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교육자에게서 듣는 ‘자살’ 해법

‘나와 가까운 사람이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할 때, 그에게 무슨 말을 해 줘야 할까? 뭐라고 물어보지?’

천주교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가 진행하는 ‘게이트키퍼’(문지기) 교육에 대해 듣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센터 기획홍보 담당 류정희 씨는 이런 질문을 기자에게 던졌다. 잠시 생각해 보고 아주 가까운 관계인 친구라면 조용한 곳으로 불러 “너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나쁜 생각’ 하는 것은 아니지?” 하고 물어보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류 씨는 기자가 생각해낸 “나쁜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라는 질문이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던지는 질문의 예’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나쁜 생각’ 하고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응’ 하고 대답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 되물었다. ‘나쁜 생각’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자살은 나쁘다’는 가치 판단이 들어 있어서 대화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게이트키퍼’ 교육은 ‘자살 위기에 있는 사람이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도록 문지기처럼 막아 주는 사람’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구체적으로는 자기 주변에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미리 발견해 전문가나 기관에 연결해 주도록 하는 내용이다.

▲ 2014년 3월 '보고듣고말하기' 자살예방교육에 참가자들.(사진 제공 =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에서는 보건복지부가 개발한 한국형 자살예방교육 ‘보고듣고말하기’와 미국의 QPR, 캐나다의 safeTALK 등 크게 3가지 방식의 게이트키퍼 교육을 하고 있다. 9월부터 11월까지 매달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관심이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3시간 과정의 교육이 있으며, 9월 15일에는 서울대교구 본당에서 활동하는 수도자 120여 명을 대상으로 ‘보고듣고말하기’ 교육을 할 예정이다.

‘보고듣고말하기’의 경우, 자살을 암시하는 언어와 행동, 상황적 신호를 보는 ‘보기’, 실제로 자살할 생각이 있는지 묻고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돕는 ‘듣기’, 안전 점검 목록을 확인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의뢰하는 ‘말하기’의 3단계로 이뤄진다. 게이트키퍼 교육은 대부분 단순 강의식이 아닌 대화법 등 역할 실습도 함께 하는 내용이다.

류정희 씨는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 ‘나쁜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모호하게 묻는 것보다는 ‘자살을 생각하느냐’고 분명하게 묻는 것이 정신을 차리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살 충동에 매몰돼 있던 사람도 자신이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로 분명히 들으면 생각을 다르게 해볼 수 있다.

비언어적 표현도 중요하다. 쭈뼛쭈뼛 조심스럽게 묻기보다는 자신감을 갖고 질문해야 한다는 것. 류 씨는 그런 태도는 “내가 들을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 씨는 “천주교의 교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은 죄가 맞다”면서,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그 사람들이 자살로 내몰리는 동안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게이트키퍼 교육의 취지는 누구든 살아가기 힘들 때 혼자서 앓지 말고 주변 사람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같이 살아가자는 것, 그런 대화의 장을 열어 주는 것이다.

▲ 2012년 겨울, 한강 마포대교 난간에 설치된 'SOS 생명의 전화'. ⓒ강한 기자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2013년에 자살로 죽은 사람은 1만 4427명이었으며,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8.5명이다. 잘 알려져 있듯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는 1990년 이후 OECD 가입국 대부분에서 자살은 20퍼센트 이상 줄었지만, 한국의 자살률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 동안 3배 넘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류정희 씨는 자살을 줄이는 것은 “일시적 정책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움직여 줘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같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면서 “그 차이는 어려움을 털어놓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당장 돈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더라도 어려움에 공감하고, ‘당신은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해 줄 대화 상대가 있는가, 없는가는 중요한 차이다. 고립된 사람은 자살을 선택하기 쉽다.

류 씨는 “나도 자살 위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면서, 보건복지부가 24시간 운영하는 정신건강 상담 전화번호 1577-0199를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게이트키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도 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화 상담(1599-3079)을 받고 있다. 자살 생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한 무료 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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