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총선이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여론조사는 새누리당이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을 크게 앞서고 있다. 현재 상태로는 이런 추세가 변할 가능성이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내년 총선도 승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보도다. 내분을 앓고 있는 야당 안에서도 지금 같아서는 다음 총선도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새누리당 연수회 만찬에서 “총선 필승!” 건배사를 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사진 출처 = 행정자치부 홈페이지)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정부에서 선거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행정자치부 (행자부)장관이 새누리당 연수회 만찬에서 “총선 필승!”의 건배사를 외친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공직자는 특정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 해도 공개적으로 소속 정당을 지원한다면 그것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하는 행동으로 금지돼 있다. 설사 그런 법이 없더라도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선거를 관리하는 행정의 수장이 자기 소속 정당의 승리를 위해서 편파적 행동을 하는 것이 정치윤리에 크게 어긋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지난 8월 25일 충남 천안시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 만찬 자리에서 정종섭 행자부 장관이 건배사로 “총선 필승!”을 외쳤다. 당시 만찬에는 60-70명의 새누리당 의원들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하고 있었다.

또 만찬 전에는 ‘하반기 경제동향 보고’를 하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내년에는 잠재 성장률 수준인 3퍼센트 중반 정도로 복귀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당의 총선 일정 등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이틀 뒤에는 예산 당정협의에서도 “(여)당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민생경제 현안들은 정부 예산안에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공언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 '관권 선거' 논란 가능성이 있는 발언을 한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사진 출처 =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관권 선거’ 논란을 일으킬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식 밖의 발언이다. 두 장관의 발언은 공직선거법 제9조(공무원의 중립 의무)와 85조(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금지)를 명백히 위반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 방송의 모니터링을 통해 언론의 탈선을 지적하는 시민운동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박근혜 정부 두 장관의 행동에 대해서 2012년 대선 때는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고 대선과 총선에 국민을 겨냥해 사이버 사찰 활동을 벌이더니 이제 주무부처 장관까지 나서서 새누리당 총선에 대놓고 힘을 실어 주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이에 야당은 두 장관을 공직 선거법 위반으로 중앙선관위에 조사를 의뢰했고 두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자진 사퇴를 하지 않으면 이들을 탄핵소추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반응은 별일 아니라는 태도다.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건배 구호는 부적절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 삼겠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고 반응했다. 발언이 잘못되긴 했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심지어 정종섭 장관이 건배사에서 당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며  발언이 문제될 게 없다는 투의 반응도 내놓았다. 후안무치한 궤변이다. 새누리당 연수회에서 당 승리를 외쳤는데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 어느 당의 승리를 지지했는지 모른다? 이는 국민을 얕보는 궤변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새누리당은 두 장관의 공직선거법 위반 발언이 대단한 것이 아닌 것처럼 반응했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11년 전(2004) 이와 비슷한 발언을 한 노무현 대통령을 선거중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탄핵 소추해서 두 달 동안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은 일이 있다. 이름만 바꾼 같은 정당의 모순된 행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외도인가?

2004년 2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은 경인지역 6개 언론사 기자들과 가진 합동회견에서, 6일 뒤에는 방송기자클럽 초청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 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대통령이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3월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노 대통령을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을 위반했다고 판정하고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했으나 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한나라당과 야당들이 합세해서 대통령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탄핵을 발의한다. 3월12일 탄핵소추가 국회에서 가결되고 헌법재판소(헌재)로 송달된다. 그러나 헌재는 5월14일 탄핵소추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리고 노 대통령은 두 달 만에 대통령 업무에 복귀하게 된다.

그렇게 고위 공직자의 선거 중립을 중시한 새누리당이 자기들 정권의 선거 담당 장관이나 경제부총리의 선거중립 위반에는 왜 그리 관대한가?

더욱 개탄할 일은 이런 발언을 정확히 전달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이 도리어 새누리당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거나 사안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민언련은 권력의 불법행위를 고발, 비판하지 못하는 조선일보와 공영방송을 꼬집어 “행정 수장의 총선 전략 발언을 감시 못하는 망가진 신문, 공영방송”이라고 싸잡아 비판했다.

2004년에는 노무현 탄핵을 반대하는 여론을 “왕성하게” 반영해 나라의 안정을 되찾는데 기여한 공영방송과, 지금 권력이 지명한 “낙하산 사장”의 통제 아래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 “관영방송”사이에서 무서운 괴리감을 느낀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언론인들의 용기가 요청되는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장행훈(바오로)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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