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 '생탁-택시 노동자 연대 미사'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드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두 형제님들이 안녕할 수 없고, 안녕하지 못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들에게 하느님의 안녕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9월 21일 오후 7시 30분, 고공농성장이 있는 부산시청 앞에서는 부산교구 사제단과 교구 신자와 수도자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생탁-택시 노동자와 연대하는 미사’가 봉헌됐다.

“근로기준법을 지키고,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부산일반노조 부산합동양조 송복남 총무부장(로제리오)과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부산지회 심정보 조합원(이냐시오)이 부산시청 앞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지 159일째다.

지난 4월 16일, 열악한 노동 조건과 임금 착취, 소수 노조인 민주노조 말살에 항의하며, 11미터 높이 광고판 위로 올라간 이들은 곧 고공에서 첫 명절을 맞게 됐다. 159일이 지났지만, 이들의 요구는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생탁 노동자들은 지난 9월 18일 노동위원회가 제안한 협상 자리에서 사측과 만났지만, 사측은 아무 문제없이 공장이 운영되고 있는데다, 40여 명인 사장단 내부 의견 조율도 이루지 못해 협상은 결렬됐다.

“생탁”은 1970년 부산지역 43개 양조장이 모여 만든 합자회사 부산합동양조에서 생산하는 막걸리 이름이다. 생탁은 부산지역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택시 노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측인 부산시와 택시운송사업조합은 노조원들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면서도, 조합 내 제 1노조인 한국노총 지부가 요구안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들고 나와 요구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변재승 부산지회장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요구한 수용 여부는 전적으로 사측의 의지 문제”라면서, 부산시청과 노동청,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면서 1노조 의견으로 핑계 대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생탁과 택시노조 둘 중 어느 곳이 먼저 해결되든, 함께 농성을 마칠 것이며, 그것이 공동투쟁의 목적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지난 9월 18일 오전, 부산시청 앞 농성장은 행정대집행을 당했다. 일반노조 부산합동양조 김종환 조직부장은 “계고장이나 사전 공지도 없이 들이닥쳐 끓고 있는 밥솥까지 들고 갔다. 심지어 경찰들까지 짐을 실어나르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하며, “행정대집행이라는 단어도 쓰고 싶지 않다. 최소한의 법적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현실이 비통할 따름”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 9월 21일 오후 7시 30분, 생탁, 택시 조합원이 고공농성 중인 부산시청 앞에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한 세 번째 미사가 봉헌됐다. ⓒ정현진 기자

생탁과 택시 사측, 여전히 협상 여지 없어

미사 중에는 광고판 위에 있는 두 조합원과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송복남 총무부장은 뜨거운 여름을 보냈고, 위에서 행정대집행도 지켜봤지만 많은 이들의 연대로 힘을 내고 정신력으로 견디고 있다고 인사를 전하면서, “많은 이들의 기도와 미사가 농성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또 송 총무부장은 다가오는 추석과 가족의 이야기를 묻자,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더 큰일을 위해 일상을 희생할 수 밖에 없다”며, 이번 추석은 광고탑 위에서 지낼 결심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의 강론은 부산교구 연산성당 정우학 신부가 맡았다. 정 신부는 매일 저녁 농성 현장을 방문해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다.

“고공농성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저를 안녕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지금 안녕한 누군가는 불편한 마음이나 비웃음으로 우리를 바라볼지 모르겠지만, 저는 형제들의 농성이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이 세상을 안녕하고, 더 정의롭게 만들기 위한 투쟁임을 알기에 존경을 표하며, 응원합니다.”

정 신부는 기도를 하면서 늘 가졌던 질문은 왜 저들이 저곳에 올라갔을까였지만, 그 답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이 땅에 발붙이고 살 자리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자본가든 노동자든, 건강한 사람이든 장애를 가진 사람이든 모두가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세상을 바라는 두 형제들의 지향에 저의 기도를 보탠다”고 말했다.

또 지금 여기에서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의 이웃이 안녕해야 우리 자신도 안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이 지향은 하느님의 정의와 일치, 예수님이 선포한 복음과 같기에 우리의 기도가 이뤄 것을 굳건히 믿는다”고 조합원들과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미사에 참석한 김영일 씨(도나도)는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야 할 텐데, 상황을 듣고 보니 많이 답답하다”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기도로 함께 하고 힘을 보태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지역 평신도 단체 ‘천사네’에서 활동하는 그는 이렇게 지역에서 안타까운 문제가 생겼을 때, 일부 단체뿐만 아니라 본당공동체 안에서도 공감하고 연대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본당 내 사회교리 학교나 공부 모임을 꾸려 본당을 중심으로 실천과 연대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탁-택시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미사’는 지난 7월부터 시작됐으며,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현장에서 봉헌되고 있다. 사제단은 “모쪼록 다음 달 미사는 이곳에서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면서도, 더 많은 이들이 이 자리에 연대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159일째 고공농성 중인 송복남 씨(로제리오)와 심정보 씨(이냐시오)가 미사를 함께 봉헌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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