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노동에 대해서 교회가 가르치는 바는 명확하다. 역대 사회교리 문헌들은 복잡한 수학공식이나 통계자료 대신에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경제 상황을 짚는다. 몇 가지 가르침을 따라가 보자.

1.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한 나라들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그 유용성이 의심스러운 일에도 넉넉하고 엄청난 임금을 주는 반면, 부지런하고 성실한 시민 계층이 하는 건실하고 유익한 노동에 대한 임금은 너무나도 적어 생계유지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가에 대한 그들의 공헌이나 그들이 일하는 기업의 이익과 국민 소득에 비하여 극히 부당한 것이다.(‘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 70항)

새누리당 박성호 의원에 따르면 한국수자원공사(이하 수공)가 13조 부채에도 불구하고 징계 직원 72명에게 7억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4대강 사업 이전 2조 원의 부채를 지고 있던 수공은 최악의 수질악화와 생태계 파괴, 대기업 담합과 비리로 얼룩진 4대강 사업 끝에 천문학적 부채를 떠안게 된 공기업이다. 같은 당 이채익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은 2013년 불거진 원전 비리와 저조한 경영평가에도 기본급의 537퍼센트에 해당하는 성과상여금 잔치를 벌인 바 있다.

한편 대한민국 고용노동부 소속의 최저임금위원회는 2016년 최저임금을 시급 6030원,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월급 126만 220원으로 결정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는 경영계는 2008년 이후 매년 최저 임금 동결을 주장해 왔으며 심지어 2010년에는 5.8퍼센트 삭감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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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본과 노동의 협력으로 얻어진 것을 어느 한 편에만 귀속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것이며, 또한 어느 한편이 다른 편의 노력을 무시하고 모든 이익을 독점한다는 것은 정의에 크게 어긋난다.(‘어머니요 스승’, 76항) 임금 수준에 대한 피고용인과 고용주의 단순한 계약만으로는 합의된 임금을 ‘적정 임금’이라고 보기에 부족하다.(“간추린 사회교리”, 302항)

최근 형제 간 경영권 분쟁으로 화제가 되었고 초고층 빌딩 건축과정에서 부정과 비리의 의혹을 받고 있는 어느 그룹의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은 3790만 원인데 비해, 경영의 책임을 져야 할 임원들의 평균 연봉은 그 16.9배에 이르는 6억 423만 원이었다. 특히 해당 그룹 소속의 쇼핑 회사는 임원 평균 연봉이 직원 평균 연봉의 47.9배에 달했다. 국내 30대 그룹 가운데 등기임원과 직원 간 평균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모 그룹의 재벌 3세 회장님은 직원들보다 약 100배나 많은 연봉을 받아갔다. <재벌닷컴>의 보도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수준을 자랑하는 대기업 직원의 연봉이 이럴진대, 중소기업의 현실이야 불 보듯 뻔한 일이다.

3. 노동은 모든 사람에게 속한 선이며 노동에 참여할 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노동권이 방해받거나 제도적으로 부인되는 사회, 노동자들에게 만족스러운 수준의 고용을 보장하지 못하는 경제 정책을 가지고 있는 사회는 “윤리에 합당하다고 인정할 수 없으며 사회적 평화를 달성할 수도 없다.”(“간추린 사회교리”, 288항)

최근 노사정위원회가 발표한 이른바 ‘노동개혁’안에 따르면 정리해고와 징계해고만 가능한 현행법을 고쳐서 해고의 자유를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야 불이익 조항을 변경할 수 있는 취업규칙도 사측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가뜩이나 나쁜 노동조건이 더 가혹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청년들의 고용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말은 일견 설득력이 있으나, 그렇게 만들겠다는 일자리가 정말 “만족스러운 수준”일지는 OECD 통계로도 쉽게 예측가능하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OECD 평균의 2배에 달하며, 전체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은 OECD 평균의 1.3배로 OECD 국가 중 2위에 해당한다. 그나마 시간제 노동자의 숫자가 늘어난 탓에 2위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근속년수는 평균 5.1년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 10년 이상 장기근속자도 18.1퍼센트로 꼴찌다. 고용유연성이 낮아서 기업이 힘들고 경제가 어렵다는 정부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사실이다.

최근 노동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다. 정부와 재계가 제시하는 노동개혁을 정당화하려는 ‘경제전문가’들의 주장은 도대체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지도 모를 전문용어와 통계자료들로 무장되어 있어서 일일이 반박하기도 쉽지 않다. 어쩌면 그 경제전문가들의 눈으로 보면, 노동에 관한 가르침을 발표하는 교황의 행보도 돈 벌어본 적도 없고 현실 경제에 무지한 성직자의 선동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교회의 쉬운 언어와는 달리, 그들의 현묘한 경제 식견은 우리가 묻는 쉽고도 단순한 물음에 답해 주지 않는다. 정부와 사용자가 지시하고 노동자는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그렇게 살아온 과거는, 그리고 현재는 행복한가? 당신들이 말하는 노동개혁을 따르면 미래가 더욱 밝아질 것인가? 
 

박용욱 신부 (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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