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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수유아 선발대회[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35]

모유수유아 선발대회라고 아시는지.

매사 정보에 어두운 나는 세 아이를 모유로만 키웠음에도 그런 것이 있는지 도통 몰랐다. 그 옛날 나와는 한 살 터울 첫째 동생이 출전해서 상을 탔다는 분유회사 주최 우량아선발대회는 들어 봤지만 말이다. 얼마 전 k시 보건소에서 문자알림이 왔다. 4개월에서 6개월 사이의 완전 모유수유로 자라고 있는 아기에게 참가자격이 있으며 수상자에겐 소정의 상품과 상장이 지급되는 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는 바 귀하의 아기가 이에 해당된다면 제발 참가해서 멋진 추억을 만들어 가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소정의 상품’에 눈이 멀어 ‘멋진 추억’을 핑계 삼아 대회참가 신청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줄곧 ‘전국천하장사 씨름대회’의 환영에 사로잡히는데....

로와 함께 가볍게 참가한 그 대회에서 멋진 추억을 쌓다가 그만 상으로 황금송아지를 받는다. 그리고 그 송아지 등에 역시 상으로 받은 쌀 한 가마를 싣고 꽃가루가 날리는 가운데 등장하는 로와 나. 토실토실한 아기 씨름꾼 로를 안고 에헤야디야 어깨춤을 추는 내 모습이 보인다. 겸손해지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우량아 로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은 항상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젖을 먹고 뭉실뭉실 살이 올라 얼굴이 ‘물고구마’가 된 로를 바라보면 언제나 ‘일등은 떼어 놓은 당상이야’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피어올랐던 것이다.

욜라도 이맘때쯤 체격이 월등히 우량하고 힘이 장사여서 그 당시 이 아일 누가 일본의 스모 영재로 스카우트해 간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었던 판에, 그런 형의 동생이라면 천하장사 백두장사는 해 먹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참, 접수담당자의 마지막 말도 한 몫 하였다.

“셋째 아기라구요? 와~ 그럼 가산점 있어요, 가산점!”

로는 그날부터 대회출전 대비 특훈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회까지는 고작 닷새가 남았다. 몇 개의 심사기준 중 ‘성장발달’ 영역을 보강해야 했다. 뒤집기 신동에 배밀이로 전진 후진 능하고, 잠깐 혼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남다른 개인기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친 나는 로에게 잼잼, 곤지곤지, 도리도리, 윙크, 만세, 빠이빠이를 가르쳐 보았다. 하지만 로는 머리로는 되는데 몸으로는 안 된다는 눈빛으로 그 어느 것 하나도 마스터하지 못하고 만다. 어쩐지 내 환영 속 황금송아지가 음매음매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는 바닷가로 2박 3일간의 여름휴가를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로는 습하고 차가운 바닷바람을 사정없이 쐬고 나더니 난데없이 콧물을 줄줄 흘렸다. 아차 콧물 감기에 걸리고야 만 것인가! 모유수유의 어마어마한 장점 중 하나인 아기의 최강면역력을 보여 줘야 할 시점에서 이 무슨 실책인가. 로의 콧물이 대회 심사위원들에게 발각되는 날에는 심사기준 중 하나인 ‘건강상태’에서 큰 감점을 당하고 말 텐데.... 이젠 황금송아지가 쌀가마니까지 짊어지고 다른 이에게 팔려가고 있다. 크흑.

그래도 로의 물고구마 얼굴이 건재한 이상 아직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버릴 수 없다!

여행에서 돌아와 여독이 채 풀리지도 않은 다음날이었지만, 오후에 있을 대회준비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난 알프스의 하이디처럼 꾸며 보았다. 예전에 아주 가끔 살며시 꺼내 입어 보곤 했던 비밀의 멜빵치마. 별로 어울리지는 않지만 이제껏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왔던 나의 로망, 순수한 소녀. 이 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그날의 내 정신상태는 사리분별이 불분명할 만큼 흐릿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옷을 입고 네덜란드 나막신을 오마쥬한 고무 슬리퍼를 신고 남편에게 물었다.

“어때?”

남편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불안에 휩싸인 나는 “왜? 이상해?” 하고 물었고,

남편은 “어? 아니, 어.... 어....” 하더니 힘겹게 말을 이었다.

“신기해.”

내 참, 평생에 내 외모가 신기하다는 평가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길 빈다.

   
▲ '모유수유아 선발대회'에 나간 필자 김혜율과 아기 로. ⓒ김혜율
대회장으로 가 보니 50쌍이 넘는 엄마와 아기, 그리고 그 가족들로 대회장은 북적북적 축제장 같아 보였다. 아기들은 하나같이 튼실하고 순둥이스럽고 귀엽고 예뻤다. 그중 완전모유만으로 크는 아기들은 27명 이었는데 로가 마지막 참가번호 27번으로 모유수유선발대회의 최종심사대상이었다. ‘이중에서 특별상과 장려상, 우수상, 그리고 대망의 최우수상을 가리는 거라면 그다지 박 터질 것도 없군.’

