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자아에 초점 둬야"

지난 7월 21일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됨에 따라 가톨릭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교육위원회 주최로 9월 19일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에서 열린 제 4회 그라눔 심포지엄은 ‘인성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렸다. 가톨릭 학교 관계자와 교사 등 40여 명이 참석한 이날 심포지엄에서는‘인성교육진흥법 시대의 가톨릭 인성교육 방향’, ‘가톨릭학교 인성교육 담당교사 양성 방향’, ‘학교 내 인성교육 과정의 실천적 방향’ 등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으며, 참석자들의 의견 나눔이 진행됐다.

그라눔 심포지엄은 주교회의 교육위원회가 매년 교육 실정을 두고 마련하는 토론의 장으로, ‘그라눔’(Granum)은 ‘밀알’이라는 뜻이며, 가톨릭 교육자 한 명 한 명이 세상에서 밀알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9월 19일, 주교회의 교육위원회는 '인성교육진흥법' 시행에 따른 가톨릭 학교 인성교육 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정현진 기자

교회 전인교육의 목적은 '복음화 된 사람'

먼저 ‘인성교육 진흥법 시대의 가톨릭 인성교육 방향’에 대해 발표한 구본만 신부(서울대교구, 가톨릭교육 실천네트워크)는 가톨릭 학교 교육의 사명을 통해 가톨릭 인성 교육의 방향을 확인했다.

구 신부는 인성교육 방향에 앞서, 가톨릭에서 바라본 인간관은 주체성과 공동체성, 존엄성을 바탕으로 한 인격적 인간관으로, “자율적 존재, 열린 존재, 존엄한 존재”를 지향한다며, 이는 복음적 가치관의 형성, 덕성 함양, 영성의 내면화와 각각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가톨릭 학교의 사명은 근본적으로 문화와 신앙의 종합이며, 신앙과 생활의 종합으로, 복음의 빛에 비춘 지식, 그리스도 신자다운 고유한 덕성을 성장시키고 통합됨으로써 달성된다”는 가톨릭학교에 관한 지침을 들면서, “가톨릭 전인 교육은 이러한 양 측을 통합 구현해 인격적 완전성에 도달한 참사람, 복음화 된 사람”을 양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인성 교육, 과거방식과 미래 목표 사이에 있는 '현재의 나'를 발견하는 것

두 번째 발표를 맡은 박병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는 ‘가톨릭학교 인성교육 담당교사 양성방향’이라는 주제를 통해 교사 스스로 인성교육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식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그 실현 방향을 제시했다.

박병규 신부는 무엇보다 인성교육의 방향은 ‘현재를 사는 자아에 대한 존중과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면서, 과거 가치 덕목 중심의 사회화 과정으로서 교육 그리고 미래 사회가 원하는 인재양성 중심의 인성교육에서 벗어나 “현재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분석과 고유한 주체성 발견”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신부는 현재 교사들의 인성교육 현실은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사회가 원하는 인재 양성 위주이며, 무엇보다 교사 스스로 인성교육 대상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면서, 이는 경쟁 위주의 현실교육이 주는 피로감, 과도한 행정업무로 인한 사기 저하, 가톨릭적 교육 이념의 부재, 인성교육에 대한 소명인식 부족, 학생들과의 관계 안에서 교사 정체성에 대한 의문 등 원인에서 나온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2015년 선목학원 산하 중고교사 인성교육 포럼에서 들었던 교사들의 목소리를 전하면서, 교사들이 바라는 인성 함양의 방향은 “가톨릭적 이념의 공유와 교육, 교사가 행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 보장, 학생 및 학부모와 원활한 소통, 행정업무에서 해방, 교사의 전문성 확보, 공동체적 교사 생활 그리고 ‘놀 수 있는 학교’” 등이라고 제시했다.

