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김율옥 수녀]

학교 앞 화상경마도박장 싸움을 시작한지 어느새 두 해를 넘기고 있다. 학교보건법이 정하는 200m에서 35m 더 떨어져있어서 합법(?)이라고 한다. 교육환경이 유리벽으로 쳐진 것인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어른들이, 국가가 마련한 안전장치가 숫자놀음으로 바뀌었다. 어찌되었거나 14-19살까지의 여자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길목에 화상경마장이 자리한다니 그 아이들 걱정에 화상경마도박장 추방을 위한 싸움을 시작하였다. 화상경마장에서 돈을 잃고 나오는 초점 잃은 눈길들 사이에 그 아이들을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 학부모와 교사, 지역주민들이 함께 해온 일이다. 주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마사회가 화상경마도박장을 기습 개장하였을 때, 그곳에 들어가려는 이들의 모습과 말투와 행동을 마주하면서 학교 앞 화상경마도박장을 막아야 할 이유를 더 분명하게 확인하였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학교 앞 화상경마도박장을 막아내는 일이 우리 아이들만을 위한 것,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도박중독으로부터 아이들의 가족을 지키는 일이며, 우리 주민들의 건강한 삶을 지키는 일이었다. 최근 사행산업에 대한 서울시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화상경마도박장 주위 1km 이내에 학교가 없는 곳이 없으며, 화상경마도박장 가까운 곳의 주민들이 도박에 중독되는 비율도 높다고 한다. 더구나 화상경마도박장의 도박중독비율은 73%이상으로 실제 경마장 이용자 중독비율인 40%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깝다. 최근 마사회는 화상경마도박장 이름을 ‘렛츠런 CCC’로 바꾸고, 키즈카페, 노래교실 등의 이름으로 주민들을 불러들인다. 화상경마도박이 운영되는 공간에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르신들을 끌어들이니, 양두구육(羊頭狗肉)에 다름 아니다.

 ⓒ배선영 기자
한 가지 더 있다. 마사회는 국가 공기업이다. 말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마사회의 연간 매출 8조 가운데 70%는 화상경마장에서 나온다. 국가가 ‘사행산업’의 이름으로 도박을 장려하는 듯 보인다. 화상경마장 이용자의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중하위층이라고 할 때, 국가가 가난한 국민의 주머니돈을 도박에 끌어들여 수입을 얻는 것이다. 마사회는 연간 8조에 가까운 매출액 가운데 2조 정도를 말 산업 육성을 위한 농어촌 지원과 복지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공기업의 명분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액수에는 도박에 중독되어 무너진 가정이 감당해야하는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 피해액이나 도박에 중독되어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피해와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숨긴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가 ‘공기업 마사회’를 통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무너뜨리고 있는 꼴이다.

국무총리 산하 국민권익위원회도, 여야의 국회의원도, 서울시장도, 서울시 교육감도, 용산구 35개 초중고 교장과 학부모도, 여러 시민단체도 반대하고, 용산주민 17만 명의 반대서명을 통해 학교 앞 화상경마도박장 입점을 반대하였고 지금도 계속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사회는 이 모든 반대를 무시하고 기어이 마권발매를 시작하였다. 공기업인 마사회의 질주를 막을 국가기관은 없는 것인가? 공기업 마사회가 국가의 미래인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무시하고 학교 앞에 화상경마도박장 운영을 고집하는 상황에서 국민은 자녀들의 안전과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그저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하는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한다는 국가는 무엇을 하는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지키는 일이 생명의 일이며, 빛을 키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을 도박에 끌어들이는 마사회는 죽음의 자리에 있다. 죽음이 생명을 이기지 못하며,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이미 승리하고 있다.


김율옥 수녀 / 성심여고 교장, 성심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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