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한의 의미, 평신도에게 묻다

시인 정현종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며,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고, 그 마음을 더듬어 보는 바람을 흉내낼 수 있다면, 그것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라고 노래했다.

1년 전, 우리는 우리에게 온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4박5일의 일정 내내 직접 만나거나 TV화면을 통해 그를 만난 우리는 환호하며 기뻐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손 흔들며 ‘비바 파파’를 연호했던 그 순간 우리는 분명 온 마음으로 기뻤을 것이지만, 우리는 정말로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안고” 우리에게 온 교황의 마음을 섬세하게 더듬어 보는 바람처럼 환대했던 것일까.

▲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사진 제공 = 교황방한위원회)

많은 이들이 벌써 많이 잊었다는 그날의 흔적을 다시 짚어 보기로 한다. 1년 전 그날 우리가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삶에서 어떻게 다시 만나고 있는지. 만남은 여러 형태, 여러 의미를 지닌다. 그렇게 여러 모습으로 교황과 만난 사람들을 통해 그날의 기억을 다시 되살리고, 어떻게 그 만남을 우리 삶 속에서 ‘환대’할 것인지 들었다.

“우리는 모두 귀먹어 있었고, 자기가 찾고자 하는 것만 찾았습니다. 그래서 교황의 말씀은 허공을 맴돌았습니다. 제가 취재를 도운 외신 기자들은 아시아 지역 정치, 특히 북한에 대한 바티칸의 뜻을 듣고 싶어 했고, 14일 청와대 연설과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 ‘평화는 정의의 결과’, ‘비인간적 경제 모델을 거부하라’고 했던 교황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별말 안 했군’이라고 답했습니다. 교황의 메시지는 번개처럼 우리를 쳤지만, 그 뒤를 이은 천둥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현재 프랑스 고등사회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송민주 씨(히야친타)는 교황 방한 당시 프랑스 기자팀과 동행하며, 교황 방한 일정을 일부 따라다닐 수 있었다. 그는 수많은 교황의 메시지 중 어느 하나를 기억하기 보다는 교황이 그저 “기쁨 그 자체”로 자신의 삶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송민주 씨는 교황의 메시지가 한국에 어떤 울림을 주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울림을 주고 있을까요?”라고 되물으며, “울림이 있으려면 공명이 되어 울릴 도구가 있어야 하지만, 나 자신부터 그런 도구가 되었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이 한국 사회에 남기고 간 것은, 보들레르의 시에 나오는 ‘알바트로스’처럼 낙오된 이들이 비로소 날아오를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면서, “사제나 주교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그리스도인, 비종교인 모두가 교종의 메시지를 본받고자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이들을 많이 만났다”며, 낙오되고 소외된 이들을 보듬어 주는 것이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송민주 씨는 한국 교회의 변화 방향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제안했다. 그는 가장 필요한 것은 “교회의 평화”며, 그를 위해서는 다양한 개인들에게 교회가 유연하고 관대하며, 열린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 주교회의가 공동사목방안을 통해 고해 성사, 판공 성사 등에 유연한 입장을 밝힌 것 역시 고무적인 첫 걸음이라고 본다며, “여전히 교회 안에 남아 있는 구분하고 차별하는 관성을 떠나, 교회의 일치가 획일화가 아닌 다양성의 존중과 치열한 정의 추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교황에 대한 환호는 우리 삶 안에서 환대가 되어야 한다. (사진 제공 = 교황방한위원회)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열광은 특히 한국 사회가 실제로 어떤 지도자를 열망하고 있는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고 봅니다.”

법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김성우 씨(바오로)에게 교황과의 만남은 ‘회심’이다. 재수생 시절 우연히 친구를 따라 성당에 갔다가 “막연하게나마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신앙인으로 살자”는 다짐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그는, 여러 한계를 경험하고 6년간 냉담을 했다고 털어놨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스캔들로 지탄 받는 가톨릭교회 쇄신 요구에 대한 제스츄어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는 김성우 씨의 마음을 돌린 것은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는 교황의 진정성”이었다.

