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에서 보낸 4년]

 

▲ 가지런히 정리된 나뭇가지들.

 

“제규야 일어나야지. 6시에요. 일어납시다.”

아침 6시가 되면 선생님이 우릴 깨운다. 아이들은 입으로 가능한 죽는 소리는 다 내면서 평생 잠들기로 예약한 사람들처럼 계속 자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반대 방에 있던 여자 아이들도 죽어가는 표정으로 터벅터벅 가장 큰 방인 남자 방으로 들어온다.

아이들이 어렵사리 모이면 명상시간이 시작된다. 명상은 한 시간 동안 진행된다. 코로 심호흡하며 코에서 바람이 들어오고 나올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란다. 그런데 바람이 교체 될 때마다 코만 간지럽고 엄마가 보고 싶다.

더 힘든 건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수가 없다는 점이다. 좀이 쑤시다 못해 엉덩이가 터져나가고 다리에 피가 안 통한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 행여 다리가 썩어 잘라내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지겨움을 달래기 위해 눈을 감고 명상해야 되는 시간에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장난친다.

좀이 쑤시던 명상시간

이상한 몸짓, 눈빛, 돌발행동 이를테면 방구를 끼기라도 하면 낄낄 거리다 “조용히 집중해서 명상합시다.”는 선생님 말씀에 재빨리 자세를 고쳤다가 다시 장난치던 친구와 눈을 마주쳐 ‘푸핫’ 소리를 냈다가 재빨리 숙연한 척 하곤 했다. 그러다 다시 심심해지면 침묵의 007도 이따금씩 하고 앞에 명상하고 있는 친구 옆구리를 쿡 찌르고 모른 척하면서 놀았다.

방구를 끼면 아이들로부터 ‘테러리스트’라는 칭호로 추앙 받았는데 나도 아이들 가운데 몇 번 폭탄을 투척했다. 가장 재밌는 장면은 내가 방구를 꼈는데 옆에서 애들끼리 서로 방구를 꼈다며 냄새가 죽이느니, 니가 껴서 그런거니 하면서 티격태격 할 때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옆으로 쓰러져 자는 친구들은 이따금씩 선생님이 눈을 뜨실 때면 일어나야 했다.

기상과 명상은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가장 힘든 시간임에 틀림없다. 선생님은 끝도 없이 아이들을 다독거리셔야 했고 우린 기다림과 피곤함을 이겨내야 했는데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명상시간은 푸른 누리에 온지 2주가 채 안 돼서 20분으로 줄어들었다. 몸이 편해 좋은 것도 있었지만 자신을 집중해서 돌아보는 시간이 20분도 채 안 된다고 생각하면 썩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하면 미치겠고 안 하면 뭔가 아쉬운 그런 것. 그런 게 바로 욕망과의 절제와 타협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밥과 오줌통



땔감도 주울 겸 아침 산책

명상이 끝나고 나면 아침 식사 당번 두 명과 선생님(담임선생님이 남녀 두 명) 한 명만 남고 모두 산책 갈 준비를 해야 한다. 바깥에서 가볍게 몸을 풀어야 되는데 애들은 세상의 궂은일은 자기가 다 맡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귀찮아한다.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하면서 몸을 다 풀면 산책이 시작 된다.

산책은 6월에 출발할 국토순례 대비 차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친구들은 “왜 벌써부터 준비하고 난리냐”며 아침 산책을 혹사나 학대 정도로 평가하며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러나 산책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그건 바로 산에서 땔 나뭇가지들을 주워오는 일이었다. 덩치 큰 나는 아주 많은 양을 들거나 큰 나뭇가지들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모든 방이 불을 때는 건 아니다. 푸른 누리에 단체 손님이 많아지면서 손님들에겐 기름보일러를 때는 방을 주고 그 방에는 전기 코드와 전깃불도 넣어 주었다.(선생님들은 땔감으로 때는 방에서 촛불을 켜고 글을 보셔야 했다.)

▲ 푸른누리 뒷간

속리산 자락이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산속을 걸어 다닐 때면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금세 마음과 몸이 가벼워지면서 찬 공기를 기쁜 마음으로 들이쉬고 내쉬었다. 눈이 오는 날에도 물을 마시고 싶으면 냇가에 가서 물을 마셔야 했다. 비누 없이 세수하고 머리 감고, 소금으로 양치질을 해야 했다. 오줌통에 눈 오줌을 모아다 며칠이 지난 뒤 밭에 뿌렸다. 삽에다 재를 퍼서 그 위에 똥을 눈 뒤 그 똥을 모으는 통에 넣고 나중에 거름으로 썼다. 이런 것들을 당연한 섭리처럼 받아들이고 살면서 우리는 여태껏 멀리 해왔던 자연과 친해지고 있었다.

산책을 다녀오면 마당에 주워온 땔나무를 쌓아두고 큰 방으로 들어가 아침 모임을 간단하게 가진다. 오늘 어떤 일정이 있는지 이야기 해주고 아침 식사가 준비되기 전까지 학교에서 가져온 책을 읽는 독서시간이 있다. 아이들 사이에선 가장 야한 책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가장 큰 이슈였다. 어느 이 시대의 지성인이 <11분>이 가장 야하다는 제보를 넣었고 급기야 <11분>은 푸른 누리 베스트셀러가 되어 좀처럼 보기 힘든 그런 책이 되었다.

<11분>을 보지 못하거나 아침형 인간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퍼질러 잤다. 처음엔 <수학의 정석>을 펼쳐들고 야심차게 “공부도 해야지!”라고 주장해서 범생이 취급을 받던 나도 시일이 지날수록 퍼질러 자는 날이 더 많아졌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