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변했는가

지난해 교황은 한국 주교들과 만나 사제들과의 소통, 가난하고 변두리에 있는 이들과 연대할 것 등을 당부했다. 한국 교회는 교황의 당부를 어떻게 지켜가고 있을까?

지난 1년만을 놓고 볼 때 한국 천주교의 체질은 크게 달라진 게 없고, 교황 방한이 며칠간의 이벤트로 그친 게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이들도 많다.

교황 정신 묻히고 기념물만 남았나?

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전화 인터뷰에서 교황 방한의 의미로 한국 순교자들의 정신, 청년 문제,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위로 등을 꼽으면서, 교황이 일깨워준 정신이 빠르게 잊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청년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주교와 교구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신자들이 가난한 이들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8월 교황 방한 1주년을 맞아 서울대교구는 23일에 광화문광장에 124위 시복기념 바닥돌을 설치하고 기념식을 한다. 대전교구는 교황이 다녀간 곳인 대전월드컵경기장, 해미, 솔뫼성지에 기념 조형물을 세웠다. 이에 대해 반기는 목소리만큼이나 교황 방한을 ‘기념만’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전교구의 본당 사목을 맡고 있는 한 사제는 지난 1년 동안 교회가 무엇을 바꿨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성지들이 관광지처럼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 지난 3월 26일 명동성당에서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이 진행하는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미사' 모습 ⓒ정현진 기자

교구, "느리지만 진지하게 쇄신하고 있다"

그러나 교황 방한 뒤 교회 쇄신의 결과를 묻기에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또 교황이 방문했다고 하루아침에 많은 걸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그동안 교회가 꾸준히 이어온 다양한 차원의 복음화 노력을 성실히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대교구는 지난 8월 13일 교황 방한 1주년을 맞아 “우리 교회는 느리지만 진지하게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을 고민하고 교회 스스로 쇄신해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교황의 뜻에 따라 시도하고 있는 노력을 소개했다.

구체적으로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은 지난 3월부터 매달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서울시 강동구에 있는 고덕동 성당에서는 ‘124 프란치스코회’를 만들어 매달 일정 기금을 모아 소외된 이웃에 지원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취재한 서울대교구의 사제들은 교황의 뜻에 공감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많이 냈다. 

교황의 뜻에 따라 직장사목부는 매년 진행하던 직장인 성가대 발표회를 올해는 난민 어린이를 위한 자선음악회로 열었다.

특수사목을 담당하고 있는 한 사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목을 담당하고 있는 사회사목국의 예산이 교구 재정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다른 사제는 사회사목국의 움직임이 교구의 움직임처럼 보이지 않는다며, 예를 들어 사회사목 내 위원회 차원에서 전개하는 실천 운동을 교구 전체가 나서 본당까지 반영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광화문 세월호 미사에 참여하는 등 사회적인 문제에 교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한편, 대전교구 홍보국장 한광석 신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인터뷰에서 “변화와 쇄신을 말하기에 1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한국 교회 내 수도회와 성직자 더 나아가 평신도들이 교황님의 모범과 메시지를 내적으로 소화하고 그에 비추어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가는 큰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본다”면서 “이러한 노력이 2-3년 후에는 좀 더 가시화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을 교구 차원에서 모으기 위해 대전교구는 교구 설립 70주년이 되는 2018년까지 시노드를 열 예정이다. 한 신부는 “이번 8월에 담당 신부를 임명해 시노드의 첫발을 내딛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일부에서 교회의 변화가 없다고 비판하는 소리를 잘 알고 있다”며 “그 변화를 NGO처럼 사회현실에 무조건 참여해야 하는 것으로 오도하거나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고 지적했다. 한 신부는 “교황님에 대한 열광이 급작스러운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그 변화는 근본적 반성에서 시작된 아래로부터의 변화보다 지속력이나 내적 에너지가 적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충남 서산 해미 순교성지에 있는 순교자 조형물 ⓒ정현진 기자

WYD 등 의사결정과정 아쉬워

교황은 주교들에게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 뿐 아니라 사제와 가깝게 지내라고도 당부했다. 그는 “사제들이 주교를 자주 만날 수 있게 하라”며 구체적으로 “사제가 주교님께 면담 신청을 하는 전화를 했다면, 오늘이나 내일 곧장 그 사제에게 전화하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제들은 주교와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서울대교구의 사제들은 대체로 교황 방한 이전부터 교구장 대리 주교와 언제든 원하면 면담을 할 수 있고 소통이 잘 되고 있다고 답했다. 한 사제는 담당 보좌주교가 “형님” 같다며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구청 신축, 세계청년대회 추진 등 중요한 결정에 대해 사제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주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부족해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서울대교구는 “교황이 남기고 간 메시지를 교구 내에서 구현하기 위해” 지난해 11월에 사제토론회를 처음 열었고, 올해부터는 분기별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3-40여 명의 사제들이 교회의 정체성, 사제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제도, 사회교리 교육 강화 등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

교황의 뜻을 이어가는 것은 사제뿐만 아니라 평신도도 함께해야 한다는 제안도 많이 나왔다. 서울대교구에서 본당 사목을 맡고 있는 한 사제는 평신도를 위해서 모든 시스템이 열려 있고 구조적으로 갖춰져 있다며, 다만 평신도 자신도 복음적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사제는 신자들이 신앙생활에서 평화만 찾지 말고, 물질적인 욕심에서 벗어나 후원을 하는 등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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