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5일 초은씨 구명을 위한 기자간담회 [출처] 아내구타피해이주여성지원대책위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군요. 따뜻한 봄 햇살이 요즘처럼 너나없이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을 내뱉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열어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봄날 같은 희망을 품고 머나먼 땅에서 한국에 왔으나, 지금은 햇볕 한 줌 쬐기 힘든 차디찬 교도소 바닥에서 무엇으로도 언 마음을 녹일 수 없어 눈물 흘리고 있을 한 캄보디아 여성을.

그녀의 이름은 츠호은릉엥입니다. 우리 나이로 18살이고, 한국에서는 그녀를 초은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신보다 스무 살 많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한국에서 2년 가까이 살았고, 배 속에는 이제 4개월쯤에 접어드는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엄마입니다. 한참 남편의 보살핌을 받으며 새 생명을 가진 신비로움에 감사와 감격을 누릴 그녀가 머물고 있는 곳은 대구 교도소입니다. 초은은 현재 ‘살인죄’로 기소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살해했다니요, 있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이 어린 여성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초은씨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열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 서른여덟 된 지체장애 4급인 한국남편에게로 시집 온 초은은 그녀가 꿈꾸던 따뜻한 봄날 같던 한국생활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게 낯설고 어렵고 두렵기만 한 한국생활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 주었어야 할 남편은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술을 마시고,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고, 잠을 못 자게 하고, 머리를 때리거나 발로 손으로 툭툭 때리고 차면서 속된 말로 사람의 피를 말렸습니다.

사건이 일어나던 당일도 남편은 자신의 친구들 앞에서 초은에게 면박을 주고 머리를 때리고 하여 남편의 친구들이 이를 말릴 지경이었고, 초은은 몹시 모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남편과 함께 귀갓길에 남편이 더욱 화를 내자 초은은 매우 무서워서 남편이 술을 사러 간 사이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늦은 시간이니 오늘은 그냥 자고 내일 보자고 전화를 끊은 시어머니는 곧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며느리에게 그렇게 대하면 안된다고 야단을 쳤던 듯 합니다. 이에 더 화가 난 남편은 집으로 들어온 초은에게 소리를 지르며 때렸습니다. 무섭고 두려웠던 초은은 부엌칼을 꺼내들고 남편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오던 남편은 칼 위로 넘어졌고,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3일 뒤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초은은 현재 살인죄로 기소되어 4월2일 첫 조사기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접하고 많은 여성단체와 이주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지난 3월 5일 기자간담회를 열었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구명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 서명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며 현재까지 모아진 1차 서명은 곧 재판부에 전달될 것입니다.

사실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이주여성들 중 상당수가 몸과 가슴에 멍이 든 채, 아픔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아내와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남편들도 힘이 들겠지요. 하지만 너무나 낯선 땅에서 겨우 한두 번 만났을 뿐인 남편 한 사람 믿고 한국에 들어오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많은 돈을 들여 데리고 왔다고 무시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거나 하면서 그저 내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여자는 얼른 애 낳고 집안일이나 잘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생활비가 넉넉한 가정도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고향집에 누가 편찮으셔서 병원비라도 보내주고 싶을 때에도 한국 형편이 넉넉지 못하니 말도 제대로 꺼내보지 못하고, 말을 꺼낸다 하더라도 얼마나 남편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이주여성들의 일반적인 현실입니다. 혹자들은 말합니다. 사람이 사는 게 다 그렇지 이런 게 뭐 그리 큰 폭력이냐고, 그리고 초은이 같은 경우에도 남편이 어디를 부서지게 때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냐고 말입니다. 물론 남편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 사회가 잊지 말고 짚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가정폭력은 꼭 물리적 폭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먼 나라에서 보통 15-20세 연상인 남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폭력의 강도는 단지 몸에 관한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고 집안의 물건을 부수는, 또는 너를 데려오는데 얼마가 든 줄 아냐며 걸핏하면 너희 나라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하는, 마치 딸인 양 막내여동생인양 대하며 어서 아이만 낳아주기를 기대하는, 언제나 낯선 이방인 같은 마음으로 서 있어야 하는 심리적 고립감에 위축되는 이 모든 것이 여성들에게는 심각한 무형적이고 정서적인 가정폭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은은 가정폭력 피해자였습니다. 또한 결혼중개업체의 알선에 의한 국제결혼이라는 기형적 혼인방식이 낳은, 가정을 이루는 것 외에는 잔인하리만큼 결혼이주여성에게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한국사회에 의해 상처 입은 피해자였습니다. 이렇게 가정과 사회에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폭력에는 아무런 해법도 제시해 주지 않던 사회가 순식간의 사고로 인해 가해자로 변해버린 그녀에게 중형의 형벌을 내려야만 엄정한 법집행일지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어쩌면 그녀는 법정에서 선고하는 형벌보다 더한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남아있는 일평생을 살아야 하는 마음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 작은 소녀에게 남겨진 무거운 마음의 상처와 형벌을 함께 나누어 지지 못하는 한 우리 사회는 감히 더불어 산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네 형제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즉 무제한 용서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초은씨에게도 그 용서의 은총이 있기를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돌아보아 주십시오. 18살 어린 나이에 차디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이 외국소녀에 대해 우리 사회는 책임이 없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과 권리에 너무나 둔감한 우리들 자신의 무관심과 야만성을 반성하면서 가슴깊이 마음 아프게 진지하게 물어보아 주십시오. 우리는 그 물음에 대답하고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작은 자 하나를 소중히 하고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삶의 방식임을 기억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권미주/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담팀장 

 

 (편집자주)

- 이 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3월 28일자로 실린 글이며, 필자의 허락을 얻어 게재합니다.
- 현재 기소된 피고인이므로 초은씨의 실명을 밝히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만, 당사자와 당사자를 지원하고 있는 단체의 뜻에 따라 실명을 밝혔음을 알려 드립니다.
- 아내구타피해이주여성지원대책위 카페(cafe.daum.net/transnationalsisters)에서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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