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사연구소, 광복 70주년 심포지엄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한국 교회사연구소가 1940년대에서 광복 뒤 남북한의 군정 시기 천주교의 모습을 성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9월 11일 오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광복과 천주교회'를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박태균 교수(서울대 국제대학원)는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고 노기남 대주교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공헌자이기도 했다"면서, 1948년 단독선거에 대한 적극적인 찬성의 입장을 보여 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미군정의 종교정책'을 주제로 발표한 박 교수는 해방 직후 해결했어야 할 일제강점기의 부조리를 척결하는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다른 종교에 비해 천주교, 개신교가 미군정하에서 많은 특혜를 받았다는 불공정성을 비판했다.

그는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뒤 본격화된 일본의 종교 개입과 강압 속에서 많은 종교인들이 일본의 불의한 전쟁에 적극 협력했고 이 과정에서 친일 논란이 빚어졌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해방이 되자 "종교계 역시 과거 부조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고 말했다. 또 그는 종교계 스스로 과거의 부조리를 해결해야 했지만, 한반도가 외부 세력에 분할 점령되면서 자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 (왼쪽부터) 박태균 교수, 김훈일 신부, 최선혜 교수. ⓒ강한 기자

이어 박 교수는 "미군정 시기를 통해서 한국의 종교계는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며, 한국의 종교계는 일제강점기의 부조리를 제대로 청산할 때를 놓쳤으며 그로 인해 종교계에서 '친일'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봤다.

한편, 박 교수의 발표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노길명 명예교수(고려대)는 "한국 천주교회가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미군정의 통치전략이라는 외적 요인보다는 당시 한국 천주교회가 지니고 있었던 역사인식이나 사회의식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교수는 불교, 천도교, 개신교 등 종교계에서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이 활발히 일어난 반면, "천주교회에서는 교계제도의 특성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사회경제적 수준 때문이었는지 이러한 움직임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개신교가 미군정에게서 받은 엄청난 특혜에 비하면, 당시 천주교는 미군정과 친화 관계를 가졌지만 특혜를 받은 것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훈일 신부(청주교구 민족화해위원장)는 '광복 후 북한정권의 종교정책과 한국천주교회'를 주제로 발표했다.

김 신부는 공산화된 동유럽에서의 종교 박해를 비난하며 서유럽 교회가 공산주의에 맞서 단결하도록 촉구한 비오11세 교황, 비오 12세 교황과 보편교회의 가르침을 한국 천주교가 충실하게 수용했고, 해방 뒤 교회에 현실적 위협을 주던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자세를 분명히 취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천주교는 한국전쟁 전후의 탄압을 거쳐 1950년대에는 '말살' 단계에 이르게 된다.

김훈일 신부는 1940-50년대의 천주교가 북한의 종교정책에 대응한 모습 가운데, 교회가 공산주의 세력의 종교정책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임기응변으로 대응한 점, 정치사회적 변화를 읽지 못한 것, 북한 지역 각 교구의 대응 방식이 체계적이지 못했던 것은 오늘날의 현실에 비춰 평가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이와 같은 측면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북한 지역의 교회 회복을 위한 노력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 그리고 북한 주민들을 돕고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교회 내에서 산발적이고 부분적으로 실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천주교가 더욱 체계적이고 통일된 접근 방식으로 북한 신자들에게 신앙을 전해야 하며, 북한 당국에 대해 일치된 정책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변진흥 위원장(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 단체협의회 평화위원회)은 우리 사회에서 북한 종교정책에 대한 학문적 분석 틀이 제시되고 공유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라면서, 1940-50년대의 바티칸과 남한, 북한 교회가 공조하며 북한 공산화에 신속히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평가했다.

제3주제 발표자로 나선 최선혜 가톨릭대 연구교수는 '1940년대 천주교회의 한국선교와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메리놀 외방선교회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한국 선교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국 문제를 알린 것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1940년대 초 이후 서양 선교사들이 추방되고서도, 여러 매체를 통해 한국의 종교 자유와 선교활동 재개에 대해 의견을 폈다고 소개했다. 그 내용은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여 박해를 이겨낸 한국 천주교회사를 소개하면서, 반드시 한국에 돌아가 선교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국제사회의 정의가 이뤄지게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한국 교회사연구소 이사장 조규만 주교와 연구소장 원종현 신부를 비롯해 5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 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연구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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