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게 강하게"

(유럽권의 대표적 중도좌파 매체인 <가디언>은 9월 28일 폴 밸러리가 쓴 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국 방문을 종합 평가했다. 그는 낙태와 이민이 미국 정치의 오랜 정치 쟁점이며, 2016년에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어조로 민주당에 유리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미국 정치에서 중도층인 가톨릭신자들의 향방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교황은 미국 대선에 첫 투표자인가?

폴 밸러리

3달 전, 볼리비아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기자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왜 당신은 열심히 일해서 세금을 내는 중산층에 대해서는 그렇게 언급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냐고 물었다. 볼리비아에서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악마의 똥 냄새”를 풍긴다고 통렬히 까댄 뒤였다. 그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내 실수”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번 미국 방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경제의 승자들에게 관심을 분명히 돌렸다. 그 결과를 놓고 그들이 전적으로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황은 그럼에도 미국에서 정치적 행위자로서 아주 조심스러웠다. 이전에 그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말했다. 그는 백악관 방문, 의회 연설, 유엔총회 연설 등 중요한 자리에서는 늘 균형을 맞추고, 그러면서 노숙자와 이주민, 그리고 수인들을 방문했다. 그가 타고 다닌 작은 피아트 자동차는 겸손의 상징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며 지구에 남겨 온 발자국보다 더 작은 발자국을 남기며 살아야 한다는 분명한 (생태주의적) 메시지였다. 라틴어로 “Fiat voluntas tua”는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예수의 기도(마태 6,10)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말들은 아주 노련했다.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미국 주교들이 낙태와 동성혼인과 같은 문화전쟁에 “거칠고 분열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꾸짖었다. 그는 미국 주교들에게 한 연설에서 “나는 여러분을 판단하거나 가르치려고 온 게 아니다”라고 말한 뒤 바로 그렇게 했다.

그의 질책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분명했다. 그는 미국을 떠날 때도 미국 교회가 더욱 관용적이고 더욱 포용적이어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그 질책을 반복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접근법으로 자기가 주창하는 더 부드러운 스타일을 실현했지만, 그럼에도 미국의 우파가 그에게 듣고 싶어 하지 않던 메시지들을 제시하는 데에는 비타협적이었다.

미국 주교단은 미국의 평신도 평균보다 상당히 보수적인데, 그가 피임을 보험 대상에 포함하는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을 크게 비난하고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미국 대법원을 한 대 날려버릴 것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세계가정대회에서 (국법과 상관 없이 낙태를 반대하고 동성결혼을 반대할) 종교의 권리를 종교적 책임의 맥락 속에서 보았다. (편집자 주- 교회 차원에서는, 공식적인 교황의 미국 방문 목적은 세계가정대회 참석이었으며, 이 대회를 연 필라델피아 대교구는 가정 문제에 아주 보수적이다. 10월 4일부터 바티칸에서 열리는 가정에 관한 세계 주교대의원회의 직전에 열리기 때문에 이 대회는 시노드의 향방과 관련해 주목받았다. 또한 교황은 23일, 아래에 나오는 세라 성인 시성식 뒤 예정에 없이 가난한 이의 작은 수녀회를 방문해 이들의 노인 사목을 격려했는데, 이를 두고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는 이 수녀회가 오바마의 의료보험제도를 놓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 데 대한 지지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수녀회는 수녀회가 고용하고 있는 이들의 피임 행위를 (수녀회가 내는 보험비로) 의료보험으로 지원하는 것은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므로 수녀회의 종교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각 개인의 존엄”은 “형제적 사랑으로 하나가 된 한 공동체의 이상”이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적 개인주의는 사회적 연대와 균형을 이뤄야만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공화당의 대선후보 1위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1100만 불법 이주민을 싹 쓸어내 본국으로 쫒아내야 한다고 주창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이민을 강력히 지지했다.

