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신 신부] 8월 30일(연중 제22주일) 마르 7,1-8.14-15; 신명 4,1-2.6-8; 야고 1,17-18.21ㄴ-22.27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이 주신 십계명을 모세를 통해서 받았습니다.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신 하느님께서는 계명을 지킴으로써 온 이스라엘 백성이 공동체를 이루며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따르도록 했습니다. 그 뒤 계명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적용을 통해서 율법이 만들어지고 이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조상들로부터 이어 온 전통과 관습을 중요하게 여겼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이에 충실하도록 가르치며 그들 역시 진지한 헌신과 노력을 통해서 모범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이들을 존경하며 따르고자 하였지만, 세세한 계명까지도 충실해야 한다는 이들의 지나친 집착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의 배경이 되고 있는 정결례법은 본디 전례 예식을 거행하는 사제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이를 위한 적용대상을 폭넓게 해석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할 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를 지키지 않는 유대인은 ‘율법을 모르는 무리’라며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조소와 경멸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로부터 ‘율법 위반자’로 지목되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라며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여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라며 오히려 이들의 헛된 가르침을 질책하십니다. 즉 입술로만 하느님을 섬기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하느님을 가까이하라는 것, 인간의 계명을 따르지 말고 하느님께서 주신 본래의 계명에 충실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어떤 일을 할 때 근본적인 목적과 본질은 가려지고 세세한 형식에만 얽매일 때 ‘주객이 바뀌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근본정신은 잊은 채 세세한 규범에만 얽매이게 되고, 남에게 그 짐을 짊어지게 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율법의 근본정신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모든 세부적인 계명과 규정의 기준이자 본질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계명이라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짐이요 올가미로 작용합니다. 계명에 충실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가장 중요한 계명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외치면서 이에 실천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 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2)라며 말씀에 대한 실천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언행일치’는 모든 사람들의 과제이자 염원입니다. 무엇인가를 행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내적인 마음과 믿음의 표현인 만큼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삶의 세세한 방식을 통해서 드러나듯이 신앙인이라는 정체성 역시 그분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삶의 모습에서 보이는 것입니다. 이주민 사목을 담당하면서 가끔은 사목과 사업을 병행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크고 작은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이주민을 향한 존중과 환대, 연대의 정신은 사라지고 행사의 내용과 형식에만 몰두해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근본적인 목적과 지향이 희미해질 때 사목이 사업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그 중심에 ‘사랑’이 빠지고 결과와 실적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그릇 안에 담겨 있는 내용물에 따라서 그릇의 용도가 정해지듯이 우리 마음과 신앙 안에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본래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불어 넣어 주신 선함과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김창신 신부 (아우구스티노)
전주교구 이주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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