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강 대 강" 관성 벗어나야

8월 20일 서부전선에서 남북한 사이에 일어난 포격 사건에 대해 민족화해 분야에서 활동하는 천주교 신자들은 불안감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변진흥 평화위원장은 “현재 상황은 상당히 엄중한 위기 상황”이라면서 “실제 포격으로 군사적 긴장이 깊어졌고, 남과 북의 감정적 대치가 위기를 더 키울 위험이 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 정부가 이러한 위기가 올 것을 내다보지 못했거나, 내다보면서도 강 대 강으로 끌고 가려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변 위원장은 현재 상황은 “민족사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통치자들의 아주 큰 잘못”이라면서 “종교인들이 이 문제를 봤을 때는 하느님 앞의 죄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위기 상황에서 빚어질 인명의 손실이나 우리 미래의 상실을 누가 책임지겠냐”며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면 우리 민족 사회의 미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변 위원장은 국민들의 걱정과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종교계를 포함한 사회 원로들이 모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변 위원장은 “예전 같으면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송월주 스님 등 일반 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해줄 수 있는 지도자들이 의논했는데, 지금이야말로 그런 힘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에서 민족화해분과장을 맡고 있는 권오희 수녀는 포격 소식을 듣고 “우리나라의 현실이 어떤지 진짜 실감이 난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권 수녀는 “우리는 조금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이라 ‘그래도 전쟁이 안 나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서로 저렇게 하다 보면 전쟁으로 갈 수도 있는 상황이지 않나” 하고 말했다.

권 수녀는 “우리는 북한만 탓해야 하는가” 물으면서, 남북한이 서로를 인정하며 신뢰를 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권 수녀는 민간 교류를 막고 있는 5.24 조치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면서, “국가의 체면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5.24 조치를 해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민간 교류를 조금 믿어줘야 한다”며 “민간 교류가 돼야 정권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2008년 비무장지대의 관측소에서 미군과 한국군이 북쪽을 감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ko.wikipedia.org)

개신교의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8월 21일 논평에서 남북 정부가 군사적 충돌과 대북 확성기 방송을 곧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지뢰폭발 사건 이후 지속되는 긴장상태 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정부가 극단적인 강경대응으로 더 큰 군사적 충돌의 빌미를 주고 있다”며 “2010년 천안함 사건이 있을 때도 대북 확성기 방송을 가동하지 않았던 이유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남북 모두가 적대 행위를 당장 멈출 것을 요구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8월 21일 성명을 내고 “남북은 지금 당장 모든 군사적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센터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는 ‘남과 북이 상대방 내부문제에 간섭하거나 비방 중상하지 않는다’,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약속했다면서, 남북은 이 정신으로 돌아가 비방과 군사행동을 그만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 4일 경기도 파주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지뢰가 폭발해 한국 군인 2명이 크게 다친 사건 이후, 대북 확성기 방송이 시작되면서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은 점점 심해졌다. 8월 20일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군이 이날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군사분계선 남쪽 지역으로 포를 쐈으며, 이에 대응해 군도 자주포탄 수십 발을 쐈다고 밝혔다.

또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 총참모부는 20일 전통문을 보내 이날 오후 5시부터 48시간 안에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지하고 모든 수단을 전면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군은 지난번 지뢰 도발과 이번 포격은 정전협정과 남북불가침합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경고하고, 자위권 차원에서 강력하게 응징할 것이라는 전통문을 8월 21일 오전 북한 총참모부 앞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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