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청춘 - 변지영]

선배들이 사라졌다

간단히 표현하면 그런 것이었다. 고등학교에서 3학년은 체육대회나 축제 같은 학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대학에서도 3학년 2학기쯤 되면 벌써 그 선배가 안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선배를 대신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하며, 특히 이 공동체의 과거,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해야 했던 집행부 활동을 하며 느끼는 지금의 큰 문제는 '선배의 부재'다.

어떤 단체건 그 단체를 탄생하게 했고 지금도 유지하게 하는 에너지원은 바로 정신이다. 이 단체가 무엇을 위해, 왜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공유된 정신이 없으면 그 단체는 존재할 이유가 사라져 버린다. 그 정신이라는 것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일단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저를 후배에게 전하고 후배는 그것을 받아 다시 자신의 경험으로, 이전의 것과 완전히 같진 않지만 가장 중요한 근본은 변함없는 정신을 내려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1-2년 정도의 경험을 쌓은 선배들은 곧 사실상 사라져 버린다. 그것이 우리 정신이 흔들리는 가장 근본적 문제라고 판단했다.

가톨릭 학생운동이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왜 사라졌을까? 준비를 하러 가 버리는 것이다. 졸업 뒤 돈을 벌기 위한 준비. 너무 당연한 것이고 그걸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가톨릭 학생회는 철저하게 배제되는 현상이 서글펐다. 우리의 활동이 서류에 기입하기엔 부족한 것일까? 우리가 보내는 시간과 경험이 남들의 그것에 비해 가치가 없는 것일까?

그래서 고민이 시작됐다. 우리 공동체의 방향성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회원들로 하여금 느낄 수 있도록 그 가치를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정신을 공유해 줄 선배가 사라졌다고, 졸업 전부터 취업 준비에 매진하게 만든 우리 사회만 원망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회원 스스로가 먼저 이 활동에 자부심을 가져야 했고, 우리가 가톨릭학생회에서 함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사회구성원이 되기 위한 길이라고 믿어야 했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선배가 사라질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선배의 빈자리를 '가톨릭학생회 선언문'으로 채우다

▲ 2014년 11월 8일 한국가톨릭학생운동 60주년을 기념하는 PAX제의 미사에서 교구별 연합회 깃발이 입장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그렇게 전국 교구 대표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우리는 가톨릭학생회 정신과 방향성을 재정립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각 교구의 상황을 공유하고 밤 새워 토론한 끝에 '가톨릭 학생회 선언문'의 초본이 나왔고, 당시 대표 교구였던 서울대교구에서는 그것을 다듬는 작업을 거쳤다. 마지막으로 언어학자 동문 선배의 감수를 거친 끝에, 60년을 아우르는 가톨릭학생운동의 정신을 현대에 맞게 정리할 수 있었다. 다음은 가톨릭 학생회 선언문의 주요 내용이다.

우리는 삶과 신앙의 일치를 이룬다 - 가톨릭 학생회의 모든 활동은 탄탄한 내적 복음화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청년 사도로서 일상생활 속에 하느님 말씀이 녹아들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삶, 일상생활과 신앙이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가톨릭 학생회의 주인으로서 이 청년 사도들의 공동체가 서로에게 신앙생활의 길잡이가 되어 주며 여러 가지 고민과 어려움도 함께 풀어 나가는 버팀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우리는 대학인 모두를 위한 교회 공동체를 이룬다 - 우리가 함께하는 공동체는 회원들만의 모임인 ‘동아리’가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열려 있는 ‘학생회’다. 이는 가톨릭 학생회의 존재 목적이 기존 회원들의 신심 활동 지원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톨릭 학생회는 또한 전국 각 지역과 여러 나라에서 모인 학생들과 오랫동안 쉬던 교우들이 신앙생활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돕는 공동체이자 사제, 수도자와 학생을, 교회와 학교를 이어 주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이에 가톨릭 학생회는 신앙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찾아와 함께하는 대학 안 신앙생활의 구심점 역할을 기꺼이 맡으며 그 활동 공간은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울려 미사를 봉헌하고 평소에도 기도와 교리 공부, 신앙 나눔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성전으로 가꾼다.

우리는 복음을 실천한다 - 우리는 이 시대의, 우리 사회의 가톨릭 지성인이자 청년 사도다. 복음에 바탕을 둔 시각으로 사회를 인지하며 학교와 사회에서 배우고 깨달은 것을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거룩한 소명이다. 이 소명에 응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물질문명의 발달 속에 사라져 가는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활동에 다양한 방법으로 동참한다. 세상의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가운데 주님의 진리를 발견하고 이를 세상에 전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이 정신의 실천이 바로 사회에 나가기 위한 제대로 된 준비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성찰과 고민 없이 쌓아 올리는 '스펙'이야말로 시간 낭비다. 대학 교육마저 잠식한 돈의 논리는 그 성찰을 더 힘들게 했다. 그래서 더 가톨릭학생운동과 정신이 필요하다. 가톨릭 학생회는 대학 시절에 거쳐 가는 곳이다. 그러나 선언문에 나와 있듯, 그 안에서 형성된 올바른 가치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평생 우리 삶을 떠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대학생으로서 전공 공부, 다양한 경험과 외국어 실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실력들을 담을 그릇이 충분히 성숙한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불안하면 할수록 평정을 되찾으려면 물을 부을 것이 아니라 밑 빠진 독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불안이 가시지 않는 이유. 우리 청년의 독은 안녕한 것일까.
 

 
 
변지영(스텔라)
서울대교구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 58대 의장
숙명여대 가톨릭학생회 글라라 57대 회장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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