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신부] 8월 16일(연중 제20주일) 요한 6,51-58

맛없는 첫영성체

교회는 유아세례를 받은 어린이들과 세례를 받지 않았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첫영성체 교리를 하고 세례와 첫영성체를 시킵니다. 어릴 때에 부모를 따라, 혹은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보았던 그 조그맣고 하얀 빵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이 빵을 먹고 싶으면 세례를 받고 첫영성체 교리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마저도 수락할 만큼 어린이가 가지는 성체에 대한 기대는 대단합니다.

첫영체를 하고 나서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아이들의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아무 맛도 없어요!!” 그렇습니다. 아무 맛도 없습니다. 기대와 달리 밋밋하고 맛없는 첫영성체의 체험이지만, 미사 중에 빵을 먹기 위해서 기나긴 시간 기다리고 고대하며 준비해야 했음을 아이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맛없는 성체를 먹기 시작하면서 어린이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어른들과 동등하게 미사에 참석하고 있음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합니다.

먹어야 삽니다. 먹고 마시는 내용으로 채워진 방송 프로의 높은 시청률은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먹거리는 우리네 일상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냉엄하게 표현하자면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다만 생명을 얻기 위해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더 가지기 위해 탐욕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현실이 안타깝고 걱정스럽습니다.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를 먹어야만 살 맛 나는 참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입니다. 나는 생명을 주는 양식을 찾고 있는지, 아니면 조상들이 먹고도 죽어 간 그런 빵을 얻기 위해 표독스럽게까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사진 출처 = mangomagic101.deviantart.com(왼쪽), www.flickr.com

먹는 음식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삶의 내용도 달라집니다. 무릇 살기 위해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 먹는 것이겠습니까? 내가 살아가는 생의 목적에 따라 먹는 것도 각기 다른 법입니다.

돈을 생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수전노처럼 이윤과 재물로 자기 배만 채우고자 하는 탐욕스런 돼지가 될 것입니다. 명예만을 좇아 산다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이웃의 아픔과 슬픔까지 이용해 먹는 파렴치한 정치인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권력을 얻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면 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안위를 먹이로 삼는 억압과 독재가 악취를 풍기게 될 것입니다. 인간적인 눈앞의 이익만을 먹고 살겠다고 달려든다면 그것은 죽는다는 것도 모르고 먹는 독버섯과 같은 해로운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고공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나, 천막에서 추위와 더위를 벗 삼아 지내시는 밀양의 어르신들과 강정의 평화 지키미들, 풍찬노숙으로 500여 일을 지내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그리고 작은 힘이나마 아픔으로 눈물 흘리는 이들과 연대하는 의로운 이들은 오히려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지내고 있어도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참된 양식을 먹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 했듯이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참된 양식은 결코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이 아닙니다. 존중과 섬김, 나눔과 소통, 공감과 연대를 살아간다면 세상은 정의와 진실, 공동선과 형제애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결국 지금 내가 무엇을 손에 쥐려하고 있는지, 무엇을 먹어야 참 생명을 살아가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면 조상들이 먹고도 결국 죽어 간 그런 양식을 먹는 바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나누는 양식이 참된 살과 피

양식은 내가 먹고 이웃에게 나눌 때 참된 양식으로 성장합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셨듯이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 주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양식은 나를 통해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삶을 이웃의 양식과 음료로 내어 주고 나눌 때 예수님의 살과 피는 나를 통해 참된 양식이요 음료가 됩니다. 나만 먹고, 나만 배부르게 생명을 누리려 든다면 그 또한 먹고도 죽어 간 구약의 만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이 내어 주시는 살과 피를 참된 양식으로 먹은 우리가 내 살과 피를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것이 참된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는 말씀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역사의 현장에 투신해 살아가는 이들의 참된 생명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입니다. 따라서 미사 때 마다 주님을 기억하여 행하는 성찬례는 참된 양식으로 자신을 나누라는 지엄하신 명령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살과 피를 참된 양식으로 먹고 마신 이들은 자신의 살과 피 또한 참된 양식과 음료로 내어 놓아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참 생명을 가능하게 해 주는 양식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삶의 요청입니다.

첫영성체를 하면서 빵을 먹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참된 양식을 얻기 위해 그 어린 나이에 교회가 요구하는 것들을 해 낼 수 있었고, 그래서 얻은 것이 참된 생명을 주는 참된 양식입니다.

오늘 복음을 들으면서 참된 양식을 얻기 위해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어린이만큼의 고대와 준비라도 하고 있는지, 오히려 먹고도 죽어 갈 양식을 얻기 위해 분주하고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봅니다.  

 
 

 박명기 신부(다미아노)
 의정부교구 청소년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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