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주님은 페미니스트”

버스를 타고 미국 전역을 누비며 의료보험 개혁 법안 지지 연설을 한 수녀가 있다. 그는 상위 2퍼센트의 세금을 줄여 주는 법안을 발의한 한 의원이 가톨릭교리를 배웠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 강연을 시작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토론조차 금지된 여성사제에 대해 공론화하고, 초기 교회에서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직분으로 봉사한 흔적을 찾아 나선 수녀도 있다.

미국 여성 수도회의 80퍼센트가 가입한 대표기구인 미국 여성수도자지도자회의(LCWR)가 급진적 페미니즘을 따르며 교리적 일탈 등을 보인다는 미국 안팎 여러 주교의 고발에 따라 교황청이 조사를 벌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 나오는 세 수녀 이야기다.

17일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주님은 페미니스트"(원제 Radical Grace)를 본 관객들은 한국 교회에서의 여성의 권리에 관심을 집중했다.

영화 "주님은 페미니스트"는 자신의 진실한 신앙을 실천하여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가톨릭 사회에서 위험을 감수한 세 수녀들의 이야기다. 바티칸이 이들의 활동을 ‘급진적인 페미니즘’으로 규정하고, 수사, 문책하며 교회 내 '갈등의 상징'으로 만들었지만, 이들은 물러서지 않고 가부장 사회에 도전하며, 가톨릭 여성들의 종교적 평등을 위한 투쟁을 이어갔고 마침내 변화를 이끌었다. 

▲ "주님은 페미니스트"의 한 장면. 사진 제공 =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영화 “주님은 페미니스트” 속 수녀들은 말씀에 근거해서 산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과 나눈 대화에서 한 여성 관객은 영화 속 크리스 수녀처럼 한국 교회가 초기 교회에서 여성 종교지도자가 있었던 근거를 연구해서 여성사제가 나오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이어 “종교가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는데, 이 수녀들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해 사는 것을 보면서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한 남성 관객은 한국 가톨릭 교회 안에서의 여성주의 운동에 대해 물었다. 이날 게스트로 나선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 최금자 전 공동대표는 “교구 안에 여성관련 단체가 있지만 교회나 교구장의 공식입장에 벗어나면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주체적이거나 활동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최 전 대표는 “피라미드 구조의 교회에서 교회 내 성차별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고 덧붙이며, 그가 공동대표로 있었던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는 교회 밖에 있어 제도교회 안에 여성차별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호주제 폐지 등 사회전반에 걸친 성평등 문제에 대해 힘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개신교와 천주교, 함께 연대해서 여성운동을 해 봐요!”

이날 행사에는 특히 개신교 신자가 많이 참석했다. 한 관객은 여성도 담임목사와 장로가 될 수 있도록 바꾸려고 하다가 안 돼 다니던 장로교회를 나와 독립교회를 만들었다는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영화 속 수녀들을 보면서 조직 안에서 저항하는 것보다 조직을 나온 것이 쉬운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회와 다른 태도를 보인 수녀들에게 신앙심이 부족하다고 비난 하는 것을 보며, 가정 내 성차별의 부당함에 대해 말하면 ‘남편에 대한 사랑 또는 모성애가 부족하다’는 비난을 듣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고 지적했다.

또 대한예수장로회 통합 산하 교회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한 참석자는 여성이 목사가 되기까지 60년을 싸웠다며, 종교계에서 여성은 약자인데,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힘을 합쳐 여성운동을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종교에 대한 뼈아픈 지적도 있다. 한 관객은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가 오히려 혐오를 조장하고, 차별을 강화시키거나 공식화하는 데 기여하는 경우가 많다”며 “교회 주변의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수녀들처럼 조직화해서 이런 차별을 뚫고 나가면 좋겠다”고 교회에 바랐다.

유일하게 수도복을 입고 참석한 한 수녀는, 영화를 본 소감을 묻자 “영화 제목과 다르게 주님은 페미니스트가 아닐 것이며 주님은 소외된 자들 편”이라며 “미국 수녀들이 앞으로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데 좋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토크쇼를 진행한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상임대표는 행사를 마무리하며,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수녀들의 이야기인 이 영화를 보는 자체도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것이고, 변화는 일상에서부터 시작한다”며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대화한 것 자체가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과 토크쇼를 진행한 새세상을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 최금자 전 공동대표(왼쪽)와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상임대표. ⓒ배선영 기자

교황청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LCWR에 대한 조사를 벌였으며, 2012년 미국 주교 3명을 임명해 최대 5년에 걸쳐 LCWR의 전면 개조를 진행하라는 임무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뒤, 교황청은 2014년 말, LCWR의 입장을 인정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올해 4월, LCWR와 교황청은 화해로 이 싸움을 마무리했다.

영화 속 수녀들은 전통적인 “수녀복”을 입지 않고 있다. LCWR 소속 수도회는 대부분 제2차 바티칸공의회 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더욱 쉽게 함께하기 위해 “수녀복”을 입지 않고 수수한 평상복을 입는다. 새로운 수도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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