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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해방의 성령
-라틴아메리카의 변방에서부터 불어오는 성령의 바람
[홍인식 목사의 해방신학 이야기]
홍인식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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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31  15:4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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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은사운동

최근 30여 년간의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의 종교상황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본다면 성령운동과 그에게서 비롯되는 현상적 결과로서의 개신교를 비롯한 가톨릭교회의 급격한 변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것은 비단 이 지역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안의 신생교회들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존의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교회들에게도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전통적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우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가톨릭교회의 주도적 위치가 위협을 받게 된 것도 이 지역에서 최근에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성령운동의 결과로서의 은사적 개신교 교회의 확산이다. 그러나 성령운동에서 비롯된 은사적 교회는 개신교뿐만 아니라 기존의 가톨릭교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은사적 가톨릭교회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억압되어 있었던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에게는 해방구의 역할을 감당하기도 하였다. 한번도 역사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던 민중들에게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임하는 성령의 역사는 놀라운 것이었으며 비로소 그들은 처음으로 주체적 역할을 종교 안에서 감당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와 더불어 성령운동과 은사운동은 이 지역에서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은사운동의 성장과 확산은 이 지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성령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은사적 교회의 성령론이 삼위일체적인 관점보다는 성령론적 환원주의에 빠질 위험이 다분하다는 것에 대한 경고도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리스도교 안에서 전통적인 서구 신학에서 소홀하게 취급되었던 성령에 대하여 성찰해 보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음에는 틀림없다.

몇 주 전부터 나는 해방신학적인 측면에서 하느님론과 그리스도론에 대하여 생각해 오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해방신학의 신학적 내용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 오고 있었다. 오늘의 글에서는 해방신학적인 측면에서 성령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몇 주간에 걸쳐 교회론, 마리아론, 종말론 등 해방신학의 내용에 대하여 성찰해 보려고 한다.

성령, 아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성령에 대한 성찰은 무엇보다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영향으로부터 시작한다. 바오로 6세 교황은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이 성령에 대한 연구와 성찰과 연관되어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럼에도 서구에서의 성령에 대한 연구는 개인적이고 교회적인 차원에서의 성령연구에 치중되고 있었다. 이들은 성령은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자의대로 불어옴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서구신학은 성령의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뜻대로 불어오며 가고 싶은 곳으로 흘러감에 대하여 강조하곤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서구신학은 성령이 어디서부터 불어오는 것에 대하여서는 침묵하였고 이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곤 하였다. 그러나 성령의 바람의 원천에 대한 물음에 답변하는 신학적 행위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변화는 1970-8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지역에서 경험된 성령의 바람이 그것이었다. 이 경험은 라틴아메리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성령의 바람은 "아래,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불어오는 것"임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이미지 출처 = www.flickr.com

성령의 바람: 가난한 자의 외침

1968년 콜롬비아의 메데인에서 그리고 1979년 멕시코의 푸에블라에서 주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피 끓는 외침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들의 호소에서 성령의 탄식 소리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 속에서 들리는 성령의 소리는 그들로 하여금 성령의 바람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에 대한 해석학적 열쇠를 제공해 주었다.

성령의 바람은 위가 아닌 아래,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불의한 사회와 정치제도에 대항하여 투쟁할 힘을 주었고 그들로 하여금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을 신앙과 신학의 가장 핵심적 주제로 삼게 만들었다. 성령은 아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다. 이 바람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들의 외침에서 들리고 있으며 그 바람은 우리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세계를 향하여 우리의 발걸음을 옮기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바람이다. 그러면 아래로부터 불어오는 성령은 우리의 신앙과 신학에 어떤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의의 성령

무엇보다도 아래로부터 불어오는 성령은 정의의 영이다. 구약의 전통에서부터 정의의 개념은 단순한 법의 집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정의의 실천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의 보장과 그들의 생명에 대한 보호를 향한 것이었다. 그것이 출애굽 사건에서 야훼가 보여 준 정의의 개념이었으며 그것이 이스라엘의 판관들과 예언자들이 감당했던 역할이었다. 이들의 행위는 모두가 정의의 성령에 의한 것이었다.(이사 28,6; 미카 3,8-10; 이사 11,1-9; 에제 36, 27-28; 예레 3,1 이하) 세례 때에 예수에게 임한 성령이 바로 이 정의의 영이며 그로 하여금 구원의 사역을 계속하도록 한 영이다. 아래에서부터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불어오는 성령은 정의의 영이며 우리로 하여금 정의의 사역을 지속해 나가도록 촉구하고 있다.

생명의 영: 혼돈과 죽음의 상황을 극복하도록 하는 생기(생명의 기운)

해방신학이 라틴아메리카의 삶의 현장, 혼돈과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삶의 현장에서 만난 성령은 단순한 생명의 창조의 영으로서만은 아니었다. 성령은 창조의 영이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현장에서 생명을 이끌어 내는 투쟁의 영이었다. 죽음의 세력과 맞서서 투쟁함으로써 생명의 숨을 이어 가도록 하는 의미에서의 생명의 영이다. 해방신학의 성령은 역동적으로 날마다 죽음의 삶의 현장에서 생명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우리로 하여금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힘을 주는 영이다.

해방신학이 만난 성령은 죽음의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하며 함께 투쟁하는 영이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열매로서의 풍요로운 생명을 누리고 즐거워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아직도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이 풍요의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혼돈과 죽음의 상황을 극복하도록 우리와 함께 하면서 투쟁하면서 생명을 이끌어 내고 있는 성령의 바람을 경험해야 한다. 생명, 그것은 나 혼자만 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할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성령, 가난한 사람들의 아버지-어머니

성령은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해방신학이 만난 성령은 가난하고 작은 사람들을 향하여 아버지-어머니의 사랑으로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아픔을 안고 가슴 아파하는 영이다. 이집트에서 히브리 민중이 억압을 당하고 있을 때 내려와서 그들의 외침을 듣고 안아 주던 바로 그 영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아버지-어머니 보호자로서 나타났던 바로 그 영이다.(탈출 4,3)

그럼에도 해방신학에서 성령론은 큰 비중으로 다루어지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에 이르러 호세 콤블린, 레오나르도 보프, 마리아 클라라 루케티, 마리아 호세 카람 등의 해방신학적 성령론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척이 되었다. 이들에 의하면 성령의 활동은 단지 교회와 개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창조와 진화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역사 안에서 적극적인 성령의 활동이 목격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과 그들의 자유와 해방, 존엄성과 생명을 향한 투쟁에서 성령의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성령의 바람은 아래로부터 불어와서 우리를 죽음의 현장에서 해방시켜 생명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해방신학의 성령론은 우리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 다양한 문화와 종교, 여성, 토착민, 그리고 지구의 생태학적 위기를 향하여 우리의 가슴을 개방하도록 만든다. 아래로부터 불어오는 성령의 바람은 우리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부터 출발하여 온 세계를 안으시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의 위대한 계획인 사랑과 연대의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라틴아메리카의 변방에서부터 온 교종 프란치스코는 우리로 하여금 거리로 나가서 성령을 만나 가난한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로 오늘의 교회를 개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거리로 나가서 아래로부터 불어오는 성령의 바람을 경험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성령은 가난한 사람들의 아버지-어머니이기 때문이다.
 

홍인식 목사
파라과이 국립아순시온대학 경영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M. DIV.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에서 호세 미게스 보니노 박사 지도로 해방신학으로 신학박사 취득.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 교수 역임.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교수 역임.
현재 멕시코 장로교신학대학 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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