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쟁, 불교의 갈등 해결방식

우리나라 불교의 핵심사상인 ‘화쟁’(和爭). 화쟁은 다툼을 화해시킨다는 뜻이다. 신라시대 때 다양한 불교의 이론이 있었고, 각 이론의 사상가가 자신의 이론이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이론은 배척하자 원효는 이처럼 대립하는 이론들을 화합시켰다. 이것이 곧 화쟁이다.

지난 22일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도법 스님을 비롯해 불교계 대표 논객들이 모여 화쟁이 무엇이고, 화쟁을 실제로 사회나 종단 내부문제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원효는 불교 이론을 정립하고 한데 모으는 것에 화쟁했지만, 21세기에는 사회문제에도 화쟁을 적용한다. 2010년에 만들어진 화쟁위원회는 4대강, 쌍용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등 여러 사회문제에 직접 나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화쟁의 의미에 대해 각각의 견해를 나누고, 화쟁위원회의 갈등해결 방식과 조계종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화쟁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등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과 이에 대한 반론이 오갔다.

▲ 9월 22일 도법 스님과 불교계 대표 논객들이 화쟁에 대해 토론했다. ⓒ배선영 기자

천주교에서도 각 교구 사목위원회,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이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교회 쇄신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종교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접근하는 방식과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 등 이번 좌담회에서 치열하게 토론하는 불자들에게 천주교의 모습도 비쳤다.

우희종 교수(서울대)는 화쟁을 “서로 열린 자세를 통해 각자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실상에 대한 총체적이고 바른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덧붙여 화쟁은 특정 상황이나 대상의 모습은 각자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밖에 없는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그러나 화쟁이 원만하게 이뤄지려면, 특정 대립상황에 개입돼 있는 구조적 탐욕과 의도의 실상을 밝혀 이를 없애는 작업이 먼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도법 스님은 현장에서의 경험을 얘기하며 화쟁위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는 곳이다. 제3자 입장에서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4대강, 쌍용차, 강정마을 등에서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대화하는 장을 만들었다고 했다.

우희종 교수는 이미 노동자가 기업보다 훨씬 약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양쪽 사이에서의 객관적인 입장은 공평한 것이 아니라 강자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중재자의 역할을 돌아볼 것을 제시했다. 그는 중재자의 애매모호함이 더 큰 문제며 평등하게 중재한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치우침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화쟁문화아카데미 대표 조성택 교수(고려대)는 옳고 그름을 먼저 판단하면 이분법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화쟁이 계급, 권력관계 등을 뛰어넘는 새로운 갈등해결의 패러다임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이도흠 교수(한양대)도 구조적 모순과 권력의 치우침에 대한 성찰이 먼저 되지 않으면 화쟁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의 입장도 생각해야한다는 화쟁위의 주장이 불교계의 입장을 모호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붓다로 살자' 정웅기 연구위원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체가 아니라고 반박하며 “강자들은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 화쟁위는 사회적 약자들의 요청에 따라 문제에 개입했고, 여러 개별 만남을 통해 강자들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냈다”며 화쟁위의 노력을 강조했다.

한국교원대 박병기 교수는 화쟁위가 외부 뿐만 아니라 조계종 종단 내부의 갈등에 대해서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법 스님은 종단 문제를 화쟁적으로 풀기 위해 대중공사를 열고 있다고 대답했다. 대중공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도법 스님의 의견에 이도흠 교수는 “대중들은 대중공사가 종단문제 해결을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부정했다.

스님, 비구니, 평신자 등이 함께하는 100인 대중공사는 천주교 안의 공의회나 시노드와 비슷한 개념으로 종단의 재정구조, 선거제도 등 조계종이 안은 문제들을 직접 드러내고 해결책을 찾아 개혁을 하겠다는 목적으로 올 한 해 동안 열리고 있다.

한편, 독일에서 원효의 화쟁사상을 연구한 이제민 신부(마산교구 명례성지)는 화쟁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개념들의 조화, 이치”라며, 말 그대로 하면 “하나이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하나”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설명했다.

그는 선과 악을 어떻게 간단히 구별하겠냐며 천주교 교리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흔히 상선벌악, 천당과 지옥 등 대립시켜 이분법적으로 보지만, 이는 그리스도교 교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신부는 “Wonhyou und das Cristentum, Harmonie und Konflikt” (원효와 그리스도교, 화쟁신학)라는 독일어로 된 책을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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