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석 신부] 9월 6일(연중 제23주일) 마르 7,31-37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청각 장애인 한 사람을 고친 이야기였습니다.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더듬는 사람 하나를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두 귀에 당신 손가락을 넣었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쉰 다음 ‘에파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시대 청각 장애인을 치유할 때, 사람들이 흔히 하던 동작입니다. 기름, 술 혹은 침과 같은 액체는 치유의 효력을 지녔다고 믿던 시대였습니다. 손가락을 환부에 대는 것은 기를 넣는 행위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는 것은 하늘에서 기의 힘이 내려오도록 하는 동작입니다.

오늘 복음이 그 시대 치유하는 사람들과 같은 동작을 예수님이 했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 장애인을 치유하였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사야 예언서(35,5)를 인용하여 사람들이 한 말이라고 전합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예수님은 예언서가 예고한 구원적인 일을 행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초기 신앙공동체가 예수님에 대해 믿던 바를 예언서의 언어를 빌려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삶의 운동입니다. 신앙은 하느님에 대한 신비스런 이론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힘을 빌려 기적을 행하겠다는 야망도 아닙니다. 죽음 뒤의 내세를 위한 안전대책도 아닙니다. 신앙은 오늘 우리의 삶 안에 하느님을 살아 계시게 합니다. 신앙은 율법을 지키고, 제물을 바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대해 깊이 깨닫고, 그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예수님으로부터 배워 하느님이 우리의 삶 안에 살아 계시게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한 사람들이 그분의 죽음 뒤, 그분에 대한 이야기들을 남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을 복음, 곧 기쁜 소식이라 불렀습니다. 그분의 말씀과 실천 안에 그들이 해방과 구원을 체험했다는 말입니다. 그분과의 접촉에서 그들은 참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과 실천에서 자비로우신 하느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대해 체험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기쁨이었습니다. 그들은 체험한 바를 기록으로 남겼고, 그것이 후에 복음서를 포함한 신약성서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자유로이 살 것을 원하십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무엇을 강요하거나 인간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하느님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자유롭게 살도록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자유를 소중히 생각하십니다. 인간은 텔레비전의 채널을 마음대로 선택하고, 가게에서 자기가 원하는 상품을 마음대로 선택해 사듯이, 각자 자기 소신대로 선택하며 자기의 인생을 삽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초기 신앙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남긴 말들을 참조하여 자기 처지에 맞는 실천들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실천하며 신앙인으로 삽니다.

▲ '말 더듬는 이를 고치는 예수', 제임스 티소.(1836-1902)
오늘 예수님이 청각 장애인 한 사람을 고친 이야기 안에는 우리의 장애도 고치는 예수님에 대한 초기 신앙인들의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장애인 한 사람을 치유한 이야기였지만, 초기 신앙인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체험한 바를 그 이야기 안에 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듣고 말하는 데에 장애를 지닐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면. 이웃의 말을 그대로 알아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이 많아서, 혹은 자기의 신분 서열이 높아서, 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기도취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기도취는 이웃의 말이 들리지 않는 장애 현상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과시하는 말만 즐겨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는 하지 못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한이나 미움을 배설하는 데에 급급한 사람도 이웃의 말을 듣지 못하는 장애인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웃에게 해방과 기쁨이 되는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진 장애들을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극복하는 운동을 일으킨 분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라고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하느님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와 같이 사랑하고 배려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배워 실천하자고 가르쳤습니다. 우리 자신만을 소중히 생각하면, 우리는 이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이웃의 말을 듣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기쁨이 되는 말을 하지도 못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배려를 실천할 때,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은 그 실천으로 인류 역사 안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이로운 말만 듣고, 이웃을 배려하지 못하고, 우리의 말만 하는 장애를 넘어서 하느님의 자녀로 자유롭게 살자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 운동입니다. 그것은 인류역사 안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예수님이 청각장애인 한 사람을 고친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된 그리스도 신앙은 우리를 새로이 듣게 하고, 또 새로이 말하게 한다고 알립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에 도취되어 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도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마르 14,36)라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된 사람의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유대교 사회의 관행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가 외면하던 죄인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에게 해방과 기쁨이 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죄인들도 포함하여, 모든 이의 하느님이십니다. 그 하느님의 생명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사람이 되라.... 모든 이의 종이 되라”(마르 10,43-44)고 제자들에게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자기 말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의 말을 듣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상대가 기뻐할 일을 찾아서 행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상으로 하는 것은 자기의 말을 남이 듣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높은 사람,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어찌 보면, 남의 말을 듣지 못하는 장애의 상태를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세상의 일을 버리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겠다고 나선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은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마르 7,37)라고 말합니다. 이웃의 말을 귀담아 들을 수 있게, 또 이웃에게 기쁨과 구원이 되는 말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예수님이고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서공석 신부 (요한 세례자)

부산교구 원로사목자. 1964년 파리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파리 가톨릭대학과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주 대건신학대학과 서강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부산 메리놀병원과 부산 사직성당에서 봉직했다. 주요 저서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하느님-교회”, “신앙언어” 등이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