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레시다 문헌 - 122]

8.3 가난한 이들과 배척당하는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391. 인간 존엄에 대한 이러한 폭넓은 관심이야말로, 그러한 존엄성에 상응하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수백만의 라틴 아메리카인들에 대해 우리가 갖는 비통함의 원천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교회를 특징짓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우리 대륙에 대해 말씀하시며 “아메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으로 마음을 돌린다는 것은 "삶의 모든 다양한 분야와 측면 특히 사회 질서와 공동선 추구와 관련된 것들을" 바로잡는 것을 뜻한다”(“아메리카 교회”(Ecclesia in America) 27항)고 하셨던 것입니다.

392.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인간 모습이시며, 인간의 하느님 모습”(“아메리카 교회” 67항)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당신의 가난으로써 우리를 풍요롭게 하시고자 우리를 위해 스스로 가난해지신 하느님에 대한 그리스도론적 신앙 속에 함축되어 있습니다.”(“개막연설” 3항) 이러한 선택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 우리의 형제가 되신(히브 2,11~12 참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결코 배타적이거나 배척하지 않습니다.

393. 만약 이러한 선택이 그리스도론적 신앙 속에 함축되어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제자이자 선교사로서 우리 형제, 자매들의 고통 받는 얼굴 속에서 그들 안에 있는 그분을 섬기도록 청하고 계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관상하도록 부르심 받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고통 받는 얼굴은 그리스도의 고통 받는 얼굴입니다.”(“산토도밍고 문헌” 178항) 그들은 교회의 실천, 교회의 사목, 그리고 그리스도인다운 태도의 핵심에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는 모든 것들은 가난한 이들과 관계가 있고, 가난한 이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외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이 성경 구절이 “그리스도의 신비에 한 줄기 빛을 던져준다”(“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 49항)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큰 자는 작아졌고, 강한 자는 약해졌으며, 부자는 가난해졌기 때문입니다.

394. 마찬가지로 연대의 정신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서 솟아나옵니다. 연대란 만남에 대한 항구적인 태도 및 형제, 자매로서의 정신으로서 특히 가장 취약하고 배척당한 이들의 삶과 권리를 옹호하며, 자신들의 상황을 변화시키고 변모시키려는 그들의 주체로서의 노력에 지속적으로 동행하는 뚜렷한 선택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교회가 행하는 사랑의 섬김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의 모든 활동, 그리고 교회 사목 계획의 분명한 특징이 되어야 할 측면입니다.”(“새 천년기” 49항)

395. 교황께서는 교회가 “하늘에 닿을”(“아메리카 교회” 56항) 만큼 “참을 수 없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맞서”(“제삼천년기” (Tertio Millennio Adveniente) 51항) “정의와 가난한 이들의 옹호자”(“개막연설” 4항)가 되도록 부르심 받았음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이 없다면, 누구에게도, 이른바 부자에게도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권고, “양떼의 목자”(Pastores Gregis) 67항)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국가에서 재정을 책임지고, 고용을 담당하는 가톨릭 전문가들과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한 조건을 조성하는 가톨릭 정치인들에게 그들의 신앙과 부합하는 윤리적 지침을 줄 수 있도록 그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396. 우리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교회가 한층 더 확고하게, 심지어 순교하기까지 우리의 가장 가난한 형제, 자매와 함께 하는 여정을 이어가도록 하는 데 우리 스스로를 헌신하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전 총회들에서 이루어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들을 추인하며 거기에 더욱 힘을 싣고자 합니다.(“메데인 문헌” 14항, 4-11항; “푸에블라 문헌” 1134-1165항; "산토도밍고 문헌" 178-181항) 우선적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모든 사목구조와 우선순위 속에 스며들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라틴아메리카 교회는 우리 민족들 안에서 사랑과 연대, 그리고 정의의 성사가 되도록 부르심 받고 있습니다.

397. 오늘날 우리는 개인의 사생활과 향락의 영역을 과도하게 옹호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리하여 쉽사리 개인주의적 소비주의에 휘둘립니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이론적이거나 단순히 감정적인 수준에 머무르며 우리 자신의 행동이나 결정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선택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항구적인 자세로서(“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28항, 31항) 그것은 어떠한 온정주의적 태도도 거부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그들과 함께 우리 삶의 시간, 주, 년들을 보내기로 선택하며 그들을 위해 우리의 시간을 바치고, 그들에게 친절한 주의를 기울이며, 관심으로써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그들을 변함없이 지지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의 말씀과 행동으로 이 길을 제시하셨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루카 14,13)

398. 우리를 친구로 만들어주는 친밀함만이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 가난한 이들의 가치를, 그들의 정당한 갈망들을, 그리고 신앙을 살아가는 그들만의 방식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선택은 가난한 이들과 우리의 우정으로 이끌어줍니다. 날마다 가난한 이들이 복음화와 포괄적 인간증진의 주체가 되어갑니다. 그들은 신앙으로 자신들의 자녀를 교육하고 친척과 이웃들과 함께 지속적인 연대를 꾸려나가고, 언제나 하느님을 찾고, 교회의 순례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그들처럼 가난하셨고, 그들 가운데서 배척당하셨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들이 지닌 엄청난 존엄성과 신성한 가치를 우리는 복음의 빛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체험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에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번역 : 배우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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