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의 기회도, 고소인을 대면할 기회도 없었다"

 
위스콘신 주 벌로이트에 위치한 성 토마스 교회에서 1995년 이래 사목 협력자로 일한 루스 콜팩(64)은 이번 달 초 매디슨시 로버트 몰리노 주교와 간단한 면담 후 해고됐다.

해고를 뒷받침할 만한 명시적 죄과로 공개된 것은 없다. 콜팩 지지자들은 신문 발표를 통해 지난 3년간 매디슨교구 관계자들이 콜팩에 관한 '몇 번의 고발'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지난 1월 그러한 고발과 관련하여 벌로이트의 성토마스 성당과 성유다 성당의 스티브 코텐딕 주임 신부가 몰리노 주교를 만났다고 덧붙였다. 그 이후 코텐딕 신부와 교구 고문 케빈 펠란이 만나 '긍정적인 해결책'을 모색했으나 허사였다고 신문은 밝혔다.

해임이유는 논문 내용 때문..

발표에 따르면, 조사의 대상이 콜팩이 성프란치스코 신학원 졸업을 위해 쓴 신학석사 학위논문으로 바뀌었다.

2003년에 쓰여진 이 논문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최근까지 거의 아무런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다. 콜팩은 논문에서 좀 더 성 평등적인 용어를 미사에 쓸 것과  그녀가 본 교회 전례의 가부장적 색채, 사제직과 같은 핵심적 역할에서 여성들을 배제시키는 문제 등을 다루었다.

매디슨교구 홍보 담당관 브렌트 M. 킹은 3월 17일 성명을 발표하고, “이러한 모든 개인적인 문제들과 관련해 상세한 설명을 할 수도 있지만 하지 않은 이유는 관계된 모든 사람의 품위와 명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각 개인의 교회법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 왔다고 장담할 수 있다. 콜팩과 관련하여 말을 삼가는 것은 그녀의 명성에 흠집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성명은 계속해서 교회 관계자는 “공개적인 가르침과 신조, 참여, 행동을 통해 교회의 신앙과 윤리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콜팩의 해임에 항의하는 가톨릭 신자들은 그녀가 주교를 만났을 때도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그녀를 고소한 사람들을 대면하거나 응대할 기회도 없었다고 말했다.

주교, 콜팩에게 논문 내용 부인하고 전통교리에 충성할 것을 요구

콜팩을 만난 몰리노 주교는 그녀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그녀의 관점이 “터무니 없다”고 말했는데, 콜팩에 따르면 주교는 그녀의 논문을 전부 읽지도 않았으며 “일부분”만 읽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콜팩은 주교가 그녀에게 본당의 사목 협력자로 남아 있으려면 논문에서 주장한 내용을 부인하고 신앙을 고백하며 충성을 맹세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콜팩은 신앙을 고백하고 맹세도 할 수 있지만 양심적으로 논문 내용을 부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학자라는 이름을 위태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몰리노 주교의 발표 후 “내 논문에서 이의가 있는 부분에 대해, 또 나에 대한 고소에 대해서도 논의할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주교와 면담이 시작되고 단 10분 만에 난 해고됐다.”라고 콜팩은 말했다.

그 다음 주일의 항의 시위는 몰리노 주교가 모임을 갖고 있는 재니스빌 본당 밖에서 있었다. 주교는 시위자들과 이야기 했지만 콜팩을 해임한 이유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조치는 “개인적인 문제”였으며, 논문만의 문제가 아니라, 콜팩의 “일부 사고 방식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게 요지였다. 그는 성토마스 성당에서 콜팩이 해온 훌륭한 일을 존중하며 그녀의 명성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다고 강조하였다.

콜팩의 해임을 재고할 여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주교는 “결코 아니다 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이와 관련하여 미련을 남기는 것은 내 잘못이 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성당 밖에서 시위하고 있는 가톨릭신자들


콜팩은 일요일 재니스빌 성당 밖 시위가 낳은 좋은 결과의 하나로 몰리노 주교가 벌로이트에 와서 성 토마스 성당 신자들과 이야기할 예정이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개인적인 문제라서 어떤 정보도 누설할 수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는가? 난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저의 봉사는 제 일생의 과업입니다

주일 미사 영성체 후 주임 신부는 간단한 설명 후 콜팩에게 말할 기회를 줬다. 얼마 안 돼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몇몇 사람은 기도 모임을 갖기도 했다. 콜팩은 30년 이상 이 성당을 위해 봉사했다.

“본당 신자들은 풀이 죽었다. 지난 주일은 정말 슬펐다. 미사 후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울며 포옹하며 염려했다. 대부분 ‘왜 해고됐느냐?’고 묻지만 난 대답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주교가 나를 해고한 것이라면, 큰 문제일 거라고 생각할 테지만, 난 정말 해고당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니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콜팩은 말했다.

해임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한 42세의 한 본당 신자가 대다수 신자들의 느낌을 말해주는 것 같다. “콜팩의 역할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성 토마스 성당의 모든 활동의 근간이었다. 콜팩은 5년 뒤쯤 은퇴하고 싶다고도 말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맡은 책무를 생각해 볼 때, 그녀만큼 많은 책무를 떠맡을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분명했다. 모두가 언제나 콜팩과 의견이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성 토마스 성당의 주춧돌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본당 주임 신부가 4명이 바뀌는 세월 동안, 그녀는 늘 한 자리를 지켰다. 그녀는 모든 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주임 신부가 40%만을 하니, 성사 활동도 그녀의 책임이었다.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했거나 냉담을 푼 신자들은 그들의 친구가 해임되어 울었고, 대여섯 살 된 아이들은 선생님을 잃어서 울었다.”

콜팩은 1971년에 자원 교리교사가 되었다. 워크숍과 세미나들에 참석하여 교리 교육 자격을 얻었다. 1983년에 성 토마스 성당에 시간제 청소년 봉사자로 채용되어, 청소년 봉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로욜라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고, 1986년 학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전임으로 일하게 되었다. 후에 대학원에 다녔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구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였고, 교육 활동을 펼쳤으며, 여러 본당에서 집없는 가정을 교대로 돌보는 '믿음의 손'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또한 벌로이트의 주요 3개 성당 곧 성 토마스, 성 유다, 성모몽소승천 성당에서 라틴 아메리카계인 사목에도 한몫을 담당했다.

콜팩은 몰리노 주교에게 서한을 보내 “저의 봉사는 제 일생의 과업입니다.”라고 쓰고, 해고를 재고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번역/김미경

[National Catholic Reporter 2009.3.17. 마이크 슈바이처 베크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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