세례를 받은 뒤, 공동체 내부에서 정치적 입장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고, 본당 사제에 따라 공동체의 방향이 바뀌는 것에 신앙 생활에 대한 의지를 잃고 냉소했던 그는, “교황을 보면서, 가톨릭 교회가 사회적 사안에 대해 갖는 입장이 무엇인지 보다는 사회적 약자가 위로를 받고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황의 모습을 보며 변화를 체험한 그도 교황의 역할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짚었다. “사회는 교황이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변화를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개인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교황의 메시지에 공감한다면서 현실 생활은 기존의 모습대로가 아닌가”라며, “정말로 변화를 원한다면, 현실과 신앙의 괴리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우 씨는 다시 교회로 돌아왔지만, 개인적으로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교리,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면서, “최근 입장을 밝히기도 한 성소수자에 대한 미온적 입장 등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황이 누구냐에 따라 입장이 바뀌는 교회의 구조적 문제 또한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종교인들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세상, 신앙인에게조차 빛과 소금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 우스운 시대에, 교황님은 어떤 명분 없이 그분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모범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되살림 미술’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우명희 씨(안젤라)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장 작은 일로부터 가장 크게 다가오시는 분”이다.

세상에서 넘치는 말과 글이 너무 혼란스러워 TV를 비롯한 매체를 끊어 버렸던 그가 우연히 교황 방한 뉴스를 보게 된 것은 기쁨의 선물이었다. 재방송까지 챙겨보며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그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에 맞게 바뀌는 표정이었다.

그는 누군가는 교황의 순발력이 대단하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표정연기나 순발력이 아니라, 오랜 성찰과 준비로 인한 진정성일 것이라며, “가장 감사한 일은 매 순간 아주 작은 일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가 그토록 감사하는 이유는 사소하고 하찮다고 생각하는 일에서부터 신앙의 실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스스로 보이지 않게 다른 이들을 챙기는 ‘그림자 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우명희 씨는, “교황께서 그토록 작고 구체적인 실천을 몸소 보여주시는데, 따라하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라며, 교황을 기리고 추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교황의 말과 삶을 내 삶 안으로 들이는 일이라고 거듭 말했다.

우명희 씨는 벌써 주변에서는 교황 방한 때 행복했던 기운이 사라졌다고 말을 한다면서, “가톨릭 신자들부터 드러나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세상 곳곳의 틈새를 메꿔야 한다. 그런 작은 몸짓에서부터 울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이 바티칸에 노숙자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었던 것을 보고, 특별히 주변에 있는 ‘정신적인 노숙자’들을 돕는 일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교회에 변화 또는 변화를 위한 시도가 없는 것은 “교황이 왜 환호 받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신자들이 주체적으로 본당 공동체 밖을 살피고 지역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끼리만 기뻐하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 김용길 씨가 만난 교황. 그는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시복식 미사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만나는 교황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김용길

“광화문광장을 돌던 교황 행렬이 세월호 유가족을 그냥 지나칠 때 가족들이 내뱉은 절망의 탄식, 그리고 다시 행렬이 다가왔을 때 유가족 얼굴에 퍼진 희망어린 표정에서 교회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깨달았습니다.”

인천에서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카페 까사미아를 운영하는 김용길 씨(베드로)는 광화문 시복미사 당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는 교황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는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교황의 모습에서 교황이 환호받는 이유를 확인하게 됐다며, “단지 가톨릭 수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교황이 소외된 이들, 가난한 이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황을 맞은 이후의 한국 교회 모습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교회는 끊임없이 물질은 삶의 수단일 뿐이며, 행복의 근원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정작 교회는 스스로 물질과 돈을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현재 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모든 사업에 대해 복음적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교회는 자본주의화, 물신화의 새로운 유형으로 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교황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가 변하고자 한다면, 가장 명확하고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것은 “사제가 신자들을 향해 문을 열고, 본당 공동체가 지역사회를 향해 문을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길 씨는 우선 사제들의 역할에 대해 미사를 집전하는 제사장의 역할만큼 중요한 것은 사목자의 역할이지만, 미사 전후 외에는 사제와 신자 간에 만날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서, “어려움에 처한 신자들이 성당 밖에서, 신앙인답지 않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상적으로 사제와 신자들이 상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본당 공동체는 지역사회의 한 기관이고 신자들 역시 지역 주민인 만큼, 본당 공동체는 지역 사회에 열려 있는 곳이어야 한다면서, “본당이 물질적, 인적, 공간적 자원을 지역 사회 성원에게 개방할 때, 하느님의 정의, 사랑, 평화가 일상에서 더 넓게 확산될 수 있으며, 본당 공동체가 집단 이기주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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