박병규 신부는 이러한 바람에 따라 대구가톨릭대학 차원에서 구상하는 인성교육의 기본 틀은 ‘현재’의 자아에 대한 고유한 가치와 소중함을 체험하는 것을 우선으로, 관계성, 역할과 책임, 배려를 고민함으로써 미래의 자아상을 확립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교사 직무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교사의 정체성 회복은 물론, 학생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교사와 학생 간 상호 관계의 리더십을 키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 내 인성 교육, 교과 과정과 창의적 체험이 병행되어야

‘학교 내 인성교육 과정의 실천적 방향’에 대해 발표한 최은실, 방담이 교수(가톨릭대학교)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인성교육의 두 축은 교과활동과 창의적 체험활동을 병행해 창의적 협동과정과 체험적 봉사과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교과활동에서의 인성교육도 교과서를 통한 내용적 접근과 함께 역할놀이, 창작활동, 태도 익히기 등 다양하고 현실적인 교육 방법적 접근이 상호작용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한 인성교육에 대해 “학생들은 창의적 체험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개개인의 소질과 잠재력을 계발하고 자율적 생활 자세를 기르며, 타인을 이해하고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게 된다”면서, 그러나 학생 자율보다는 교사 주도로 이뤄지고 형식적 봉사활동에 머무는 한계를 극복하고, 획일적 교육을 벗어나 학생 개개인이 스스로 의미와 동기를 찾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외국의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에서 이뤄지는 인성교육은 단편적 교과 교육이나 프로그램이 아닌 총체적 교육이며, 학교와 학부모간 연계가 활발해 교육의 책임을 공동으로 지는 점, 학생들의 자립성과 자기 책임성을 강조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와 생명 존중에 대한 교육이 포함되어 있는 점 등을 볼 수 있다고 소개하면서, “프로그램 위주의 교육, 일부 학교의 시범적 교육, 학부모의 공감 부재, 교사 변인에 따른 교육 차이, 교육 정책의 근본적 개선 부재”등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성 교육에 앞서, 학생들의 상태와 그릇을 파악해야
교회가 왜 학교를 운영하는가, 근본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 참가자들은 발표가 끝난 뒤, 주제별 토론을 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공유했다. ⓒ정현진 기자
발표 뒤, 참가자들은 주제별 토론에 참여해 교육 현장의 고민과 인성교육 실현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들은 무엇보다 가톨릭 학교 내 교육자들로서 교회가 학생과 교육자 인성 개발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 달라면서, 이를 위해 주교회의 차원에서 실행을 위한 논의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구본만 신부는 현재 사용하는 인성교육 교재를 가톨릭 학교에서도 쓰고 있지만, 사실상 가톨릭, 종교의 가르침에 반하는 가치관을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러나 가톨릭 학교를 위한 교재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전문가 그룹을 구성하는 것부터 현실적 한계를 갖고 있다”며, 이에 대해 교육위원회를 비롯한 주교회의에 제안하고 실행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인성교육의 내용 측면에서 교육의 방향이 가치교육 중심으로 가야하는 만큼, “인권교육”이 좋은 내용이자 방법이 될 수 있다면서, “인권 교육은 각 개인의 존엄으로부터 사회의 정의와 평화 문제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박문중학교 교장 박원희 수녀는 가톨릭 교회 학교로서 전인교육이 중요하지만, 먼저 아이들이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해야 한다면서, “실제로 중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인데도, 학교와 사회는 성숙한 청소년의 모습을 요구한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는가, 교육을 받아들일 아이들이 어떤 그릇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박병규 신부는 가톨릭 학교가 인성교육 내용과 방법을 고민하는 것에 앞서, “왜 가톨릭 교회가 학교를 운영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교회는 정부의 교육 정책이나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 앞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답을 하며, 늘 갈등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교육을 통해 가톨릭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현실을 따르거나 용기있는 결단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성교육법’은 유치원에서부터 초, 중,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가정과 사회에서 인성교육을 장려하고, 학교에서 인성 교육을 진흥하자는 취지로 시행됐다. 법에서 말하는 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 법에 따르면 유아부터 대학교육까지 인성교육 과정이 의무화되며, 교육부 장관에게는 인성교육 프로그램 개발, 보급과 교육 과정을 개설, 운영하려는 자에 대해 인증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고, 교사에게는 인성교육 연수를 받아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이런 인성교육법에 대해서는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각 가정과 학교,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하는 인성교육을 법제화 하는 문제와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한편, 인성교육과 관련된 자격증과 사교육 과정 등 인성교육 시장만 활성화된다는 우려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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