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인권]


상상하면 모든 게 이루어지는 이명박 정권

인터넷에 글 올렸다고 잡아가고, 일제고사에 반대한다고 해서 해임한다. 때리지도 않았는데 의원폭행 했다고 잡아가고, ‘전문 시위꾼’까지 선정해가며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한다. 피디와 기자를 잡아들이고 대놓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며 탄압을 자행한다. 6명의 목숨을 앗아간 곳에서는 또다시 철거를 시작하려하고, 경찰청장은 ‘성매매는 재수 없으면 걸린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이유’를 찾고 싶어서 한참을 고민했다. 도대체 왜 이럴까. 생각의 결론은 이랬다. “이명박 정권이니까”.

요즘 인권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이 말이 유행이다. “뭘 상상하지 말라. 상상하면 모든 게 이루어진다. 아니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누가 알았겠나. 인터넷에 글 올렸다고 잡아가고 시험에 반대한다고 해임하고 피디와 기자를 잡아갈지, 누가 알았겠나. 이쯤 되면 ‘전문 시위꾼’으로 선정된 사람은 영웅이 되어야 하는 건가. 시위를 안 하고 살 수가 없지 않나.

결국 상상하던 일이 또 이루어졌다. 국가인권위에 대한 21% 축소 방침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그 시행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 말, 행정안전부를 대표 주자로 이명박 정권은 국가인권위에 대해 50% 축소 방침을 통보했다. 그야말로 반토막을 내려 했다. 국가인권위는 물론 각계각층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자, 이번에는 30% 축소 방침을 통보했다. 설마 숫자가 줄었다고 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바랐던 건 아닐 것이다. 역시나 반발하자 마지막으로 21% 축소 방침을 최종 통보하였다.

결국 아무런 사회적 협의도 없이 차관회의에 상정·통과, 국무회의에 상정·통과, 대통령 싸인 결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인권시민사회운동진영은 '공동투쟁단'을 꾸려 행안부 앞에서 반대 집회와 기자회견, 농성까지 진행하며 반대했다. 국가인권위 안경환 위원장까지 국무회의 출석발언권까지 행사하며 반대를 하였지만, 결국 “충분한 협의를 거쳤”다며 국무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마음먹은 것은 귀를 닫고 마음을 닫으며 꼭 행하고야 마는 이명박 정권. 이번 국가인권위 축소 또한 수요부처는 물론이고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처리하였다. 이명박 정권의 과도한 일방주의는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워 진 것일까.

인권위 조직 축소는 정치적 탄압

행안부의 국가인권위에 대한 21% 축소 방침 내용은 ‘5본부 22팀’인 조직을 ‘1관 2국 11과’로 바꾸고, 인원도 현재 208명에서 164명으로 44명 감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논란이 되었던 부산·광주·대구 등 3개의 지역사무소는 1년간 존치 뒤 존폐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행안부는 이렇게까지 축소를 감행해야 하는 근거를 대라는 요구에 “효율성”과 “다른 부처들도 감축한다”고 답하였다. 사실상 합당한 근거가 없는 것이다. 행안부의 말마따나 “효율성”을 고민한다면, 오히려 인력 부족으로 각종 진정사건에 대한 처리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현재의 인권위 상황에서 인력을 증원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한나라당 윤리위원으로 당직을 겸하면서 국가인권위원을 하려했던(결국 당직을 버리고 국가인권위원이 됨) 최윤희 교수와 자신이 시설장으로 있는 시설의 정부보조금을 횡령한 사실로 기소유예처분을 받고 시설장애인에게 낙태를 종용했던 김양원 목사 등 낙하산·정치적·반인권적인 사람이 국가인권위원으로 임명되지 못하도록 제대로 된 인사검증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에 앞장서는 것이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느 부처에서도 21%라는 엄청난 조직 축소는 없다. 형평성에 어긋남은 물론이고, 이러한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감행된 이번 인권위 조직 축소는 이면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도무지 지울 수 없게 한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국가인권위를 대통령직속기구화 하려는 등 인권위가 생명으로 하는 ‘독립성’ 훼손 시도를 계속해왔다. 특히 작년 광우병 촛불시위에 대한 인권위의 결정 이후 이명박 정권은 인권위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결국 21%라는 조직 축소로 사실상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시키고 그 기능을 마비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인권위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본래 정부에 “쓴 소리”를 하라고 만든 기구이다. 국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당하는 차별과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국가 정책을 인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권고한다. 또 국민의 인권감수성 증진을 위해 인권교육을 실시한다.

이명박 정권에는 ‘인권’이 없다

이명박 정권은 효율과 자본에 밀려 인권‘따위’는 벼랑 끝으로 밀어버려도 된다고 여기는 것인가. 국가인권위 역시 지난 8년 동안 잘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난 이명박 정권 1년 동안에는 정권의 ‘눈치 보기’나 ‘몸 사리기’를 한다고 비판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지난 8년 동안 국가인권위는 이 사회에서 많은 역할들을 해왔다. 누구 말대로 어느 정치 성향에 편향된 일들을 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차별과 인권침해 사안들을 해결해왔다.

그 ‘일상생활’이라는 것들은 바로 우리의 삶인 것이다. 가령, 휠체어 장애인이 길을 건너려 할 때 횡단보도가 없고 지하도만 있고, 그 지하도에 엘리베이터나 휠체어 리프트가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일상생활에서의 차별 혹은 인권침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를 일들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에는 수없이 많다.

집회와 시위에서의 인권침해는 늘 숱하게 있어왔지만, 지난 해 광우병 촛불 시위에서 많은 국민들이 직접 겪기 전에는 그런 일들이 있는 것조차 모르지 않았던가. 꼭 누군가가 차별과 인권침해를 “경험하기” 전에 이를 시정권고조치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 또한 국가인권위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번 21% 조직 축소 방침에는 인권교육과 인권정책기능을 대폭 줄이고, 인력도 줄였으니 사실상 국가인권위에게 인권과 관련된 일들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현재 국가인권위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와 가처분 신청을 해 놓은 상황이라고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헌법재판소의 입에서 국가인권위는 ‘독립기구’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하위 99%의 힘을 보여주자

이명박 정권은 ‘인권’을 두려워한다. 상위 1%의 사람보다 하위 99%의 사람들이 ‘인권’을 말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하위 99%의 힘을 보여줄 때이다. 늘 짓밟히고 찢어지는 잡초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우리는 보여줘야 한다. 국가인권위의 축소는 단순히 조직 축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인권이 축소된다는 것이다. 인권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일어나고 또 일어나서 하나하나 ‘쟁취’해내고 있는 것이다.

‘쟁취’를 운동권의 용어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여성들이 투표권을 갖기 위해 수백년 싸워왔고, 장애인들이 지하철과 버스를 타기 위해 수억의 벌금을 받아가며 싸웠다. 철거민들이 주거권을 위해 지금도 망루 위로 올라가고 있고, 죽음으로서 그 절박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인권이 감나무 아래 입 벌리고 있으면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함께 머리를 맞대어 보면 분명 해답은 나올 것이라 생각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꿈틀거리는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용기를 다시 가져보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 시민들이 남은 4년을 살아가는 첫걸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배여진/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