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청춘 - 변지영]

“우리나라의 60-70대 어르신들은 산업화를, 40-50대들은 민주화를 이뤄 냈다는 세대적 자부심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힘든 이유는 여러분의 세대적 자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서울대교구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의 주최로 방송인 김제동 프란치스코의 토크 콘서트가 400여 명의 서울대교구 청년과 함께 진행됐다. 기사로 접한 그의 이 한 마디가 유난히 와 닿았다. 세대적 자부심의 부재. 가톨릭학생회 역시 한국의 청년으로서 오랜 기간 이와 비슷한 문제에 부딪혀 있었기 때문이다. ‘집단 효능감’의 부재. 자기 효능감이 어떤 문제를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이나 기대감(한경 경제용어사전)이라면, 집단 효능감은 집단에서 경험하는 집단의 일원으로서의 효능감이다. 효능감이 높으면 당면한 과제에 대한 집중과 지속성을 통해 성취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정치 효능감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다. 유권자가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만족감. ‘아, 내가 참여한 것이 의미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지속적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가톨릭학생회는 어떤 효능감을 느껴 왔나

가톨릭학생회는 어떤 학교에서는 단체 유지조차 어려울 만큼 회원 수가 적고, 행사 참여율이 낮은 주요 원인 중 하나를 효능감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우리가 느끼는 가톨릭학생 운동의 자부심은 무엇인가? 대학생 단체로서, 청년 신앙인으로서 어떤 사회적 문제를 우리의 능력으로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이나 기대감이 있는가? 성공적으로 해결한 사례는 있는가? 혹자는 우리가 꼭 사회 문제에 참여해야만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단체냐고 반문한다. 물론 우리는 신앙과 대학생이라는 공통분모로 이루어진 공동체라는 점에서 여느 사회 운동 단체와는 다르다. 그러나 개인의 신앙생활과 학생회 안 친목도모만으로는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험한 발언이지만 현실적으로 말해서 지금 이 시대에 졸업 뒤 가톨릭학생회가 대학 생활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돌아볼 때 ‘신앙’과 ‘친구’, 그 정도의 효능감으로는 이 단체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가톨릭학생 운동 60주년을 맞이했던 12학번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을 종합하건대, 가톨릭학생회 구성 초창기에는 단체의 기틀을 닦는 것이 집단 효능감을 주었다. 1960년대부터는 지성인으로서의 의무감에 학생 운동이 더해졌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는 교회 쇄신에 앞장선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더러는 그 자부심이 교회와 학생 간의 분열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말이다.) 민주화 운동이 대학 생활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대학생 단체가 시위에 앞장섰고 가톨릭학생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무수한 역사 속에서 가톨릭학생회의 자부심이 백이면 백 좋은 결과를 이끌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단체의 일원으로서 느낄 효능감으로는 충분했고 저조한 참여율과 회원 수 부족이라는 문제는 없었다.

▲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는 방송인 김제동 씨.(사진 제공 =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

뚜렷한 비전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

졸업 뒤 취업의 문이 말도 안 되게 좁아지면서 대학생 단체 활동 자체가 죽었다는 것은 안다. 단지 효능감이 없어서 우리가 힘들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집단 효능감을 되찾아 오면 가톨릭학생 운동이 더 활발해질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 땅의 통일세대가 될 수 있다는 세대적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 스펙을 쌓는 동시에 한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며 세계에서 우리를 필요로 하도록 강력한 통일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김제동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비전을 내놓았다. 산업화, 민주화 이후 이제 우리 세대의 자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을 ‘통일’이라고 본 것이다. 가톨릭학생회도 이와 같은 비전이 필요하다. 2014년에 인준한 ‘가톨릭학생회 선언문’은 삶과 신앙의 일치, 캠퍼스 복음화, 사회 복음화라는 충분히 훌륭한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지만, 뚜렷한 효능감을 주기에는 넓고 추상적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이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은 국가적 이상은 될 수 있지만 현 시대를 아우르는 방향성이 되기엔 너무 넓고 추상적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지난 2014년 가톨릭학생 운동 60주년 기념 팍스제(이하 팍스제)를 준비하며, 기획단이 제시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향후 10년간 가톨릭학생회의 비전이었지만 모든 회원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는 이유로 좌절됐다.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 속에서 상실된 인간성 회복을 위해, 신앙을 통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청년 사도의 모임.” 어떤 이는 이를 보고 색이 너무 짙다고 했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415)

경선제 부활이 답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구성원이 동의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비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수가 선택한 비전을 제시한 자가 당선되고, 집권 여당도 보수와 진보를 번갈아가면서 사회는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회원의 효능감을 위한 뚜렷한 비전이 나오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 가톨릭학생회 안의 구조적 문제다. 10년이 넘게 이 단체에서는 경선을 통한 대표자 선출이 없었다. ‘총회준비위원회’라는 비상대책위원회 개념의 위원회가 경선을 대체했고 전 집행부들의 교육 속에 준비된 총회준비위원회 위원이 의장, 부의장, 일꾼으로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서 근근이 집행부를 이어 왔다. 총회는 1년에 한 번 단위대학교 대표가 찬, 반 표를 던지러 참석하는 상투적인 자리였고, 그렇게 인준 받은 기조 및 방향성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그것을 알지 못하는 회원이 부지기수일 정도로 의미가 없었다.

정책 경쟁이 필요하다. 차라리 누군가가 색이 진한 비전을 들고 나서야 한다. 자본주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 아니다/ 신앙생활과 성경 공부에 집중하겠다, 아니다/ 봉사정신이 중요하다, 아니다/ 지성인으로서 사회 문제 연구에 집중하겠다. 이런 식으로 정책 경쟁이 붙고 다수의 표를 얻은 의장단이 꾸려지고 그 다음 해에도 이러한 과정을 반복해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대학생 연합회가 될 수 있고 그 비전을 바탕으로 집단 효능감도 얻을 수 있다.

대학생으로서 학업을 병행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면서 이 집단의 집행부로 활동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그런 사람이 절실하다. 신앙인으로서, 청년으로서 복음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 단체와 더 나아가서는 이 사회를 복음화하려는 열정을 가진 후보가 절실하다. 11월 말이면 현 집행부의 임기가 끝나고 새로운 집행부가 시작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 열심히 봉사 중인 집행부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다음 집행부를 어떻게 꾸려야 하나 한숨과 함께 고민을 시작한다. 그 고민은 현 집행부만의 몫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 단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얻으려면, 그 힘을 바탕으로 우리 세대의 가톨릭학생 운동을 이어나가려면 내가 시작해야 한다. 확신한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발 벗고 나서서 집행부로서 봉사하고자 하고 건전한 정책 경쟁이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얻을 수 있다. 잃어버린 효능감을, 세대적 자부심을.
 

 
 
변지영(스텔라)
서울대교구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 58대 의장
숙명여대 가톨릭학생회 글라라 57대 회장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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