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식 목사의 해방신학 이야기]

혼 소브리노

▲ 혼 소브리노.(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아마도 혼 소브리노는 라틴아메리카 신학의 그리스도론 전개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해방신학자일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론을 그의 전 생애에 걸쳐 발전시켜 왔다. 그중에서도 그의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은 두 권의 저서를 통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저서는 “해방자 예수”(“Jesucristo Liberador”, Trotta, 1991)이고 두 번째는 “예수 안의 믿음. 피해로부터의 생각”(“Fe en Jesucristo. Ensayo desde las víctimas”, Trotta, 1999)일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 글에서 언급한 논문, “라틴아메리카로부터의 그리스도론: 역사적 예수 따르기로부터의 개요”)일 것이다.

소브리노 그리스도론의 특징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고백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은 얼마든지 다른 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소브리노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많은 경우 일정한 그룹의 이기적인 관심과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잘못 사용되어 왔음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론은 좋은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나쁜 목적으로도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매우 이단적인 그리스도론들이 존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잘못된 그리스도론은 우리에게 성서가 보여 주고 있는 나자렛 예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예수를 보여 주기도 하였다.”

오늘의 글에서는 소브리노의 논문, “라틴아메리카의 그리스도론: 역사적 예수 따르기로부터 출발하는 개요”를 중심으로 그의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해방신학의 그리스도

소브리노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을 해방신학적 시각 안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소브리노의 유럽신학의 그리스도론의 역사 상황적 부적절성을 강하게 비판하였던 구티에레스, 아스만 그리고 비달 등과 같은 선상에 서 있다. 이들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그리스도론은 해방적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전개돼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렇다. 라틴아메리카의 불의한 상황에서 억울하게 억압받는 민중들의 비참한 삶의 정황이 무시된 채 이론적으로 전개되는 그리스도론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소브리노는 그의 논문과 저서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론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정당성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역사적 예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역사적 예수가 당면해야 했던 상황은 오늘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이 당면하고 있는 삶의 현실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그리스도론은 당시 민중들이 경험하고 있었던 다양한 삶의 정황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그리스도론이 이 지역의 민중 삶의 역사적 정황으로부터 전개되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예수 따르기와 해방신학

여기에서 우리는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이 형이상학적인 철학적 사고 혹은 대학의 상아탑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닌 삶의 정황, 다시 말하면 삶의 바닥, 즉 아래에서부터 시작되는 그리스도론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해방신학의 예수와 삶의 현실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해방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존재론적인 논쟁이 아니다. 해방신학에게 중요한 것은 해방적 실천과 그리스도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소브리노에게 있어서 예수가 참 하느님이고 참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이론적인 논쟁을 통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면서 살아갈 때 깨달아지는 실천적인 것이다.

소브리노는 하느님의 신비 자체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시도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예수를 우주적 구원자로 소개함과 동시에 라틴아메리카의 해방과 구원에서 예수의 주도적 위치와 사역을 강조하고자 하는 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성은 단순하게 교리적 설명과 상징을 통해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구체적 실천을 통하여 예수의 우주적 구원자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에게 그리스도가 우주적 구원자가 되는 것은 이성적으로 교리를 통하여 설명될 때가 아니라 구체적 변화를 향하는 해방적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해방적 실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성과 구원자 됨이 보여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의한 제도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가 건설되고 억눌린 민중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해방되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우주적 구원자였음을 고백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로마 백인대장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다”라는 고백을 한 것과 유사하다.

하느님의 나라와 해방

▲해방자 예수, 윌리스 휘틀리.(1973)
그런 의미에서 해방신학의 그리스도론은 하느님의 나라라는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만일 예수가 해방자이며 구체적인 해방의 실천을 통하여 자신이 우주적 구원자 됨을 보이고 있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이 땅위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나라와 연결된다. 그에게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은 라틴아메리카의 필요와 상황에서 출발하여 이곳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그리스도론은 매우 실천적이다.

오늘의 현실과 그리스도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느냐가 그의 관심이다. 소브리노는 역사적 예수의 연구를 통하여 예수가 그의 사역을 하느님 나라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기에 그는 다른 서구 신학자와는 달리 예수에 대한 비 신화 작업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민중의 참혹한 현실 앞에서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초연한 태도를 보이는 우상적인 모습을 예수에게서 제거하려고 한다. 비-신화를 넘어서는 비-우상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예수의 이름으로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그 앞에서 초연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예수를 따르는 일은 역사적 예수의 탐구 이전에 이루어진다. 다른 말로 한다면 예수 따름이 우리로 하여금 역사적 예수의 연구의 길에 접어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신학 특히 소브리노의 그리스도론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그의 일반적 그리스도론이다. 이것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믿음이 교회의 예수에 대한 신앙적 고백과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예수를 따름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예수 사이에 존재 할 수 있는 불연속성을 넉넉하게 극복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해방자 예수”, 57쪽)

소브리노는 결론적으로 “역사적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 신앙의 그리스도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예수 따르기는 우리로 하여금 역사적 예수에 도달하도록 한다”라고 말한다. 소브리노의 이 같은 결론은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에서 매우 중요하고 근본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부활의 예수의 영은 나사렛 예수로 하여금 역사 속에서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부활의 예수를 말한다는 것이 결코 오늘의 역사적 상황에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를 외면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같은 맥락에서 영광의 예수는 고난 당한 예수와 동일하다. 그러므로 영광의 예수 또한 오늘의 상황에서 인간을 비인간화 하고 있는 모든 불의한 권력을 고발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부활의 예수를 경배하는 것은 역사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역사적 예수를 따름 없이 가능하지 않다. 해방신학과 소브리노의 그리스도론은 오늘 우리로 하여금 모든 억압의 역사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구원자 예수의 구원의 역사를 구체적인 예수 따르기를 통하여 지속해 나가도록 촉구하고 있다.
 

홍인식 목사
파라과이 국립아순시온대학 경영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M. DIV.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에서 호세 미게스 보니노 박사 지도로 해방신학으로 신학박사 취득.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 교수 역임.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교수 역임.
현재 멕시코 장로교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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