미국 방문 내내, 교황의 말과 행동은 노련하고 세심했지만 또한 도전적이었다. 그는 큰 몽둥이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말을 부드럽게 할 수 있었다. 그는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과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규제 없는 자본주의를 격렬하게 비난하며, 지구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부자 나라들의 무관심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는 의회 연설에서 이러한 과거의 비판들을 순화시켰다. 그는 부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힘과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의 진취성과 창의성, 그리고 기술을 칭찬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단기 이익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의 공동선에 이바지해야 한다. 현재 너무 많은 가난한 이들이 이러한 진보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기심의 경제를 봉사의 경제로 대신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협력, 그리고 합의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의 부드럽게-부드럽게 접근법에는 모자란 점들이 있었다. 미국 주교들이 사제 성추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용기” 있었다고 칭찬한 것은 교회가 여전히 충분히 행동하지 않고 있다는 피해자들의 비판에 대해 좀 이상한 대답처럼 들렸다. 그는 피해자들을 만난 뒤 “하느님이 울고 계신다”고 말했지만, 이는 가해 사제들과, 사건을 덮었던 주교들을 징계하는 더 빠른 행동을 전혀 대신하지 못한다. 그는 (사제 성추문과 관련해) “그 결과가 어떤 것이 되든지 간에 진실의 길만 따를 것”이라고 다짐하고 “성직자와 주교들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교황청에서는 이 두 가지를 위한 절차가 아주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워싱턴에서 9월 2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성한 선교사 후니페로 세라 신부도 논란이 많다. 그는 성인이라기보다 죄인이라고 보는 토착민(인디언)이 많은데, 세라 신부를 시성한 것은 잘못된 조언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주- 프란치스코회 소속인 세라 신부는 18세기에 당시 스페인 식민지이던 캘리포니아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이 지방 교회의 기초를 닦았던 인물인데, 인디언을 강제 개종시켰다는 비판이 있다. 시성식 사흘 뒤인 26일, 그의 묘석 등이 훼손되고 페인트로 “인종학살의 성인”이라고 낙서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또한 낙태 반대운동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우선했기 때문에 시작된 미국 수녀들에 대한 교황청 조사를 (4월 16일) “화해”로 끝내면서 미국 수녀들의 활동을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을 어떻게 향상시킬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는 교회가 수녀와 평신도 여성의 “거대한 기여”를 인식해야 할 때라고 말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아일랜드 이민 후손으로 미국에서 처음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가톨릭 신자 대통령인 케네디가 1963년에 바오로 6세의 대관식에 참석하러 바티칸을 방문했다.(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하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그의 메시지는 도발적이고 뚜렷했다. 난민은 물론 경제적 이민도 환영할 필요를 되풀이하여 강조했다. 그는 담대하게 주장했다. “우리는 난민의 숫자를 보고 놀라서는 안 되며, 그보다는 그들을 사람들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말들은 “피에, 때로는 죄 없는 이들의 피에 흠뻑 젖은 돈”을 좇는 무기 거래로 돈을 버는 이들을 말할 때 엄하게 울려퍼졌다. 미국은 세계 무기수출 1위국이다.

그는 또한 교회 안을 말할 때도 시원시원했다. 티머시 돌란 추기경이 주장해 1억 7700만 달러(약 2100억 원)를 들여 개축한 뉴욕 대교구의 성 패트릭 대성당에서 드린 미사 강론에서 그는 사제와 수도자는 검소한 생활을 하며, 자기들이 세속적으로 안락해야 더 잘 봉사할 수 있다는 주장을 경계하라고 상기시켰다. 돌란 추기경은 매디슨 가에 있는 한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가장 놀랍게 멋들어진 발자취 가운데 하나는 그가 의회에서 연설하면서 “생명을 그 모든 단계와 차원에서 절대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때였다. 그는 교황이 되고 나서 첫 인터뷰에서 가톨릭교회가 낙태에 너무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공화당 의원들은 큰 박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전의 두 교황이 그들의 (낙태 반대) 정책을 찬성했던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황은 돌연 왼쪽으로 돌아서서 사형제를 격렬히 탄핵했다. 정치적으로 완벽한 일격이었다. 미국 우익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낙태라는 단어는 그의 입 밖으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기후변화는 그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사실상 맨 처음 언급한 문제였다. 그는 유엔총회에서 기후변화가 가난한 자에게 맨 처음, 그리고 가장 악영향을 끼친다고 연설했다. 그리고 가난한 자의 고통과 이 지구의 울부짖음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전례 없던 수준으로 이 문제를 파고듦으로써 이전의 교황들보다 더 나아갔다. 지속적 발전이라는 목표는 “희망의 중요한 징표”다. 유엔을 개혁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금융기구들을 개혁함으로써 가난한 나라들이 “억압적인 융자제도에 종속되지 않도록”해야 한다. 그는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 타결은 칭찬했다. 그리고 그는 파리에서 곧 열리는 기후변화회의에 초점을 맞췄다.

이 교황은 윤리주의자이면서도 전술에 능하다. 그가 미국 방문 중에 행한 이 모든 말과 행동이 미국에서 상당한 영향을 준다. 정치적으로는, 미국 유권자의 1/4을 차지하는 가톨릭 신자에게 큰 영향을 주는 계기였다.

이전의 두 교황(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이 있을 때, 공화당원들은 자신들의 반 낙태, 반 동성혼인 입장을 교황들이 찬성한다는 데 의지할 수 있었다. 반대로, 가톨릭 신자인 민주당원들은 한편으로는 교황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당 지지층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줄타기를 하면서 교묘한 처세가 필요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상황을 거꾸로 뒤집었다. 그가 승인한 것은 민주당이 선호하는 정책들이다. 즉 불평등, 이민, 사형, 그리고 기후변화다. 민주당원들은 교황의 냉대를 받다가 품에 받아들여졌고, 반면에 공화당원들은 “길가로 차인” 느낌을 말한다. 가톨릭 주교들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공화당원들을 승인하고 민주당원들에게 영성체를 거부하는 데 대하여 덜 열혈적일 것이 거의 확실하다.

교황은 백악관을 향한 2016년의 대통령 선거 경주에 결정적 영향력을 가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폴 밸러리(Paul Vallely)는 영국의 종교, 윤리 전문 저술가이자 아프리카와 발전 문제 활동가다. 1990년에 쓴 “제1세계의 윤리와 제3세계의 부채”에서는 그때까지 제3 세계 지원을 자선의 눈으로 보던 것을 정의의 관점으로 바꿔 놓았으며, 2013년에는 교황 전기 “프란치스코: 매듭을 푸는 사람”을 썼다.)
 

기사 원문: http://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5/sep/28/pope-francis-us-presidential-race-democratic-party-cathol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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