된 이유가 무엇일까. 교회는 교회관, 교회론을 인식하는 자체, 그리고 교회 구성원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정의, 평화의 삶과 관계없이 수십 년을 이어 왔다. 이것은 몰라서라거나, 다른 일을 중시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내재화된 체질상 이런 개념을 지향하고 집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동호 신부는 JPIC는 일부의 특정 운동이 아니라 교회 문헌이나 가르침에서 분명하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 교회 사명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물으면서, “특별히 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정의와 평화, 창조보전의 문제가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절박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능력이 없거나 몰라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현재의 삶, 지구 체계가 괜찮다고 생각하도록 만들며, 소수의 패러다임으로 사회를 구조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물으면서, 교황은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새로운 사태’라고 불릴만한 생태적 재앙에 직면했음에도 교회가 그것에 대항할 문화, 리더십, 법률적 틀이 없다고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선의의 뜻을 가진 모든 이들과의 열린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교회가 생태적 새로운 사태에 직면할 리더십과 문화가 없다.” 이 진단 앞에 어떤 처방전을 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좋은 처방에도 당사자의 의지가 없다면 무의미하다. 참가자들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내부의 동력을 살리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 교계제도가 JPIC 실현에 맞는가 들여다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 안의 ‘패배주의’라고 했다.

조현철 신부는 현재 교계제도, 체제를 배제하는 것 보다는 있는 상태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현재의 조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 교회는 지금의 모습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라면서, 교회 내 정의, 평화, 창조보전을 지향하는 조직이 조금씩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신부는 교계제도에서 교회의 또 다른 한 축인 수도회가 갖고 있는 활동 지점, 각 수도회와 연합체에 있는 정의평화경전문위원회, 생명평화분과 등을 보다 체계화 시키고 활성화 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적 대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에 나선 수도자들. (사진 제공 = 성가소비녀회)

교회의 구조와 존재가 JPIC에 맞는가 살펴야
JPIC를 위한 독립된 조직, 기구 보장 필요

강신숙 수녀는 수장의 렌즈에 따라 보고 움직이는 가톨릭 교회의 구조를 언급하면서, 이같은 한계를 보완하고 탈피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수녀는 JPIC를 제기한 세계교회협의회는 세계의 정의, 평화문제를 집요하게 다루면서, 해마다 회의를 통해 이슈화하고 중요 지점마다 신학화 작업을 하며 행동 규칙을 만들고 있다면서,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누가 시작하든, 각계 각층을 초대해 토론과 논의의 장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고, 가능하다면 수도회가 먼저 나서 시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강 수녀는 또 노동, 환경과 관련된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교회의 무관심, 교계제도의 한계로 인한 무력감을 현실적으로 느끼게 됐다면서, “내부적으로 가장 무서운 것은 패배주의”라며, “패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꾸준히 고리를 엮고, 힘을 모을 수 있는 계기로서 ‘사건’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근본적인 교회 구조가 교회 본성, 존재 이유와 맞는지 성찰하고 쇄신하자는 호소를 하고 있다. 교회 구조는 그 사명과 본성에 맞도록 이뤄져야 한다. JPIC가 시대의 소명이고 해야 할 일이라면, 거기에 맞는 교회 조직, 본당, 수도회, 주교회의 구조가 맞는가 한번 돌아봐야 할 일이다. 특히 신학자들이 한국교회가 사명을 이루기 위한 조직 구조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박 신부는 이런 당부와 함께 현재 교회의 시스템을 배제하는 것보다 변화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우선적으로 JPIC 실현을 위한 교회 조직, 기구의 독립성 보장” 그리고 본당의 개념과 위상 변화를 제안했다.

우선 그는 교회 조직 운영에 대해, 각 교구나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상임위의 허락을 받고서야 활동할 수 있으며, 이는 상임위원들의 의사에 따라 세상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JPIC를 이상이 아닌 현실로 드러내려면 독립된 정의평화위원회 또는 평의회가 운영진을 만들어 토의하고 의결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본당 구조와 운영에 대해서도 “현재 본당은 ‘숫자’ 또는 관리 단위로만 인식되고 있으며 복음화와 관계 없는 공동체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본당은 신자들이 그 지역과 각자의 일터에서 복음을 실천할 수 있는 터전임에도 현재 본당 제도는 교회의 역할, 의지와 맞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오체투지에 나선 조현철 신부. (사진 제공 = 녹색연합)

JPIC를 위한 제도와 정책은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실천 여부에 따른 평가가 없는 것

맹주형 국장은 그럼에도 사람들이 조금씩 교회의 JPIC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하면서, 교회 내에도 비정규직과 정규직 차별이 당연한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변화하기는 어렵겠지만, 끊임없이 생명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연대할 때, 강고한 위계를 허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맹 국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나 운동, 이미 마련된 JPIC를 위한 교회 내 정책과 장치가 충분하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일례로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짚었다.

그는 무엇보다 JPIC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 중 하나인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20년째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본당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면서, 토론회나 문서상으로만 제안할 것이 아니라, 이 운동이 교회내 보편적 제도로 보장될 수 있도록 강제성 있는 권고 또는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동호 신부는 이에 대해 “좋은 정책이 있다면 그 실행에 대한 감시와 규제 장치가 있어야 한다. 잘했을 때와 잘하지 못했을 때 공과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며, 제안만 하고 실행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진행하는 가톨릭 유아생태교육 10주년 기념행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교회 내 시민사회운동의 영역 활성화

이런 차원에서 박 신부는 정치공동체를 원용한다면, 교회 내에도 정부 부처에 해당하는 기관과 시민사회의 영역이 있을 것고, 교회 내에 더욱 필요한 것은 시민사회의 영역의 활성화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 천주교탈핵연대 등 유기적 결성체로서 교회의 JPIC 의식을 확산하고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조직의 활성화와 함께, 이미 교회 내에 있는 재원과 개별적 활동을 묶어 자발적 임의 조직으로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맹주형 국장도 주교회의 정평위에서 진행하는 활동가 대회를 예로 들었다. 그는 교회 내 NGO조직과 각 정의평화, 환경, 노동위원회, 각 지역 단체와 개인이 포함된 논의와 소통 구조를 확산할 방법이 분명히 있다면서, 그런 속에서 신학적 영역, 본당 사목, 활동가의 영역을 모아 비전을 발견하고 변화와 실천을 촉구하는 동시에 교회 안팎에 하나의 건강한 압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JPIC 실현을 위해서는 먼저 자연스러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보다 많은 사람이 JPIC가 신앙의 핵심임을 알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면서, 구조는 구조대로 접근하고, 각 상황과 이슈에 따라서 다양한 수준과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강신숙 수녀는 우선 교회 내적인 자성과 회개가 필요하며, 수도회 안에 JPIC학교를 통해 공부와 기도 그리고 현장이 만나는 기회를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 수녀는 현재는 수도회 내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다른 수도회와 평신도, 나아가 비신자까지 대상을 확대할 것이라면서, 궁극적으로 좋은 일꾼을 양성하고 그들을 교회와 세상의 리더로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호 신부는 JPIC 문화를 확산하는 방법의 하나로 ‘매일미사’ 책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박 신부는 매일미사의 묵상과 보편지향기도를 통해 2년 정도 JPIC 지향에 맞춰 설명하고 제시하다보면, 하나의 분위기와 문화로 자리잡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맹주형 국장은 전반적인 인식 변화를 위해서는 일상성이 중요하다며, 대표적으로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에서 하고 있는 즐거운 불편 운동, 우리농촌살리기운동과 같은 생명운동을 하나의 사업이 아닌 문화로 확산시키는 방법을 찾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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