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식의 포토에세이]

▲ 최혁 신부가 부산시청 앞 전광판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향해 "건강하게 내려와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자"며 인사하고 있다. ⓒ장영식

다음은 지난 8월 28일(금요일) ‘성 아구스티노 주교학자 기념일’, 부산시청 앞 미사에서 최혁 신부(베드로)가 한 강론입니다. 최혁 신부는 매일 밤 부산시청 앞 고공농성 현장을 찾아 노동자들을 위한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송복남 로제리오 형제님, 심정보 이냐시오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한번씩 밤에 내려다 보실 때 얼핏얼핏 보이던 그 젊은 신부입니다.

생전 만나보도 못한 젊은 신부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손 흔들고 있으니 많이 당황하셨지요? 사실 저도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올려다 볼 때 가끔 눈이 맞아서 손을 흔들 때에는 좀 많이 어색했습니다. 그렇다고 고개 숙여 인사하며 자기소개를 하자니 들리지가 않을 것 같고, 악수를 하자니 올라갈 자신이 없어서, 결국 늘상 이 자리에서 이렇게 어색하게 손만 흔들어 인사를 하게 됩니다. 그래도 몇 번 뵈었다고 지금은 좀 덜 어색하네요.

전광판 위에 올라가신 지가 벌써 135일째입니다. 그사이 쌀쌀한 봄날의 날씨부터 무더운 한여름의 열기까지 어찌 버티셨나 모르겠습니다. 택시 회사와 생탁 공장에서 당해야만 했던 부조리함과 억울함이 얼마나 컸으면 목숨을 걸고 허공에 매달려 계실까 싶어 시청을 지나칠 때마다 안타깝고 안쓰러운데, 이 젊은 신부가 보탬이 되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더욱 속이 상합니다.

복음을 묵상하고, 신학을 공부하다 보면 언제나 결론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인데 성당 안에서 만나는 교우들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세상과 일그러진 제도의 모순 속에서 핍박받고 고통당하는 이웃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그 곁에 함께 있어 주며 연대하라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며 작년에 방한하셨던 교황님의 당부였는데, 그 당부를 잘 살아 내지 못하는 것 같아 무안해지기도 합니다.

▲ 천주교 부산교구의 한 사제가 부산시청 앞 고공농성 현장에서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장영식

두 분 형제님이 전광판 위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이 두 분이 노동자이기 전에 세례를 받은 신앙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교회의 사목자로서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성당 안에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기에 일과를 마치고 나면 밤 9시가 훌쩍 넘어가 버리는데 그 시간이라도 두 분의 의로운 지향에 함께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고, 신부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기도하고, 함께 있어 주는 것인지라 로제리오, 이냐시오 두 분 형제님들이 내려다 볼 수 있는 장소에서 하루하루 묵주알을 굴리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한 자리에서 뙤약볕을 감당해야만 하는 두 분에 비하면 너무나도 사소한 연대이지만, 그래도 하루 단 20분이라도 두 분을 기억하며 찾아오는 신부들이 있다는 것이 작게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디 저희뿐이겠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미사를 드리며 두 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고, 물리적으로 멀리 있기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부산 시내 곳곳에서, 전국 여기저기에서 두 분의 소식을 듣고 두 분의 의로운 지향을 응원하며 기도하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있습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두 분을 기억하고 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두 분을 만나러 시청 앞을 찾다보니 어느새 저희 신부들도 기도한 지 백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 같은 백일을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백일 남짓 시청 앞을 찾으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부산 지역의 음지에서 고통 받던 억울한 사람들이 두 분이 내려다보는 이 자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기도하며 시청 앞을 서성이다 보니 언젠가부터 이쪽 어귀에서는 두리발 택시와 형제복지원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저쪽 어귀에서는 풍산기업과 부산 경남버스의 부당함을 알리는 노동자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것을 봅니다. 그간 어느 누구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았던 이야기들에 서로 귀 기울이고, 그 억울함에 함께 분노하며, 그렇게 고통당하는 이가 고통 받는 이웃을 위로하는 모습을 봅니다. 지금 이 거리에서 상처받은 이가 상처받은 이웃의 그 상처를 감싸 주는 모습을 봅니다.

두 분이 지향하는 노동자가 대접받는 세상, 사람같이 사는 세상,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이 이 거리에서 아주 조금씩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 세상을 위해 저희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좀 더 정의롭고 공평한 세상을 위해,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마지막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그러니 내려오실 때까지 부디 건강 잃지 않고, 몸조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내려와 땅을 디딛는 그날이 오면 그때에는 정식으로 악수도 하고, 삼겹살에 소주도 한잔 하시지요. 물론 주일미사 많이 빠지셨으니 고해성사는 보셔야 됩니다.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날이 하루 빨리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저희도 이 자리에서 계속 기도로써 함께 연대하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상 로제리오, 이냐시오 두 분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아멘.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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