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콘 응시]

▲ 십자가 처형 15-16세기 노브고로드 학파, 역사박물관, 러시아

En Cristo
자! 이콘을 바라보자.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이다.
처참한 스승 예수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는 사도 요한은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통곡으로 목젖이 당기고 있다. 고개를 떨구며 자식이 죽는 순간, 자식을 먼저 보내는 어머니의 슬픔은 어떠한 단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을 느낀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시기의 절정인 성주간으로 접어들었다.
빨마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던 인파는 다 어디로 가고, 어느새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만 드러나더니, 이제는 그의 죽음 앞에서도 조롱을 일삼는다.

십자가 뒤로 예루살렘 성벽이 보이며, 그 아래에는 죽음에 대한 승리를 상징하듯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골고타 언덕의 동굴이 열리고 아담의 해골마저 보인다. 이것은 인류에게 죽음을 불러온 구약의 아담은 그리스도 즉 신약의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의 피로써 구원되었음을 상징한다.

이콘을 묵상하면서 감탄하는 것은 고통의 십자가 앞에서도 신성함의 향기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 알폼브라

 
엘살바도르엔 성 금요일이 되면 마을 전체가 바쁘다.
동네 사람들이나 가족, 단체, 심지어 아이들까지 돌아다니며 도로와 집 앞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작게는 2m, 크게는 4-5m 길이로 직사각형 모양으로 여러 종류의 성화가 밑그림으로 그려지고 그 위로 각양각색의 자연 색감으로 장식이 되어, 마치 융단 위에 수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성화가 완성된다. 일명하여 알폼브라(alfombra: 양탄자, 카페트. 융단)라고 한다. 사용되는 자연 색감은 벽돌가루, 씨앗, 색색깔의 꽃잎, 소금, 원두커피 등 어느 것도 자연의 것이 아닌 게 없다.

처음엔 무슨 그림 대회가 있나보다 하였다. 집 앞이나 도로, 성당 마당 등 특별한 장소에서 이렇게 공들여 준비한 성화들을 바라보며 감탄한다. 오후 3시경에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의 시신을 관에 모시고 4사람이 짊어진 채 마을 한바퀴를 돌면서 성화가 그려진 알폼브라 위에 관이 잠시 멈추는 동안 기도를 바친다. 알폼브라는 예수님의 시신이 자신들의 집 앞에서 잠깐만이라도 편하게 쉬어 가시라고 만든단다.

기도가 끝나면 다음 집 앞에 그려진 성화로 향하는데 뒤따르는 검은 상복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아름답게 수놓아진 성화는 금방 엉망이 되어 버린다. 이 짧은 1분간을 위해 이들은 이틀 동안 정성을 들인다.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동네를 돌고 나면 모든 가정들은 이 날 만큼은 음악도 소리도 가능한 내지 않으며 식사조차도 단출하다. 구원자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실생활에서도 늘 간직하며 사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였다. 그저 성당에서만 드러나는 신앙이 아닌 생활 곳곳에 배여 있는 그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신앙도 전통이 있다고나 해야 할까.

다시 이콘을 바라보자.
넓게 두 팔을 벌린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처참한 죽음의 억울함 보다는 옹졸하고 비겁하기 이를 데 없는 나를 향한 조건없는 받아들임의 큰 품으로 느껴진다.

“다 이루었다”

그분의 십자가상 죽음의 사건은 이 마지막 말씀 안에 얼마나 큰 사랑이 내재하였는지를 선포하는 듯 하다.
그러기에 그분은 모두를 향한 열어놓음을 먼저 시작하셨나 보다.

완전한 죽음 앞에서까지 우리를 받아 안으시려는 그분의 사랑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그리고 그 열어놓음 안에 모르는 사람이 참 많이 있음에 놀란다.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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