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태도 보여줘

▲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1주년 기념 바닥돌'(오른쪽 밑). 그 왼쪽은 '광화문 월대(月臺)'를 설명한 표지석이다. ⓒ강한 기자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8월 23일 오전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1주년 기념 바닥돌’ 축복식을 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8월 16일 교회 안팎의 큰 관심 속에 광화문광장에서 시복미사를 주례했다.

▲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1주년 기념 바닥돌' ⓒ강한 기자
바닥돌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14년 8월 16일 이곳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 반열에 올려 이를 온 세상에 선포하신 것을 기리고자 이 돌을 놓습니다”라는 문구가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한문으로 새겨졌다. 크기는 가로 1.7미터, 세로 1미터이며 광화문에서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광화문광장 북측광장’에 설치됐다. 바닥돌 왼쪽으로는 비슷한 크기로 ‘광화문 월대(궁궐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를 설명한 표지석이 있다.

축복식을 주례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참석자들과 바닥돌 설치를 위해 애쓴 이들에게 감사하면서, “작년 광화문에서 거행된 시복식을 통해 순교자들은 자신을 박해한 이들까지 용서하고 화해하여 인간성의 고귀함을 드높이 증명했음이 드러났다. 광화문은 박해자와 순교자가 화해하는 평화의 광장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염 추기경은 광화문을 관할하는 세종로 본당 공동체에 바닥돌 관리를 위임한다면서, 세종로 성당 주임 권흥식 신부에게 위임장을 줬다.

천주교의 표지석 설치에 대해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박광서 대표는 24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공공기관,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이 특정 종교나 이념에 대한 것을 상시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광화문광장은 모든 국민이 활용해야 하는 공공장소라며, 지난해 124위 시복식이 이곳에서 열린 것은 “(정부가 천주교에게) 이 공간을 활용하게 해준 것뿐이지 (모든 국민이 광화문광장을) 특정 종교의 상징처럼 만드는 것을 원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순교자 124위 시복 1주년 기념 바닥돌'에 성수를 뿌리고 있다. ⓒ강한 기자

이날 축복식에는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권길중 회장을 비롯한 신자 20여 명과 10여 명의 주교와 신부들이 참석해 교황 관련 행사로는 조촐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는 이에 비해 많은 고위 공직자가 참석한 것이 돋보였다.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석했고, 국회 가톨릭 신도의원회에 속한 우윤근(새정치), 황진하(새누리), 나경원(새누리), 이미경 의원(새정치)이 참석했다.

또 천주교가 ‘성역화’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여 온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사업’과 직접 관련된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은 물론 박홍섭 마포구청장, 성장현 용산구청장,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참석했다. 이 구청장들은 지난 2013년 서울대교구 성지순례길 조성에 기여한 공로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에게서 감사패를 받은 바 있다. 표지석이 설치된 광화문광장은 종로구에 속한다.

이들 고위공직자들은 박광서 대표와 달리 천주교의 시설물이 공공장소에 들어서는 것이 종교차별이라고 보지 않은 것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것이 천주교만이 아니라 전 국민 차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보고 있었다.
 
박원순 시장은 축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세월호 참사로 충격과 깊은 슬픔에 빠져 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큰 희망과 위로를 주셨다”며 “우리는 진정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에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시장은 “이곳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도 1년 전 우리가 품었던 순교자들의 시복식의 의미와 교황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우리를 되돌아보는 기억의 자취로 삼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로마 바티칸 시국,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 천주교 신자들에게만 의미 있는 곳이 아니듯,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 표지석이 설치되는 이곳 역시 새롭고 의미 있는 역사, 문화의 명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를 위해 서울시는 현재 서소문 공원 일대에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동시에 서울시의 천주교 순례지를 교황청에서 지정하는 공식 순례지로 등재하기 위해 천주교계와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 가톨릭 신도의원회 회장 우윤근 의원(스테파노)도 2014년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달라고 여야 가톨릭 신자 국회의원 44명이 정부에 요청했다면서, “서소문밖 역사유적지 공간은 가톨릭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소중한 역사”라고 말했다.  우 의원은 “이 자리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나와 계시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요청드린다”고 덧붙였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의 경과보고 자료에 따르면 이번 바닥돌 설치는 2014년 8월 교황 방한 뒤 서울시와 4차례의 업무 협의를 거쳐, 2015년 8월 11일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승인됐으며, 8월 19일 공사를 마쳤다.

서울시 열린광장운영 시민위원회는 서울/청계광장, 광화문광장의 사용과 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서울시 조례로 설치된 기관으로서, 학식과 경륜을 갖춘 학계 전문가와 시민, 시민단체의 대표 또는 임원, 서울시 의원 2명, 서울시 3급 이상 공무원으로 15명 이내의 위원을 서울시장이 위촉 또는 임명한다.

▲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순교자 124위 시복 1주년 기념 바닥돌' 앞에서 축복식에 참석한 정관계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한 기자

한편 서울시 종무팀 관계자는 바닥돌 설치에 대해 “시복식은 종교를 초월해 전 국민과 전 세계에 메시지를 전해줬다”며 “천주교만의 행사가 아니며, 기념할 만한 장소인 것을 후세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설명했다.

현재 광화문광장에는 여러 표지석이나 설명안내판 등이 설치돼 있으나 문화재나 역사 관련이 아닌 것으로는 이번 시복식 기념물이 처음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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