생각보다 낮은 경쟁률에 김이 빠졌지만 그만큼 황금송아지가(실제 최우수상은 약 10만 원 권 상품권으로 알고 있다만 아무튼 나한텐 그게 황금송아지다) 나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참가번호 대로 차례차례 아기들 심사를 하는 동안 대기자 홀에서는 외부강사들의 강의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음악놀이수업에서 선생님이 자꾸만 노래에 맞춰 아이를 안고 서서 하는 율동을 시켰다. 문화센터 음악수업이 이런 거였다면 그동안 멀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엔 허리나 엉치 나간다고 오래 안아 준 적 없는데, 오감발달이 뭔지, 추억이 뭔지, 나는 자꾸 흘러내는 치마의 멜빵끈을 주어 올리며 8.5킬로그램의 로를 안고 춤을 추느라 혼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둘이 살짝 손잡고 오른쪽으로 돌아요(오른쪽으로 회전)
둘이 살짝 손잡고 왼쪽으로 돌아요(왼쪽으로 회전)
내 무릎 치고 네 어깨 치고 내 손뼉 치고 네 손뼉 치고~
(한 팔로 아이를 안고 한 팔로 해당 동작)~ repeat~’

심사받기도 전에 쓰러질 것 같았다. 역시 다른 엄마들은 거뜬해 보인다. 다문화가정도 많이 보였다. 그녀들은 나보다 15년은 족히 젊을 테지. 내가 그래서 무의식중에 알프스 하이디로 분했는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로는 음악이 나올 때마다 주위사람들이 다들 돌아보고 쳐다볼 정도로 굉장히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정말 남다른 목청과 흥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왠지 뿌듯해져서 이런 모습이 심사에 반영이 되면 좋으련만 했지만 그건 알 수 없었다. 네 명의 심사위원들은 두 개로 나뉜 방에서 각자 공정한 심사를 한다고 했다. 참가번호대로 한 명씩, 한 명씩 아기들이 심사를 받는 사이 음악수업이 끝나고 경혈 선생님이 등장하셨다.

아기들 성장발달에 좋은 복숭아뼈 뒤쪽의 위중혈이라는 혈 자리를 짚어 주시러 온 선생님께 질문을 드렸다.

“선생님, 큰애가 있는데요, 신경이 날카롭고 짜증도 잘 내고 너무 울어요. 이럴 때 좋은 혈자리는 어딘가요?” 하고.

나는 메리와 욜라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이 바로 직전에 폐가 안 좋으면 아이가 어떻고, 신장이 안 좋으면 어떻고 이런 말씀을 하셨기에 퍼뜩 질문을 드려 본 것이다.
그런데 경혈 선생님은 전혀 다른 대답을 하셨다.

“엄마 마음이 불안하고 힘들면 그게 다 아이들한테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가.... 음.... 알겠지요(내말이 무슨 말인지)?”

엄마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행복하게 가지는 것이 그 어떤 경혈보다도 중요한가 보다. 설마 사람을 꿰뚫어 보고 하신 말씀은 아니겠지. 휴....

   
▲ 엄마가 자체 포상으로 걸어 준 금메달 치발기를 깨물어 먹고 있는 로. ⓒ김혜율
그 사이 우리 순서가 다가왔다. 여기는 모유수유아 선발대회. 얼른 로의 콧물 흔적을 지우고 심사대에 올랐다. 그런데 심사위원들도 나처럼 조금 지쳐 있는 듯했다. 소아과 의사는 “아이가 지금까지 어디 아픈 데 없었지요? 네~ 아이가 아주 건강해 보이네요” 하고 끝. 성장발달 심사위원은 딸랑이를 흔들며 로가 따라 움직이는지 잡으러 오는지를 보고는 “아주 대단하네~ 그렇지. 잘하네. 오케이” 하고 끝. 엄마와 아기의 애착 정도와 모유수유하는 모습을 심사하는 전문가 두 분은 심사보다는 아예 그 방에 함께 앉아 젖을 주는 엄마들과 이런저런 본격적인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운 심사가 끝나고 대망의 수상자 발표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아직도 우리 로 만큼 적당히 건강미 넘치는 신체에 파닥파닥 힘이 넘치는 아가를 보지 못했다. 풍성한 머리숱도 최고였다. 딸랑이 점검 시간에는 심사위원을 보고 함박꽃미소와 웃음을 아낌없이 보여 주었기에 추가 가산점이 예상된다. 그래서 일등상만을 남겨 두고 다른 상 발표가 끝났을 때 나는 ‘기어이 일등을 하는구나. 그럼 다음 주에 있을 도 대회에 k시 대표로 출전해야하는데.... 이것 참 일등인데 안 간다고 할 수 도 없고.’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수상을 위해 젖 먹고 곯아떨어진 로를 깨우고 앞으로 튀어 나갈 준비를 했는데,

“최우수 아가는 참가번호 23번 ㅇㅇㅇ 아기!”

이럴 수가! 로가 일등상이 아니었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지만 수상아가들을 향해 눈물나게 박수를 와르르르 쳐 주었다. 대체 셋째 가산점은 어디로 간 거야. 심사위원들은 각자 최고의 점수를 준 게 분명한데! 점수 누락이 있었나? 다문화 가산점이 더 큰 거였나? 난 이제 어쩌면 좋지? 아이구 머리야,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배고파~ (아침부터 점심까지 쫄딱 굶고 있었음)

대회장 가까운 매점 앞 파라솔 의자에 쓸쓸히 걸터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쫀듸기라도 사 먹어야겠다 하며 지갑을 뒤적이고 있는데, 우리를 데리러 온 남편이 모습이 멀리 보였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참가상 수상 소식과 함께 “이것은 주최측의 실수다!”라고 떠들어댔지만 내 품 안의 로가 한층 더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로도 오늘따라 유난히 자신을 다정스레 껴안아 주고 춤까지 춘 엄마를 더 사랑하게 된 것만 같았다. 나는 어쩐지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 로가 나에겐 틀림없는 최우수 아기인걸. 오늘 엄마하고 단 둘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치? 로, 이제 어서 집에 가서 맛있는 저녁밥이나 먹자꾸나~.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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