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가 본 교회와 사회 - 9]

1. 그동안 천주교 내부에서 회자되던 제도권의 위기담론은 주로 교세 변동과 연결돼 있었다. 이를 테면 ‘신자증가율이 전년에 비해 감소하였다’거나, ‘청년 입교자 숫자가 몇 년째 감소하고 있다’와 같은 경우처럼 말이다.

이때 교세는 말 그대로 그 교회의 세력, 곧 힘을 나타내는 지표다. 천주교는 신자 숫자로 한국에서 세 번째로 큰 종단이고, 단일 교파를 기준으로 하면 불교 조계종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교파다. 그만큼 힘이 있다.

숫자만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신자 숫자가 어떤 이들로 구성되어 있는지도 중요하다. 천주교는 신자의 절반 가까이가 중산층으로 추정되는데, 중하층 출신 신도들이 대부분인 조계종 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더 크다. 게다가 천주교는 매주 평균 120만 명 정도의 신자를 동원할 수 있을 만큼 잘 조직돼있다. 경제적으로도 천주교는 매주 동원하는 신자들한테서 적지 않은 돈을 거둬들여, 일 년에 몇 차례 큰돈을 거머쥐는 정도에 불과한 조계종과 힘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교세는 그 종교의 힘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교세가 갖는 이런 의미를 잘 모르고 교회 위기를 교세변동 차원에서만 보았다면 그나마 안심이다. 그러나 교회가 세속적 힘에 취해 은연 중 이 힘이 약화되는 것을 위기로 보고 있다면 이런 상태를 ‘위기’로 볼 수 있다.

▲ 2014년 8월 16일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미사 당시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천주교 신자들. ⓒ교황방한위원회

2. 두 번째 위기론은 교세가 아니라 ‘사회적 위신’을 기준으로 하는 위기 담론은 교회가 본래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약화되는 현상들을 위기로 여긴다. 이 담론은 대부분 교회쇄신을 주장하는 신자들로부터 시작되고 그들 안에서 회자되는 경향이 있다.

교회의 사회참여 의지 약화,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현상인 사회참여 시도의 감소, 시민사회 기준에 못 미치는 독점적 교회 운영방식, 일부 교구에서 나타나는 상업화, 그리고 여성과 평신도의 교회 안 주변화 등이 그 예다. 이의 대척점에서 사제, 수도자들이 정치화되어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방향만 다를 뿐 같은 부류에 속하는 담론이다.

이 담론은 세속 언론에 대서특필 될 만큼 교회 안에서 대형 비리가 발생하거나, 교회가 신자들로부터 큰 불만을 살 때만 힘을 갖는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아직 일어날 가능성이 적고, 설사 일어난다 해도 경쟁하는 두 종파보다 상황이 나을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조금 타격은 입을지언정 위기로까진 치닫지 않을 전망이다.

신자들이 교회의 현 상황을 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점도 이 위기 담론이 확산될 가능성을 좁히고 있다.

3. 세 번째는 미국 교회가 2002년에서 2005년 사이 겪었던 성적 스캔들 파동같이 성직자들의 성적 추문이 한국교회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와 같은 위기다. 만일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선정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요즘 세태에 재미있는 요깃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정적인 사건들이 한국교회에서 대규모로, 그것도 동시에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 천주교회는 성직자 숫자가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 교회처럼 변색된 싹들을 남겨 둘 이유가 없다. 게다가 미국 교회처럼 호미로 막을 수 있던 일을 나중에 불도저로도 막을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한 학습 효과도 있다. 따라서 시든 가지, 영양이 과한 가지들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정적인 사건들의 발생에 기대 교회를 쇄신하려는 담론도 힘을 얻기 어렵다.

4. 아마 이쯤 되면 눈 밝은 이들은 금세 눈치를 챘을 터이다. 그렇다. 진정한 위기는 이렇게 교세가 약화되거나 큰 사건이 터지는 데 있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그럭저럭’ 버텨 내는, 곧 ‘적절치는 않지만 그저 사고가 나지 않을 만큼 연명하는 데 있다.’

큰 사건이 터지고 이 때문에 여론이 악화되면 오히려 교회가 정신을 차리기 쉽고, 위기 담론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온전치 않은 상황인데도 문제가 외부로 두드러지지 않고, 내부에서도 구성원들이 큰 불만을 표시하지 않으면 위기가 와도 알아차릴 수 없다.

나는 한국 교회가 이런 상태로 50년, 100년 더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진정 위기라 생각한다. 분명 병은 있는데 암으로 가기 직전 상태에 멈춰 있고, 만족스럽지 않지만 연명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 지금 같은 상황이 진정 위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큰 사건이 벌어져 교회 쇄신의 여건이 갑자기 조성되는 상황을 기대하지 않는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담론을 통해 교회를 쇄신할 수 있다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상태로 30년, 50년 더 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작은 ‘가능성’ 혹은 ‘모범’이라도 만들어 내려 노력하는 것이 할 일이라 생각한다.

 

 
 
박문수(프란치스코)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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