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만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니"
교구에서 해임된 어느 사목협력자의 논문


루스 콜팩의 해임에 반대하는 가톨릭 신자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노예 생활에서 구하시기 위해 행동하셨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하느님께서 이제 “여성들을 억압에서 구하시기 위해, 그리고 하느님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부장제라는 틀에서 빼내시기 위해 행동하신다.” 이는 위스콘신, 매디슨의 로버트 몰리노 주교에게 해임당한 사목 협력자 루스 M. 콜팩이 6년전 한 학위 논문에서 쓴 말이다.

주교와 10분간 면담을 했던 콜팩의 설명에 따르면, 이달 초 그녀를 해임한 주된 이유로 주교가 밝힌 것은 예수님에 대한 그녀의 관점이 “터무니 없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쓴 논문 자체가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그녀는 주교가 그녀의 논문을 “일부분만” 읽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문제의 문서는 세 개의 논문으로 전부 51페이지에 달하는 본문과 주석으로 되어 있으며, “하느님을 지칭하는 남녀 포괄 언어: 교회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하나의 주제를 포괄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은유적 표현, 우상으로 섬기면 안돼

3개월에 걸쳐 쓰여진 세 개의 논문은 각각 성서와 조직 신학, 윤리 신학의 관점에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성프란치스코 신학원의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

콜팩은 하느님을 지칭하거나 묘사하기에 100% 충분한 언어는 없다고 주장하며, 은유만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은유는 물론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바탕으로 하겠지만, 이 세상 모든 은유를 합해도 하느님을 100% 묘사하기엔 부족하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한 은유를 몇 가지로 제한한다면, 그 순간 그것은 우리의 우상이 되어버린다.”라고 지적했다.

콜팩은 구약 성서에서 유일하게 하느님을 명시적으로 '어머니'에 비유한 <제2이사야>에 나온 여성의 이미지를 파고든다. 임신, 태중에 아기를 품음, 출산, 젖을 먹임 등 <제2이사야>에 나온 모성의 이미지는 “남성의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것과 사뭇 다른 친밀감을 준다. 구약 성서에서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한 제2 이사야서 저자는 모성의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우리에게 친밀한 느낌의 하느님을 보여 준다.”

콜팩은 이러한 이미지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여기서는 하느님의 실제 모습을 실제로 형상화하기 때문”이라고 쓴다. 이런 의미에서 예를 들어 미사의 언어는 대부분 고전적 유일신론의 가부장적 언어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가부장제라는 말은 “아버지”와 “통치자”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왔다고 설명한다. “사회적으로 가부장제라는 말은 남성이 지배자임을 의미한다. 남성이 지배자라면 여성은 지배를 받는 존재이다.” 결과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고,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본다.”고 쓴다.

남성만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니

하느님을 주로 남성적 용어로 지칭하게 되면, 사람들은 “남성의 지배를 받아들이게” 된다. 콜팩은 초기 교회 사상가들은 “가부장적 인간학의 원형”을 보여 준다고 쓰고, “아우구스티노는 ‘여성은 절대 하느님의 모상일 수 없다. 남성만이 하느님의 모상이다.’라고 주장했으며, 아퀴나스는 여성을 ‘잘못 태어난 남성’이라고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여성은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열등하며 여성의 유일한 가치는 출산에 있다고 선언했다. 아퀴나스는 남성의 우월성을 자연 질서의 일부로 생각했다. 루터는 ‘여성은 타락함으로써 타고난 동등성을 상실했으며 벌을 받아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남성이 ‘여성 위에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질서’라고 믿었다.”고 덧붙였다.

언어를 통해 계속해서 “여성의 열등함을 주장한다면, 여성의 이미지가 하느님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언어가 될 여지가 없어진다. 하느님을 ‘그녀’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남녀 차별주의와 맞닥뜨리게 된다.”

하느님을 설명하는 남성 위주의 언어는 하느님의 이미지를 왜곡시킨다. 그것은 배타적이기 때문이며 “하느님은 누구도 배척할 수 없으시다. 하느님은 불온전한 존재일 수 없으며, 하느님이 누구신가를 표현할 때, 여성의 경험을 제외한 배타적인 언어로 하느님을 지칭하는 것은 하느님을 그 만큼 제한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남성의 이미지와 특징으로만 그려진다면, 신자들은 “그분께서 창조하신 중요한 일부분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하느님”을 떠안게 된다.

여성 배타주의는 종교적 악

콜팩은 그러한 배타주의가 하나의 “종교적 악”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인 설교자들이 이슬람교를 그릇된 종교로 공격한다거나, 하느님은 비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악이다. 자살 폭탄 테러범들에게 천국을 약속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나, 예수님께서 남성만을 사도들로 뽑으셨기에 남성만이 성품(聖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가톨릭 교도권도 마찬가지 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콜팩은 “직역주의의 악”의 한 예로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남성에게만 유보된 서품에 관한 교황교서(Ordinatio Sacredotalis)>를 들고, 이 문서를 흔히 교회 안의 여성에게 적용되는 “이중적 인간학”의 예라고 쓴다. 여성들은 교회 안에서 “없어서는 안 되며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순교자요 동정녀며 어머니들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한 편으로 교회 안의 여성의 역할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여성들을 가정에 머무르는 어머니로, 또는 종교 생활에서는 영적 어머니로 한정한다.”고 쓴다.

이 문서에서 교황은 세 번이나 교회는 여성에게 성품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남성만을 12명만을 뽑으셨기 때문이다. 콜팩은 “이러한 직역주의가 모든 면에 적용된다면, 교회 안에서 12명의 사제만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모두 중동의 유다인 남성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직역주의의 주장은 여성을 서품에서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쓴다.

교회 문서와 기도에 남녀 포괄 언어를 사용해야

그래도 콜팩은 교회 안에서 “여성의 존엄을 더욱 온전히 인정하려는 노력이 있다며,” 일부 교회 문서들과 신학자들의 작품에서 그러한 희망을 본다고 말한다.

콜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래 교회 문서들은 “공공 생활에서 여성의 동등성과 참여에 대한 설명을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는 일할 권리, 나아가 문화, 경제, 사회 생활에 참여할 권리도 포함된다.”고 쓰고, 20세기 후반 “미국 주교들이 ‘성차별주의’를 죄악이라고 분명히 지적하였고, 퀘벡 주교들은 가정 폭력에 대한 문서에서 ‘교회를 대표하여 여성 폭력에 대한 부분적 책임이 학대받는 여성들에게까지 혼인 생활을 계속하라는 방향으로 조언한 데 있었음’을 인정하였다.”고 덧붙였다.

여권 운동을 하는 신학자들은 교회가 성서에 대한 배타적인 가부장적 해석만을 장려할 것이 아니라 교회 문서와 기도에 남녀 포괄 언어를 사용하도록 강권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하느님의 말씀이 ‘교회 전체’에 맡겨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권 운동가들은 묻는다. ‘하느님의 백성에게 귀기울이지 않고 상의하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선포할 수 있겠는가?’라고.

번역/김미경

[National Catholic Reporter 2009.3.20. 톰 로버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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